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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책을 매우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책이 낱장으로 떨어져 나갈 기미가 보이거나 책의 등이 이등분될 조짐이 보이면 즉시 칼이나 가위, 보수테이프를 들고 수선에 돌입한다.

그런데 이런 내가 책은 지저분하게 본다. 내가 읽은 책들은 온갖 메모와 표시로 어지럽다.

책을 읽으면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 떠오르는 것, 의문나는 것들을 모두 여백에 적고 밑줄치고 표시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책의 내용만큼 끄적거려 놓은 낙서들을 소중하게 여긴다.

그것은 소중한 내 생각의 편린이요, 새로운 사유의 실마리이기 때문이다. 낙서로 가득한 책은 이미 다른 누구의 책이 아니라 나만의 책이다.


그래서 읽고 싶은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지않고 거의 사는 편이다.

책을 사는 것은 단지 책을 읽으려고 사는 것이 아니라 읽으면서 생각나는 것을 적기 위해서 이다.

어찌보면 낙서하기 위해서 책을 산다.


또한 책을 사서 읽어야 하는 이유가 또하나 있는데.

책을 사지 않으면 나중에  다시 읽고 되새길 수 없다. 책을 빌려보는 사람이 사서보는 사람보다 책의 내용을 기억하기 어려운 이유는 바로 되새기기를 할 수 없는 데에 있다.


그러나 책을 사서 읽은 사람은 책장에 꽂아 놓고 다시 펼쳐 보지 않는다 해도 제목만 읽는 것만으로도 책의 내용을 되새기게 된다.

좋은 책은 한번 읽었을때 알려주지 않았던 것을 두번 읽을 때 알려주곤 한다.


책을 소장용으로 보관하는 것이 아니고, 머릿속에 보관하고 싶다면

책을 과감하게 버리는 기분으로 메모하면서 읽는 것이 좋다.


메모하면서 책을 읽은 후부터는 나는 책을 누구에게 빌려줄수도 없게 되었다.

만약 책을 돌려받지 못하게 된다면 그것은 단순히 책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의 편린들을 잃어버린 것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