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철학 입문서를 추천해달라는 사람들이 있어서, 이렇게 두 권의 책을 추천하고자 합니다.


  철학 입문서로 힐쉬베르거나 러셀을 추천하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 이 두 사람의 책은 입문자에게 권할 만한 저작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예 맨땅에서 읽어나가기엔 꽤 어려운 책인 것도 문제일 뿐더러, 그들의 글쓰기 자체가 입문자를 배려하는 글쓰기라 하기 힘든 탓입니다. 학부에서 철학사를 가르치는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힐쉬베르거의 책은 철학사의 대가가 진행하는 철학적 논평에 가깝고, 러셀의 책은 20세기 초 분석철학자 특유의 오만함이 진하게 묻어난다고 합니다. 저 또한 이런 평가에 동의하는 편이고, 그렇다보니 입문자가 이들의 논의를 따라가는 것은 벅찬 감이 있습니다.


  철학사가 아닌 철학 그 자체에 대해 입문하고 싶은 것이라면, J.M. 보헨스키가 쓴 <철학적 사색으로의 길>은 상당히 괜찮은 저작입니다. 철학적 문제들에 대해 간결하면서도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어 입문서로 이보다 나은 책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번역자가 전문적인 학술인이 아닌 전업 번역가다 보니, 번역의 질에 대해서는 말이 좀 나오더군요. 그렇다보니 저는 영어로 읽었는데, 그렇게 어려운 글이 아니기 때문에 원서로 읽는 것도 고려해볼만 합니다.


  철학사에 입문하고 싶은 것이라면 역시 스텀프의 철학사, 대한민국에는 <소크라테스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로 번역되어 나온 철학사를 추천합니다. 특히 객관성과 입문자를 배려하는 글쓰기라는 양 측면에서 스텀프의 철학사는 두루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힐쉬베르거나 러셀의 책에서처럼 설명되지 않은 용어를 남발하면서 입문자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경우는 전혀 없습니다.


  어쨌거나 제 바람은 철학 입문서를 알려달라는 사람에게 힐쉬베르거나 러셀을 추천하는 사람은 없어졌으면 한다는 것이군요. 특히 유럽의 철학적 언어 그 자체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 사람들에게 이 책들은 조금... 버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