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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아네 쾨프케 [내가 하늘에서 떨어졌을 때]를 완독하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슈바이처 박사가 쓴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와 [람바라네 통신]이었다.
율리아네 쾨프케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자신의 괴로운 사고를 직접 글로 쓰는 작업을 수행하였고, 책 후반부에 그 목적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 그 목적은 저자가 어릴적 부모님과 살았고 20대에 논문을 쓰기 위해 머물렀던 페루 원시림 지역 팡구아나 일대에 대한 환경보호 운동과 모금 및 생물학 연구를 활성화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 남미의 원시림 지역을 보호하여야 한다는 당위성을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하여 비행기가 추락하여 어머니를 잃고, 뼈가 부러지고 큰 상처를 입은 채 밀림을 헤치고 구조받기 위해 펼쳤던 그 고난을 다시 떠올리고 수기를 집필한 것이고, 자신이 비행기 사고의 유일한 생존자였기에 얻었던 유명세도 기꺼이 이용하기로 결심했음을 드러내고 있다.
실은 슈바이처 박사도 같은 목적으로 글을 썼고, 아프리카에서 겪었던 원주민들과의 일화를 흥미롭게 소개하면서 의료지원 사업을 펼치기 위한 모금활동에 도움이 되고자 자신의 일을 진정성 있게 서술하는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와 [람바라네 통신] 등과 같은 책을 썼다.
이들 책으로 유럽 전체에서 유명세를 얻자 슈바이처 박사는 최대한 그 유명세를 이용하여 모금을 받으려 노력했고, 뛰어난 오르가니스트이자 저명한 바흐 연주자였던 음악가로서의 역량까지 활용하여 연주여행을 다니면서 자신의 책을 팔고 모금행사를 벌였다. 이런 노력으로 자금이 모이면 다시 아프리카로 떠나 의료봉사 활동을 하였고,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생애를 보냈다.
슈바이처 박사의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와 [람바라네 통신] 등의 책은 모금을 더 잘 하겠다는 뚜렷한 목적을 위하여 쓰여진 책이었지만, 무엇보다 '진정성'이 있었고 열대 밀림에서의 삶에 대한 흥미로운 묘사로 독자들을 만족시키고 있다.
결국 그의 의료봉사 활동을 전세계에 널리 알리면서 많은 유럽의 의사들이 슈바이처 박사에게 합류하고 끝내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하기에 이르렀으니, 애당초 집필 목적을 달성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유리아네 쾨프케가 애당초 책을 집필한 이유가 비행기 사고에 대한 체험수기를 쓰는 것에 그치지 않고 페루 원시림에 대한 보호의 필요성을 널리 알리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내가 하늘에서 떨어졌을 때]는 책 도입부에서 저자 아버지와 어머니의 학문에 대한 열정과 생물학 연구를 다루고, 책 후반에는 저자가 부모님의 뒤를 이어 페루 밀림에 들어가 박쥐를 연구하고 밀림 생태계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내용이 중요하게 다루어 질 수 밖에 없다.
실은 책 제목에 걸맞은 비행기 사고와 생존을 위한 투쟁에 대한 내용은 전체 분량의 1/3 정도여서, 생각하기에 따라 비행기 사고를 내세운 것은 일종의 미끼와 같은 역할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이 모든 것은 저자가 처음부터 의도한 것이고, 자신과 부모님의 삶, 비행기 사고, 남미 밀림의 중요성을 한꺼번에 엮어내겠다고 생각한 이상, 이런 구성은 필연적인 것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이공계 출신이고, 박사 논문을 비롯해서 많은 논문을 써 보았으며, 연구자들의 노력과 연구 열정을 존중하고 높게 평가하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 부모님의 연구에 대한 집념은 진정 존경스러울 뿐이었다.
동물학자로서 원하는 연구를 제대로 하기 위해 몇 년에 걸쳐 세계 각국을 떠돌아 가면서 심지어 부랑자로 잡혀 수용소 신세도 지면서 결국 남미로 건너가는 저자 아버지의 놀라운 의지, 그것에 맞장구 치면서 같이 따라가 연구에 전념하는 저자 어머니의 모습 - 솔직히 이공계 연구자들이 취해야 할 진정한 학문의 길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표상과도 같이 느껴졌다.
현장에 가서 몸소 그 곳에서 뒹굴어가면서 연구를 수행하는 것이 진짜 연구의 시작이자 근원일 수 밖에 없다는 깨달음 아래 하나하나 현장에서 직접 고생하여 동식물들의 데이터를 취하고, 그것을 다른 연구자들과 공유하고 교류하고 토론하면서 아카데믹한 연구물로 발전시켜나가는 과정이 너무나 인상 깊게 와 닿았다. 그래서 비행기 사고를 다루는 중간의 1/3 분량 못지 않게, 학문의 세계를 다루는 책 도입부와 결말부를 집중해서 읽을 수 밖에 없었다.
특히 논문을 쓰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모든 것을 자기 손으로 직접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기며 전심전력하고, 결국에는 그런 과정을 거치며 삶에 대한 깨달음까지 얻는 모습을 읽으면서, '본래 학문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라는 평범하고 당연하지만 어느새 한국사회에서 잊혀진 진리가 너무나도 아프게 와 닿았다.
저자는 환경보호에 대한 필요성을 설파하기 위해 부모님과 자신의 동물에 대한 연구 과정을 다루었지만, 우연찮게도 하필 책을 읽는 현재 시점의 한국 학계가 '타락한 연구자'와 그 주변을 맴돌면서 노력없이 남의 연구 과실만 탐내는 '논문 하이에나'로 인해 더럽혀지고 있어서 그런지, 이 책에서 다루는 진정한 학자들의 참된 연구의 모습이 오히려 더 인상적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학문하는 사람은 무릇 이런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비행기 사고 후 생존하기 위한 대목은 책의 1/3을 차지하고, 책을 읽기 전에는 [로빈슨 크루소]와 같은 생존물이 되리라 기대하고 있었는데 실은 그렇지 않았다. 물길을 찾아서 넓은 강물을 따라가면 구조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계속 길을 가는 이야기였고, 율리아네가 혼자 비행기 사고 후 물길을 따라 걷는 내용을 보면서 떠올린 책이 있었다.
진 M. 아우얼 [대지의 아이들] 1부 - 과거 [석기시대의 여자 아일라]로 나왔던 책의 도입부였고, 여기에서는 물놀이하러 집에서 나왔다가 갑작스러운 지진으로 부모님과 살던 집이 통채로 땅속으로 매몰되어 혼자 살아남게 된 어린 주인공이 막연히 물길을 따라가면서 고초를 겪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대목이 계속 떠올랐다. 물길을 따라가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내용이 공통적으로 나와서 인상적이었고, 그래서 오래전에 읽었지만 바로 기억에서 소환할 수 있었다.
이 대목은 [내가 하늘에서 떨어졌을 때]의 중심 역할을 하는데, 애당초 박력있는 테마여서 당연히 흥미롭게 잘 읽히지만 그 살아남기 위한 과정이 예상보다 다채로운 모험이나 사건 없이 단조로운 여정으로만 일관되고 있다.
물론 빈사 상태로 혼자 살아남은 10 대 소녀가 부상 당한 몸으로 간신히 길을 가는 것이기 때문에, 기억이 단조로울 수 밖에 없다는 사정은 충분히 이해 가능하다 - 게다가 정직하게 쓰여진 수기는 없던 일을 창작하여 집어 넣어서는 안되는 것이고, 정직이 첫 번째 철칙인 이공계 학문의 세계에서 단련받은 저자는 어떠한 과장이나 창작도 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비행기 사고 후 밀림에서 벌이는 고난의 여정은 나름 흥미롭게 읽히면서도 한 발 더 나아간 사건이나 시선을 끌만한 에피소드가 없기 때문에, 다 읽어내리고 나면 '이것이 끝인가 사건이 더 있을 것 같은데, 진짜로 이게 다 인가' 그런 아쉬움을 느끼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전반적으로 재미있었고, 짧게 끊기는 단문이어서 읽기 수월한 책이기도 하였다. 프로 작가가 아닌 저자는 미사여구나 문학적 표현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고, 그래서 단문을 구사하는 게 차라리 더 나아보이기도 하다.
다만, 현재와 과거를 책 곳곳에서 지나치게 많이 교차시키는 구성을 택하고 있는데, 왠지 이 모습 때문에 아마추어 느낌을 주고 있다. 이 책의 약점이라면 이런 구성이 어설픈 느낌이라는 것을 들어야 할 것이다
한국사회는 삶이 팍팍해져서 그렇게 속물이 된건지 아니면 속물이 돼서 삶이 팍팍해진건지... 한국에서 학문의 자세 운운해봤자 비웃음만 돌아올게 뻔함
그러고 보면 슈바이처도 옛날엔 꽤나 언급 많이 되던 위인 같은 사람이었는데 요즘은 영...
좋구먼. url 전달하시면 됩니다.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 dc App
유익한 글이였습니다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