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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생활자의 수기 –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 이동현 옮김 / 문예출판사 / 1998
자연으로부터의 자유
그들은 자연의 품이 아닌 증류기에서 태어난다. 그들의 강한 자의식은 고통 속에서 깨어난다. 그들의 입에서는 자의식을 표출하기 위한 신음이 새어나온다. 그들은 복수 의지 대신 끝없는 사색으로 머릿속을 채워간다. 자기만족을 위해 자기 파괴를 멈추지 않는, 어떤 이익 앞에서도 자신의 이상을 놓지 않는, 누구보다 비이성적인 그들은 누구보다 자유롭다.
정상적인 인간, 즉 ‘자연과 진리의 사람’은 실천적이고 활동적인지라, 말하자면 투우사 앞의 황소 같은 이들이라, 무엇에 몰입하면 그게 붉은 천이라도 된다는 듯이 달려들지만, 때로 붉은 천이 걷히고 이들이 마주하는 것은 허공도 목표물도 아닌 견고한 벽이다. 벽이란 “2×2는 4” 따위의 절대적인 자연 법칙이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이들은 어딘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지도 못한다. 어쩌면 애초부터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자연의 품에서 태어난 순간부터 그 품에 구속되어, 몸은 물론이요 정신까지 자연 법칙에 얽매여, 묶인지도 모른 채로 평생을 못 헤어난다.
증류기에서 태어났다는 족속, 그것들은 첫발을 내딛어보기도 전, 누구보다 깊은 사색에 빠져들어, 자신의 눈길이 닿는 곳곳, 아직 아무도 마주하지 못한 벽도, 이미 누군가의 앞을 가로막은 벽도, 어딘가로 달려가는 한 인간의 시선 속, 보이지는 않으나 그 끝에 있어서, 언젠가 그가 온몸으로 들이받게 될 벽도, 또한 무수한 벽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도, 그 벽들이 눈이 마주친 자신에게 다가와 앞에 서도, 사방을 둘러싸 한 발도 내딛을 수 없게 되고도, 놀라거나 좌절하거나 하지를 않고 도리어, 벽에 머리를 있는 힘껏 부딪어 세상의 온 고통, 온 고초는 다 겪는다는 듯이 신음을 내질러서, 누구도 흉내 못 낼 자신만의 곡조, 목소리로 강렬한 자의식을 표현함으로써, 비로소 자연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사람들의 참 이익이 무언지, 어떻게 행동해야 얻는지가 밝혀지면 모두 이성적으로 행동하리라는, 낙관적인 관측을 화자는 비판한다. 자유에 대한 의욕이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나쁜 것이 아님을 강조하며 비이성주의를 옹호한다.
나도 그 관측이 틀렸으며 자유를 위해 손해를 보는 것이 나쁜 행위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내가 이성주의자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보편적인 이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생존과 같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익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이 보편적인 이익이라면 자살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같은 생명일지라도 개개인은 저마다의 욕구를 갖고 있다. 그것을 충족하는 것이 각자의 이익이다.
그러므로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보편적인 이익을 좇을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진정한 욕구가 무엇인지부터 찾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화자는 충분히 이성적이다. 자유가 자신에게 있어 최우선임을 깨달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자신이 비판한 이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이익을 보편적인 것으로 규정해버렸다. 그것이 그의 한계점이다.
이익이 자연적이지 않을 때 우리는 자유롭다. 자유가 자연적이지 않을 때 우리는 자유롭다. 나는 무엇보다 내가 자유로워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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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읽어보셈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