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인터넷을 뒤지다보면 이런 질문들이 보인다. \'독서를 하는 게 인생에 도움이 될까요?\', \'독서를 하는 것과 여자친구를 사귀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가치가 있을까요?\'. 물론 이런 질문들은 별 영양가 없는 거짓 질문이다. 발화자가 인생과 가치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대답이 전혀 달라지는 질문일뿐더러, 이렇게 피상적인 수준에서 가치의 우열을 논하는 것에는 의미가 없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만약 당신이 도구적 목적을 위해, 그러니까 세속적인 의미에서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독서를 하고자 한다면 그건 무익한 일이 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나는 교양계급의 유형을 학자와 사교가로 분류하는데, 이것은 부르디외식 도식의 투박한 외삽이지만 그런대로 잘 들어맞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학자가 되기보다는 사교가가 되기를 권장하는 나라다. 당신의 세속적 성공을 위해 필요한 것은 오랜 독서를 통해 축적된 회색의 문화자본이 아니라, 스스로를 꾸미는 법으로부터 시작해 상대의 기분에 맞춰 대화하는 방법, 때와 장소에 적당한 매너를 갖추는 방법, 중요한 인물들의 성향을 파악하고 비위를 맞추는 방법, 나대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의 주의를 사로잡는 방법 따위다. 그것들은 암묵지의 형태로 전해지는 문화자본이고 독서를 통해 습득하는 것에 비하면 사람들 사이로 나가 사람들 사이에서 습득하는 쪽이 훨씬 그럴듯하다.


  이것은 독서를 바탕으로 하는 실천 그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여전히 우리가 쌓아올린 지식은 실천을 위한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실천의 외양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세속적으로 성공한 삶\'이라 그리는 모습과는 전혀 다를 것이다. 독서의 효용을 묻는 사람들에게 선뜻 독서가 가치 있는 일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다.


  내가 생각하는 독서의 가치는 오히려 세속적 성공이라는 목적의 정 반대 지점에서 나온다. 독서는 세속적 성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세속으로부터 한 발자국 물러나기 위한 취미다. 그것은 우리가 천착해 있을 수밖에 없는 지금 여기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거리두기를 가능하게 해준다.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들, 이를테면 법, 대의민주주의, 언어, 사회, 삶, 노동 따위가 어째서 당연한 것들이 아니며, 단지 특수한 역사적 맥락 하에서 형성된 특수한 시스템들에 불과한지를 깨닫게 해준다. 독서는 우리의 일상적 세계로부터 은폐된 것들을 드러낸다.


  우리가 도구적 효용을 위해서 하는 행위를 일, 일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행위를 취미라고 한다면, 독서는 일이 아니라 취미로 남아야만 한다. 윤리가 강제가 되면 그것은 윤리가 아닌 법과 정치가 된다. 마찬가지로 독서가 일이 된다면 그것은 독서가 아닌 자본의 축적이 된다. 자본이 되어버린 독서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진지한 가치가 전혀 남지 않는다. 우리 시대의 사람들은 학자를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