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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기회를 포착한 프리랜서 행복 전도사들은 미국 전역을 돌며 소규모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행복에 흠뻑 빠진 오늘날의 문화를 일컫는 '해피이즘happyism'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이런 광풍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 다음 질문들에 대해 확실한 답을 얻지 못한 상태다. (a)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 (b) 어떻게 행복을 극대화할 수 있는가? (c)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가르치는것이 가능한가? (d) 대부분의 경우 행복을 추구하려다 오히려 역효과만 생기는 것은 아닌가? 심지어 우리는 행복의 측정에 쓰이는 도구들이 제대로 작동하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다.


사실 인류는 구석기 이래로 행복에 대한 실질적인 정의를 찾기 위해 노력해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강조했다. "행복은 혼자 자립할 수 있는 사람의 것이다."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는 좀 더 시적인 관점을 택했다. "세상에는 행복도 불행도 없다. 어떤 상태와 다른 상태의 비교만이 있을 뿐이다." 니체의 관점은 당신을 놀라게 할 것이다. "인생에서 최고의 즐거움을 얻는 비결은 위험하게 사는 것이다." 한편 버트런드 러셀은 우리를 혼란에 빠뜨린다. "원하는 것을 다 가지지 않는 것은 행복의 필수 요건이다." 객관주의 작가 에인 랜드는 행복을 "모순 없는 기쁨의 상태, 벌을 받거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기쁨"이라고 단정했다. <피너츠>를 그린 찰스 슐츠야말로 가장 감상적인 정의를 제시했을 것이다. "행복은 따뜻한 강아지" 그래서 베트남전 시기에 비틀즈가 내놓은 능글맞은 답변은 한층 더 도발적으로 느껴진다. "행복은 따뜻한 총." <플레이보이>지의 설립자 휴 헤프너는 행복을 "개인적 성취"로 규정했다. 사실 이보다 더 중요한 게 있을까?


재미있는 사실은, 아무리 훌륭한 심리학자라도 성격을 확정적으로 진단할 수 있는 테스트를 고안하는 것은 고사하고 성격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것조차 힘들어 한다는 점이다. 이 근본적인 불확실성 때문에; 성격과 업무 성취도의 관계에 대한 연구는 아주 복잡해진다.


행복과 성과 사이에서 나타나는 약간의 상관관계는 인간 본성에 대한 순환 논리에 불과한 경우도 있다. 행복한 사람들은 호감을 주는 경향이 있고, 호감을 느낀 관리자들이 그들에게 더 후한 점수를 준다는 것이다. 그들의 결점과 실수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여지는 반면, 친화력이 덜한 직원들은 까칠한 성격 탓에 같은 결점이나 실수에 대해 더 가혹한 평가를 받게 된다. 결국 그런 식으로 관리자의 연역적 전제가 '입증'되는 셈이다.


기업 해피이즘의 이면에는 사악한 이론이 숨어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교묘한 형태의 압제로 본다. 직원들이 점점 빡빡해지는 직장의 규율과 요구에 당연한 불만을 표시하지 못하도록 원천봉쇄하는 편리한 수단인 셈이다. <미국의 굴욕: 우리가 꼭 알아야 할 미국의 5가지 불편한 진실>의 저자 크리스 헤지스는 기업 해피이즘을 이렇게 보았다. "기업의 지배, 학대, 탐욕에 대해 연막을 치려는 가짜 과학이며 (중략) 그것이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행복이 아니라 순응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해피이즘은 기업의 전략에 내포된 심각한 결함을 숨길 수 있다. 해지스는 이렇게 썼다. "직원들은 문제가 회사의 구조에 있는지 혹은 회사의 상태에 있는지 물어서는 안 된다. 만약 그들이 행복하지 않다면 그들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말을 듣게 된다." 위험에 대해 솔직히 논의하려는 직원은 삐딱한 사람이라고 인식된다. 위험을 기피하는 직원에게는 '비관론자'라는 딱지가 붙고 성과 평가에서 '팀워크가 형편없음'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 '기만적인 낙관주의'는 그 자체로 위험인자가 되었다고 로발로와 카너먼은 지적한다. "어떤 프로젝트가 가져올 이익을 과장하고 잠재적 함정을 외면하면 조직의 성과는 기대에 훨씬 못 미칠 수밖에 없다." 저자들은 긍정적 사고를 추구하는 관리자들일수록 비용 초과와 수익적자가 통계적으로 더 흔히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길버트는 <뉴욕타임스>의 논평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가 연구실에서 거듭 확인한 사실은 사람들은 무엇이 자신을 행복하게 할지 또는 불행하게 할지 예측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되고자 하는 사람의 마음과 생각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른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행복이라는 것이 얼핏 보기에는 좋아 보여도 자세히 뜯어보면 환상이 깨지고 만다는 것이다.


모든 당혹스런 역설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가질 수 있는 한 가닥 희망은 '행복 항상성'이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이다. 불행은 생각만큼 우리를 근본적이고 영구적으로 파괴하지 않는다. 길버트가 <뉴욕 매거진>에서 밝혔듯이 "우리의 상상력은 사물을 재구성하고 윤색하는 별난 재주를 갖고 있다." 그는 이 본능적이고 무의식적인 '사건 재구성 능력'을 발휘해 우리 자신에게 사건의 좋은 면을 부각시키고 나쁜 면을 감추는 '이야기'를 꾸미는 것이 행복한 삶의 중요한 조건일 거라고 본다.


실존주의 작가 알베르 카뮈는 50년 전에 이미 정답에 가까운 답을 찾은 듯하다. "당신은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 행복의 구성요소가 무엇인지 자꾸 파헤치려 하는 한, 당신은 절대 살아갈 수 없다. 삶의 의미를 자꾸 찾으려 하는 한." 그는 그저 사는 대로 살라고 충고한다. 만약 당신에게 찾아올 행복이 있다면 그것은 결국 당신을 찾아올 것이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어느 경우든 행복을 강박적으로 찾는 것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것을 더욱 단순히 표현한 비틀즈의 노래도 있다. "Let it be(내버려 두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