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노레 드 발자크는 방대한 역작 <인간희극>을 남겼죠. 그 시리즈 중 하나인 <잃어버린 환상>에는 뤼시앵 드 뤼방프레라는 꽤 능력 있는 젊은 시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뤼시앵은 외모가 훤칠하고 낭만적인 시도 잘 쓰는 열정적인 인물이며, 또한 인정욕망이 강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는 문학적 영광과 세속적 명예에 대한 꿈을 안고 파리로 상경하는데, 여차저차 귀부인과 만나 언뜻 잘 되어가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이런저런 불운과 실패를 겪으며 몰락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발자크가 리얼리즘 작가, 즉 현실의 재현을 중시한 작가였다는 거죠. 그래서 발자크는 뤼시앵이 쓴 걸로 설정된 시를 진짜 작품 내에 실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더 진짜같을 테니까요.

  발자크한텐 안타깝게도 운문을 쓰는 재능이 없었습니다. 반면에 뤼시앵은 아주 능력 있는 젊은 시인으로 설정되어 있었고요. 그래서 발자크는 결국 특단의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바로 시 커미션을 넣는 것이었죠.

  자기가 아는 시인 친구들에게 돈을 주고, 젊은 낭만주의 시인이 쓸 거 같은 시를 써달라고 부탁한 겁니다.

  덕분에 뤼시앵이 쓴 걸로 된 시는 당대 기준으로 그럭저럭 괜찮은 수준이라고 하는군요....


  아마 요즘 라이트노벨이나 웹소설 시장에서 보이는 그림 커미션의 시초와도 같은 사건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