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그대의 말처럼 <세계에 지치고 의지에 권태를 느껴> 죽은 것도 아니고 <너무나 거대한 자기연민에 질식한>것도 아니며 <황혼을 소요하다가>죽은것도 아니다. 다만 죄많은 언어로 위장된 그대의 광기와 악의에 살해됐을 뿐이다. 그러나 보라. 신의 자리를 노려 보낸 그대의 하수인은 아직도 무슨 재앙처럼 지상을 떠돌고 있다. 오직 대지와 인간만을 위해 온 것 같지만, 한번 신의 자리를 차지하기만 하면 그 무엇보다도 심술궂고 변덕많은 정신의 압제자가 될 초인이 바로 그다. 인간을 초인과 짐승 사이에 걸쳐 있는 밧줄로 비유했을 때 우리들은 놀라고 의심했다. 일찍이 소중하게 여겨왔던 지상의 여러 가지를 허물고, 교회와 국가의 폐허 위에 전당을 세우라고 권해 왔을 때 우리는 주저했으며, 마침내는 우리들조차 스스로 몰락해가기를 요구해 왔을 때는 두려움으로 떨었다. 그런데 에덴의 전설 이래 우리에게 보편적으로 잠재된 피해망상증과 교부들의 품을 떠나면서부터 축적돼 온 지식의 독기가 먼저 그대의 광기에 자극받아 발작하기 시작했다. 이어 세기말의 혼란과 퇴폐가 가세하고, 다시 추종으로밖에는 자신을 드러낼 길이 없는 범용한 재능들이 떠들썩하게 뒤따랐다. 그리하여 우리 대부분이 망연히 보고 있는 사이에 조상들의 가장 위대한 발명이었던, 그리고 가장 고귀한 유산이었던 신은 참혹하게 살해되고 그대의 초인이 남았다. 하지만 정작 그대의 큰 과오는 그대가 초인을 탄생시킨 것이 아니라 완성되지 않은 그를 두고 홀로 떠나버린 일이다. 물론 그대는 유자를 부탁하고 떠났을 터이지만 어리석고 불경스런 그대의 추종자들은 아무도 그 양육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 요란한 때때옷을 입혀 시장바닥을 업고 다니던 것도 잠시, 그들은 하나둘 자기들의 돌성으로 돌아가버렸고,이제 그대의 유자는 다만 어린 악령으로 이 세상을 배회할 뿐이다. 아아, 그대는 진실로 그 초인이라도 완성하고 죽어야 했던 것을... 철학은 신을 살해했지만 그로 인해 스스로의 임종을 앞당긴 것을 모르고 있다. 문학이나 사회학과 야합하거나 언어학이나 수학에 빌붙어 허세를 부리는 몇몇을 제외하면 이 시대의 철학은 이미 있는 것을 정리하고 분류하고 보존하는 늙은 사서의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이제 우리는 머지않아 그들의 임종을 지켜보게 될 것이다..



이문열 젊은날의 초상 중에서..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