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칭 소설가란 인물을 그려내는데 진짜 솜씨가 너무 탁월함. 읽는 내내 숨이 턱 막히더라. 그 소설가가 나인 것 같기도 하고, 그 소설가를 경멸하는 화자가 나인 것 같기도 하고. 젠 체하는 예술가와 그를 경멸하는 사람, 둘 다 실제로 파다한 인간군상들이기도 하고.
-----
"뻔뻔스러워서 어디든지 잘 나서고. 뭐든지 자기가 빠지면 안 될 듯이 생각하고 친구들의 우정에 대해서도 마치 노예가 주인 섬기듯이 대해 주기를 기대하고 그나마 우정에 대한 보수(報酬)로서는 억지로 지어낸 엉터리 음담패설이다."
"성실한 데라고는 도시 찾아볼 수가 없는 성실한 척 해 보이려는 노력만이 일종의 고통의 표정으로서 작자의 얼굴에 나타나 있을 뿐. 그나마도 작자 자기와 흡사한 친구들 앞에서나이다. 마치 자기네들에게만 고뇌(苦惱)가 ― 작자가 곧잘 사용하기 좋아하는 고뇌가 있는 것처럼 얘기하고 정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부딪쳐서 투쟁하고 있는 고뇌에 것에 대해서 얘기할 때는, 웩. 정말 구역질 난다."
"작자는 가난하다는 게 무슨 자랑이라도 되는 것처럼. 자기 맘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좌우간 가서 붙들고는. 제겐 돈은 없지만 순정은 있습니다. 고 말하며 아마 상대편의 <순정>을 구걸하는 모양인데 작자의 그런 태도란 만약 작자에게 쇠푼이라도 있었더라면. 저의 집엔 자가용도 피아노도 텔레비도 있으니 저와 결혼해 주세요. 라고 틀림없이 말할 놈인 것이다."
"어지간히 살고는 싶은 것인지 급작스런 죽음을 당할 경우에 대비해서 품속에 늘 유서(遺書)를 품고 다닌다. 따는 그 유서가 한 번 보고 싶기도하다. 거기에만은 다소 진실에 가까운 얘기가 쓰여 있을는지. 그러나 모르긴 해도 아마 그것을 보지 않는 편이 다행스러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작자의 거짓말은 지나칠 정도로 능숙하니까."
"사랑. 사랑 받지도 못하고 사랑을 주기도 무서워져서 치한이 되었다니. 뻔뻔스러운 얘기다."
"<사랑은 주는 것. 가장 아름다운 것은 슬픔이라는 감정.> ―이러한 사랑의 ABC도 작자는 들어보지 못한 게 분명하다."
"영화배우나 됐더라면 만족했겠지만 그러나 용모에게 자신이 없었던지 소설가라고 스스로 칭호를 붙여 놓고 으스대기만 하는 놈이다."
"작자는 빚이라도 진 기분으로 하루 저녁쯤 <고뇌>하고는 그 길로서 이젠 체면은 섰다는 듯이 열흘을 배짱 편하게 사는 놈인 것이다. 하룻밤 벌어서 열흘을 살 수 있다면. 오오. 세상 어디에 가난뱅이가 있겠는가."
"즐거워서 웃는 게 아니라 남의 비위를 맞추려고 웃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내가 취하기 위해서. 라고 얘기하면. 아니지요. 그리워하기 위해서 라고 엉뚱한 응수를 해 오는 놈이다."
"그렇지만 이 얼치기. 가짜. 흰수작만 하는 소설가여. 슬픈 목소리로 솔직히 이렇게 중얼거리실지어다. 심각한 체라도 하지 않고서는 살수가 없다고."
------
고향에 돌아온 누이, 고향을 떠나는 나, 잡문들, 다시 누이에게서 온 전보, 축전으로 돌아오는 구조도 기가 막히다. 문장은 말할 것도 없고.
진짜 글을 어떻게 잘 쓸 수가 있을까... 김승옥 하면 보통 특유의 감수성만 떠올리지만 나한테는 인간의 바닥까지 건드리는 깊이 있는 작가임...
------
"온 들에 황혼(黃昏)이 내리고 있었다. 들이 아스라하니 끝나는 곳에는 바다가 장식처럼 붙어 보였다. 그 바다가 황혼녘엔 좀 높아 보였다. 들을 건너서 해풍(海風)이 불어오고 있었지만 해풍에는 아무런 이야기가 실려 있지 않았다. 짠 냄새뿐, 말하자면 감각(感覺)만이 우리에게 자신을 떠맡기고 지나갈 뿐이었다. 우리는 모두 그것에 만족하고 있었지만 그래서 오히려 우리들은 좀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던 것일까. 설화(說話)가 없어서 우리는 좀 우둔했고 판단하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누구나 그렇듯이 세상을 느끼고만 싶어했다. 그리고 그들이 항상 종말엔 패배를 느끼고 말듯이 우리도 그러했다."
"하루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무서운 사건이 세계의 은밀한 곳에서 벌어지고 그리고 다음날은 희생자들이 작은 조각에 몸을 기대고 자기들의 괴로움을 울며 부유(浮遊)하는 것이다."
"절망(絶望)이란 단순히 감정상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논리(論理)가 꺾이고 지성(知性)이 힘을 잃고 최악(最惡)의 감정, 예컨대 증오(憎惡)조차 사라져 버리는 저 마구 쓰리기만한 감촉의 시간."
"항상 질문하는 편이 되고 그러면 상대는 얼떨떨해져서 열등감을 약간은 느끼고 나는 그걸 보고 약간은 우쭐대고. <다스라니스키>라는 이름은 방금 내가 지어낸 것, 따라서 그런 소설가란 없었던 것이다."
<운명(運命)과 우연(偶然)을 생각해 본다. 그리고 둘 다 부정해 본다>
증명 : 거울 앞에 서라. 거기에 비추인 네 얼굴을 보라. 웃는가? 아니 그 반대다. 그럼 네 선조로부터 시작되어 반복되는 저 위대한 실험을 생각하라 - 그러나 그것도 또렷한 불확실(不確實).
위대한 사상(思想)과 위대한 파괴(破壞)와는 어쩔 수 없는 관계인 모양이다. 무엇인가를 발굴(發掘)해 가는 예지(叡智)는 신의 나라를 허물어 버리고 있다. 저 하늘에 있던 나라의 모든 건물이 지상(地上)에 끌려 내려와 세워지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의 옥좌(玉座)마저 지상에 놓일 때 그 의자 위에는 <나>가 앉을까? <남>이 앉을까?
"경계하면서 사랑하는 체, 시기하며 친한 체, 기뻐하며 슬퍼해 주는 체, 저는 너그럽습니다, 라고 표시하기 위하여 웃으려는 저 입술의 비뚤어져 가는 저 선(線)이여. <모나리자> 같은 선생님, 만수무강하십쇼. "
"어느 날 고향의 어머니께 보내고 싶은 마음 간절했던 편지의 한 구절 - <실은 의사(醫師)가 되고 싶었는데 병자(病者)가 되어 버렸어, 라고 힘없이 말하며 병들어 죽어간 친구를 오늘 보고 왔습니다> "
"<우리의 이 모든 괴로움 속에서 태어난 네 자식은 우리가 그것을 겪었다는 이유로써 구원받을 미래인이 아니겠는가>라는 나의 기도를 제대로 읽어주기만 한다면 누이도 나의 축전을 받아들고 과히 당황하거나 부끄러워하지도 않으리라. 제발 지금 나의 이 뒤얽힌 감정 중에서도 밑바닥을 이루고 있는 이 한 가지의 기도가 실현된다면 그러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해당 댓글은 삭제되었습니다.
김승옥은,,, 신이야,,,
뭐가좋은지모르겠다
뭐 취향 차이니까... 플롯 구성부터 문장 하나하나의 아름다움이나 깊이까지 내 보기엔 거의 극에 다다른 글인데...
나도 단편집 읽으면서 이 작품이 상당히 맘에 들었었는데 다른 작품에 비해 잘 언급이 안 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