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천병희 컬렉션 올려봄. 사실 아래 사진의 시학은 다른 칸에 놔뒀었지만 사진 찍으려고 추렸다.
첫 번째 사진의 뒤에 가려진 책들은 역사, 신들의 계보, 아이네이스, 아리스토파네스 희극, 소포클레스 비극.
두 번째 사진의 책장에는 다른 책들도 좀 섞여있다;; 구분하면 맨 왼쪽 다섯권, 시학, 정치학이 천병희 역서.
6년 전부터 지금까지 나는 원래 글 안쓰고 눈팅만(도갤) 했었다.
그런데 오늘 글 중에 어디 밖에 나가서 책 이야기 나눌 사람이 없다는 글보며 공감이 가기도 했고,
그 와중에 누가 천병희 컬렉션도 올리고 하니까 가슴이 찡해져서 나도 글 한 번 써본다.
내가 천병희 선생님의 역서들(즉, 그리스 고전들)을 접한 것은 6년 전이었다.
그 때 나는 대학교 신입생이었는데, 마음이 완전히 피폐했다.
고등학생 때 건강이 갑자기 안 좋아져서 입시도 망치고,
몸이 안좋으니 성격도 히스테리컬해져서 가족, 친구들과의 관계도 악화되었지.
삶이 온통 뒤죽박죽이어서 어디부터 풀어나가야할 지 알 수가 없더라.
주변에 물어볼 사람은 없고, 내가 잡은 것은 책이었다. 닥치는대로 읽기로 했다.
책은 무조건 고전이라고 어디서 주워들은 것은 있어서 무작정 가장 옛날 것부터 읽기로 했다.
근데 공자왈 맹자왈은 내 취향이 아니고, 서양 고전을 알아보던 도중 천병희라는 번역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됨.
물론 저 책들이 나에게 직접적인 답을 주지는 못했다. 나는 내 질문이 뭔 지도 몰랐으니까.
일리아드, 오뒷세이아, 아이네이스, 이 책들 지금 읽으라고 하면 못 읽겠지. 하지만 당시에는 (물론 번역이긴 하나) 내가 감히 시구들을 따라
고대그리스의 세계를 모험한다는 설렘이 있었던 것 같다. 셋 중에는 분노하고 고민하고 싸우는 아킬레우스가 가장 좋았다.
세상에서 나만 분노하는 건 아니구나. 나만 고민하는 건 아니구나.. 이런 생각했음.
그러면서 플라톤의 대화편들도 틈틈이 읽음.
솔직히 작품 속 소크라테스는 좀 비호감이었지만, 어떤 사안에 대해서 끊임없이 질문해나가는 자세가 그 때의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가르쳐주는 거 그냥 받아먹고 문제푸는 게 전부였으니까...
대화편들 읽고 나서 나한테 철학 덕후 기질이 생기게 됨.
그 때가 2011년이었으니 천병희 버전 대화편은 없었을 것임. 전역하고보니 대화편도 몇 편 번역했길래 사서 읽음.
내 전공이 문학이라서(후에 문창과로 편입) 그런지, 베스트를 뽑으라고 한다면 그리스 비극 시리즈를 선택하겠음.
잘 나가다가 몰락한 오이디푸스나 트로이 여인들과 당시의 나를 비교해보면서 인생에 대해서 생각해보기도 했고...
그렇지만 나한테 제일 와 닿은 극은 소포클레스 비극 중 하나인 '필록테테스(파리스 쏴죽인 놈)'였음.
필록테테스는 그렇게 유명한 영웅은 아닌데 나와 처한 상황이 비슷한 것 같아서 제일 좋아했다.
그가 외딴 섬에서 화살로 새를 사냥해먹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지,
자기를 버렸던 오디세우스가 찾아왔을 때는 얼마나 개빡쳤을지, 하나하나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도 나는 그리스 고전 인물 중에서 필록테테스를 제일 좋아함.
그렇게 1년 보내다가 입대하게 됨.
그리스 고전, 나와 상관없는 분야이고 저거 읽는다고 돈될 것도 없으나...
저 책들 읽으면서 위로도 많이 받고, 성찰도 하고, 삶이란 것에 대해서 나름대로 정리해보는 계기도 가지게 되었다.
(저거 안 읽고 입대했으면 그 때 내 성격에 과연 무난하게 생활하고 전역할 수 있었을지..)
그래서 저 책들 참 소중하다. 요즘에는 뭐 거의 저런 책 안 읽지만 아직도 안 버리고 모셔두고 있다.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보면, 천병희 선생님의 존재 자체가 사실 큰 위안이 된다.
어떻게 저런 노령에도 성실하게 자기 분야를 파고 아직까지도 그 힘든 번역을 해나가는지...
말씀하시는 거보면 순수하시면서도 내면이 강하다는 게 느껴짐.
천병희 선생님 하도 좋아하다보니 글이 길어지는 것 같다. 이만 쓰겠음. 모두 행복한 독서 생활하시길.
캬 진짜 많네; 옷 한벌은 사입으셨겠다... 개추
글을 참 잘쓰네.
좋은 글 많이써줘. 굿굿 - dc App
책도 좋고 글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