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내가 모든 사람과 모든 곳이 될 수만 있다면!

- 알바루 데 캄포스, <승리의 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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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부를 누렸지만, 모더니즘의 시대가 열릴 즈음에 이미 포르투갈은 몰락한 나라였다.

그러나 일명 <오르페우> 그룹이라 불리는 일련의 거대한 예술가 집단의 등장으로, 포르투갈의 문학과 예술은 낙후된 나라와 달리, 뒤처지지 않았다.

아니, 오늘날까지 전설로 남아있는 모더니스트들을 낳았다.


오늘은 유럽의 변방으로 전락한 포르투갈에서 오늘날까지도 누구보다 빛났던 한 모더니스트들에 대하여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이 <오르페우> 그룹의 중심을 이루던 소집단은 특이하게도 서로 사제 관계로 이루어진 친목질 집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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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을 기리기 위하여, 그 중 대표적인 이들을 포르투갈에서 예술가가 벽화로 캐리커처를 남기기도 하였으니, 실로 오늘날 포르투갈 문학의 자부심을 대변하는 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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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친목질 집단의 중심을 이끌던 이는 특이하게도 문학이나 예술과 거리가 먼 양치기였다.


그의 이름은 알베르토 카에이루. 1889년 리스본에서 태어나, 1915년에 죽었다.


그는 자수성가한 시인이었고, 공부를 하지 않았기에 직관적이었다. 사실 그는 <오르페우> 집단이 만들어진 해에 죽었으므로, 실질적인 <오르페우> 활동을 하진 못하였지만,


<오르페우>에 소속된 작가들 상당수가 그의 '제자'를 자처했다. 그의 제자들과 그는 종종 리스본에서 이런저런 예술에 관한 논쟁을 벌였고, 제자들은 그의 시집은 <양치기>, <사랑에 빠진 양치기> 등으로 출간하여 오늘날까지도 대표적인 포르투갈의 시인으로 남는다.



<누군가 나에게 나의 시에 대해 물었지: 여기 어떤 새로운 것이 있죠?

누구나 꽃이 꽃이고, 나무가 나무란 것을 알아요.

하지만 나는 대답했네: 아니오, 아무도, 아-무-도.

왜냐하면 모두들 꽃을 사랑하죠, 그것이 아름답기에, 하지만 나는 다르답니다.

모두들 나무를 사랑하죠, 그것이 푸르고, 그늘을 주기에, 하지만 나는 아니에요.

나는 꽃을 사랑합니다, 그저 그들이 꽃이기 때문에.

나는 나무를 사랑합니다, 그저 그들이 나무이기 때문에, 아무런 생각 없이.>

-알베르토 카에이루



<내 마을에선 나는 다른 곳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대지의 이곳저곳을 볼 수 있다

그러니 내 마을도 다른 곳처럼 넓다.

나는 내가 보는 것만큼 크지

내 키만큼의 크기를 가지지 않으니까.>

- 알베르투 카에이루(페르난두 페소아), 양을 치는 목동 VII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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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카르두 레이스


그는 카에이루보다 연장자였지만, 카에이루를 스승으로 모시며, 그와 오랜 시간 리스본에서 논쟁을 즐기며 역시 시를 써왔다.


1887년 오파루투에서 태어난 리카르투 레이스는 포르투갈 왕정주의자였으며 <오르페우> 활동에도 참여하지만, 왕정 폐지 이후, 1919년 포르투갈을 떠나 브라질로 떠나 그곳에서 생을 마감한다.


카에이루가 직관적이었다면, 리카르두 레이스는 왕정주의자답게 보수적이었으며 라틴 문학, 그것도 호라티우스의 추종자였다.


그는 호라티우스를 모방하여 송가 형식으로 된 시들을 남겼으며 그의 동생 페데리코 레이스 또한 산문 작가로서 <오르페우>에 참여한다.


<내 운명이 내 모든 것을 부정하기를, 운명을

보는 것을 제외하고, 왜냐하면 나, 이 엄격하지 않은

금욕주의자는 운명이 새긴 문장의

모든 글자를 즐기기를 원하기에.>

-리카르두 헤이스, 송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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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 포르투갈 타비라에서 태어나, 스코틀랜드 글라스고에서 선박 엔지니어링을 공부한 알바루 데 캄푸스는 가장 국제적이었으며 <오르페우>에서 가장 열렬하게 참여한 작가이자, 카에이루의 열렬한 추종자였다.


아일랜드와 아시아 항해를 걸쳐 무직으로 리스본으로 돌아와 결국 시인으로서 생활할 수밖에 없었는데, 런던에서 공부하고, 세계를 돌아다닌 만큼, 유럽의 유행에 누구보다도 민감하여, <오르페우> 그룹 중 제일 먼저 미래주의를 추종하고 받아들이기도 하였다.


그는 휘트먼식 미래주의자였다. 휘트먼의 <나 자신의 노래> 같은 스타일과 사상을 추종하면서도, 기계를 원하였다.


<만약 내가 내 온 존재를 엔진처럼 표현할 수만 있다면!

만약 내가 기계처럼 완전할 수만 있다면!

만약 내가 최신 모델카처럼 삶을 위퐁당당하게 갈 수만 있다면!

- 알바루 드 캄푸스, <승리의 송가>



이 밖에도 <오르페우>에 참여하는 카에이루를 중심으로 한 친목질 집단의 숫자는 무수히 다양하였다.



신 이교도주의를 믿는 정신병자도 있었다. 그의 이름은 안토니오 모라. 카에이루 집단에서도 특히 이질적이었던 그는 토가를 입은 채 정신병동에서 삶을 마감하였지만, 그가 남긴 산문 <신들의 귀환>은 오늘날 포르투갈 모더니즘의 대표적인 산문집이 되었다.


그 밖에 <스토아주의자의 교육>을 남긴 테이브 남작, 번역가이자 작가 토마스 크로체, 영국계였지만, 포르투갈에서 번역가와 시인으로 활동하던 알렉산더 사치와 그의 동생 찰스 제임스 사치,


그리고 오늘날 우리에게 <불안의 책>으로 잘 알려진 베르나르두 소아레스 등 짧은 기간동안, 리스본에선 수많은 모더니스트들이 한 그룹에서 등장하며 포르투갈 문학을 풍족하게 해주며 우리를 즐겁게 만들어준다.


포르투갈 문학도 즐겨보는 것이 어떨까?


그나저나 의문이 생긴다.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모더니스트들이 한 그룹에서 나올 수 있었을까?


물론 이유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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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젠부 와따시다."




이 모든 작가들은 하나의 이름과 육신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바로 <페르난두 페소아>.

20세기 가장 위대한 시인 중 하나이자, 오늘날까지도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모더니스트다.



<나는 아무도 아니다.

나는 언제나 아무도 아닐 거다.

나는 무언가가 되는 것을 원할 수도 없다.

하지만 내 안에 세계의 모든 꿈을 품고 있다.>

- <담배가게>, 페르난두 페소아




1888년 리스본에서 태어난 페르난두 페소아는 어릴 적 아버지를 잃는다. 어머니가 재혼을 한 상대는 포르투갈 영사였는데, 양아버지의 직장이 남아공으로 발령이 났고,


어린 페소아는 남아공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게 된다.



이 당시 남아공은 영국의 식민지였고, 자연스럽게 페소아는 영어와 영문학을 접하게 된다. 그는 어릴 적부터 영어로 단편이나 시를 쓰고 잡지에도 발표하였지만, 사실 그의 영문은 그가 즐겨 읽어온 구식 영국 낭만주의 문체였고, 딱히 큰 주목을 받진 못한다. 나이도 그렇지만.

휘트먼을 접하며 팬이 되기도 한다.



그러던 중, 그는 1905년 공부를 위하여 다시 리스본으로 귀환하게 된다.



<다시 한 번 너를 보는 구나, 리스본, 테주 강, 그리고 나머지여>

- <다시 찾은 리스본>, 페르난두 페소아



그가 리스본으로 돌아왔을 때에 모든 것은 혼란이었다. 일단 페소아 본인이 공부에 실패했고, 때 마침 학생 데모가 일어나며 지속하기 어려웠다. 정치적으로도 왕이 암살 되는 등 혼란의 아수라장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아수라장 속에서 페소아는 드디어 자신의 모국어로 시와 글을 쓰기 시작한다.



<내 조국은 포르투갈어다.>

- <불안의 책>




이후 그의 삶은 리스본에서 쭉 지속된다.



그는 리스본의 여러 작가들과 교류하며 자신의 천재성을 인정받았고, 앞에서 말한대로 1915년엔 포르투갈의 모더니즘 운동이었던 <오르페우 운동>의 중심이 되어 <오르페우> 잡지를 발간하고 자신의 작품도 발표하는 등, 열렬하게 활동한다. 비록 잡지는 2호까지 밖에 나오지 못했지만, 오늘날 포르투갈 문학의 핵심적인 운동 중 하나로 남는다.



그는 살아생전 책을 출판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완전한 무명은 아니었다. 앞서 말한대로 포르투갈 문단은 그를 잘 알고 있었고, 그 나름대로 작품을 꽤나 발표한다.


무엇보다 포르투갈에서 주최한 시 경연대회에서 그의 시집 <메세지>가 수상을 하기도 하였다. 물론 써야하는 시 갯수가 부족하여 특별상이었지만, 애당초 그냥 탈락시키기엔 너무나도 뛰어나서 어쩔 수 없이 특별상을 준 특혜였다.




그는 여러모로 특이한 인간이었고, 수많은 위대한 작가들 중에서도 제일 기이한 인간이었다.


역시 그의 대표적인 전설적인 면모론 <이명>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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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필명이나 가상의 인물을 내세워 작품을 발표하는 작가들은 많지만, 어느 누구도 페르난두 페소아 만큼 자신을 수많은 타자로 쪼개진 못하였다.



앞서 설명한 각 작가들의 설명은 모두 페소아 본인이 설정한 것들이었다.


그는 말 그대로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으로서 수많은 다양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의 어릴 적부터 시작되었다는 이 놀이는 그의 대표적인 이명 3인방, 알베르토 카에이루, 알바르 데 캄포스, 리카르두 레이스가 1914년 3월에 탄생하면서 본격적으로 활성화되었다.


서로 다른 사상과 스타일, 그리고 쓰는 글의 종류마저도 다르기에, 단순히 필명이 아닌, '이명'이란 특별한 명칭이 필요할 정도로, 그는 자신을 수많은 작가들로 분리하였고, 또 스스로를 쪼개었다.


페소아가 과연 이 모든 것들에 대하여 동의하고, 자신의 생각으로 여겼을까? 이는 논쟁의 대상이다. 하지만, 그의 수많은 분신들이 등장하여 서로를 비판하는 단편들을 보면,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사실 페소아는 이미 시에서 어느 정도 답을 준다.


<사람들은 늘 같은 곳에

머무르는 것에 지친다는데

어째서 늘 같은 자신으로

있는 것엔 지치지 않는 건가?>

- 페르난두 페소아, 1931/04/05



물론 때론 어떤 이명은 고작해야 단편 하나, 혹은 시 몇 편만을 남겼을 뿐이거나, 공저자로 남는다. 그럼에도 그가 정확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창조했는지는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다. 대략 80여 명의 이명을 썼을 것이라고 우리는 추정할 뿐이다.




수많은 이명 덕분일까? 페르난두 페소아는 정말로 기이하기 짝이 없는 인물이었다.



한때는 포르투갈의 군사정권이나 독재자 살라자르를 지지했다 곧바로 지지를 철회하며 비판하고,


포르투갈 문학의 아버지 <까몽이스>를 추종하며, 포르투갈의 세바스티앙 왕이 다시 돌아와 구원해줄 것이라는 제5제국와 세바스티앙주의를 신봉하는 왕정주의자처럼 보이면서 <메세지> 같은 국수주의적 서사시를 출판하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론 이 모든 걸 비웃듯 국왕시해를 논한다. 게이라는 설도 있지만, 그러면서도 여성과의 연애편지모음도 남기고 있으므로 여러모로 수수께끼 같은 존재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며 끝이구나.

모든 것이 흩어지고 없을 뿐이구나.

오 포르투갈이여, 너는 안개구나...


때가 되었다!>

- 페르난두 페소아, <안개>/<메세지> 中



예이츠처럼, 그는 또한 오컬트주의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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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악명 높은 알레스터 크롤리와 개인적인 친구이기도 하였다.


크롤리의 저서에서 별들의 운행 도표가 잘못되었다는 걸 지적할 정도로 지식이 깊었고, 이로 인하여 친구가 되었다고 하며


크롤리의 리스본 방문 당시, 자살 소동에 동참하여 가짜 증인을 자처할 정도로 기인이기도 하였다.





출판을 거의 하지 않았지만, 페소아 본인에겐 출판을 향한 원대한 계획이 있었고, 그는 자신의 수많은 원고, 발표되지 않은 원고들을 정리하며 출판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그러나 1935년, 47세의 나이로 페르난두 페소아는 급사하면서 그의 모든 계획은 물거품이 되는 듯하였다.



<그는 죽을 것이고 나도 죽겠지.

그는 그의 간판과 작별할테고, 나는 내 시들과 이별할거야.

그의 간판도 결국엔 죽겠지, 내 시도 마찬가지일테고.

결국엔 간판이 있었던 거리도 죽을 거야,

내 시들이 쓰여진 언어도 그러겠지.

그럼 이 모든 것이 일어난 행성도 빙그르 돌다 죽겠지.>

-페르난두 페소아, <담배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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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 페소아 박물관에서 직촬함)



그러나 페소아의 가족들과 친구들은 페소아의 방에서 거대한 트렁크 하나를 발견한다.


그 안엔 수만 장의 페소아의 원고들이 담겨 있었다. 친구들마저 알지 못했던 수많은 시와 산문들이.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편집을 하며 미처 전부 소개되지 못한 이 거대한 트렁크는 페르난두 페소아를 20세기 가장 위대한 시인이자 작가, 그리고 포르투갈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로 만들어주었다.



수많은 대가들이 그러하듯, 페소아 또한 여전히 연구 대상이자 기이하기 짝이 없는 대상이지만, 사실 독자들에게 페소아는 그저 즐겁게 읽으면 될 존재일지도 모른다.


<불안의 책> 등 그가 편집하려고 한 원고모음을 후대의 연구자들이 임의로 편집하여 여러 종류의 판본들이 존재하고, 여전히 수많은 원고들, 영어와 포르투갈어, 프랑스어로 쓰여진 판본들을 편집하지만, 우리로선 그저 즐기면 되는 거 아닐까?



페소아는 익히 시인과 작가에 대해 이렇게 말하였다.



자동심리묘사법

- 페르난두 페소아


시인은 본디 흉내내는 자라

너무나도 흉내를 잘내기에

고통마저도 흉내내곤 한다

그가 정말로 느끼는 고통마저도.


그의 글을 읽는 자들은

그가 가졌던 고통이 아니라

그저 그들이 놓친 것을

그의 글 속에서 느낄 거다.


그렇게 거친 궤도를 돌며

심장이라 불리는 이것이

작은 태엽 장치 장난감 기차의 태엽을

감아주곤 우리 마음을 즐겁게 해준다.





국내에도 소개된 <불안의 책>이나 그의 산문집, 시집들을 읽으며 우리가 놓친 것을, 트렁크 속에 담긴 우주를 츄라이해보자.








모더니스트의 기묘한 모험


- 20세기 최고 시인 예이츠의 환상록과 자서전 읽으쉴?

- 프루스트와 조이스의 자존심 강한 제자 대결

- <율리시스>는 어떻게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책이 되었는가?

- 냉혹한 이탈리아의 마피아 작가

- 폴란드식 기묘한 모더니즘 작명법

- 조이스의 기묘한 유언

-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

- 유교 탈레반은 파시즘을 꿈꾸는가? (1), (2)

- 뿌슝빠슝 안아키를 하던 극작가가 있다?!

- 위대한 피츠제럴드 (1), (2)

- 아일랜드인들의 아름다운 전통이란?

- 본인 오늘 마초 되는 상상함

-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약이 필요한가?

- 냉혹한 남아공의 파시스트

- 모더니스트란 누구인가?

- 그렇다면 모더니즘은 언제 시작되었는가?

- 알렉산드리아에서 온 공무원

- 오 빅보스 마이 빅보스

- 작가는 권력가를 꿈꾸는가?

- 토끼공듀의 삶

- 오 캡틴 마이 캡틴

- 양키인 내가 대영제국 시민?

- 세상에서 제일 끔찍한 것은?

- 오늘은... 바람이 소란스럽

- 테에에엥 마망 (ᗒᗣᗕ)՞

- 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

- 슈르레아아아아알 - 다다다다(2)

- 초현실대전 - 다다다다다슈르레아아아알(3)

- 1억의 비명을 대신 쏟아내는 지친 입

- 자동차박이들의 찬가

- 특성 없는 제국, 특성 있는 남자

- 나보코프가 뽑은 4대걸작을 알아보자

- 켈트의 동정 대마법사 (1)

- 너 나 지큼 동정해?

- 연극이여 신화가 되어라

- 부조리를 기다리며

- 주나, 살아있니?

- 나치참기 LV 99

- 독일 소설은 어떻게 노잼의 대명사가 되었는가?

- 밤 끝으로의 파시즘 여행

- 잔혹한 위뷔가 지배한다

- 베케트는 배우들을 좋아해

- 내가 엠마 보바리다

- 하늘에선 시인의 왕, 그러나-

- 뿌슝빠숑! 비트겐슈타인이 찬양하던 시인이 있다?!

- "대충 알았다 너희들의 레벨"

- 영국적인, 가장 영국적인

- 모더니스트들이 즐기던 게임

- 레닌이 매료되고 스탈린이 반한 참된 시인

- 러시아에서의 흑사병 연대기

-"사실 할로윈이란 것도 아일랜드에서 온 거거든요."

- 조이스가 매료되고, 쇼가 반한 민중의 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