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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는 지금 어떤 시대일까.


디지털의 힘을 그 어느 때보다 새로이 체험할 수 있는 문명의 시대.


한편으론 인류사의 큰 역할을 했던 활자들의 모음에게 있어서 새로운 전환점이 되는 시대.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 그리고 리얼리즘, 냉전과 세기말을 뛰어넘어 새로운 세기와 세대가 등장했음에도


텍스트로 이뤄진 인류의 문화와 유산, 지성과 감성은 과연 어떤 위치에 있는 걸까.


나는 누군가 말했던 생으로 고수를 씹어먹는 그런 독서를 즐긴다.


독서에 대한 환상이나 고풍스러운 프레임을 누구보다도 거부한다.


내가 지금까지 읽어온 책들과 독서 행위, 텍스트를 인지하는 것에 대해 돌아봤다.


나는 과연 활자들을 향해 얼마나 투신했는가.


그렇게 고민하면서 '고토 모에' 그녀의 사진들과 공연 영상들을 감상하며 나의 독서 행위를 돌아봤다.


이대로 덕질만으로 끝내기엔 아쉬운 시간들을 통해 나 자신과 독서, 그리고 책과의 관계를 돌아봤다.


모에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 동안 내가 몰랐던 철학과 여러 문예 사조들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모에보다 예쁘거나 춤을 잘 추는 이들은 분명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모에만큼 강렬하게, 그리고 원초적으로 자신을 무대에서 쏟아낸 존재는 지금까지 못 봤던 것 같다.


어쩌면 모에의 춤사위는 철지난 모더니즘이니 리얼리즘이니 하는 논쟁 속에서 피어난 한 송이의 꽃잎일지도 모른다.


그 안에서 원초적이고 생으로 고수를 씹어먹으며 처절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투신하는 장면에


나는 내 독서 행위와, 독서를 통해 느끼고 얻어냈던 감정들을 돌아볼 수 있었다.


죽은 쥐의 날고기를 씹어 삼키며 그림을 그리던 이외수의 '들개'와,


송충이가 아름다운 나비로 재탄생하듯, 추악함에서 하나의 성스러움으로 진화하는 느낌의 결말을 보여준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와,


예술의 궁극성을 향해 그 어떤 타락과 죄악에도 거리낌없이 다가섰던 김동인의 '광염 소나타'에서 보여준 극한과 본질을


나는 무대에서 춤을 추는 모에를 바라보며 열거한 책들을 읽었을 때 느꼈던 감정과 충격을 다시 한 번 받을 수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그리고 이 시대는


활자들로 이뤄지고 활자들과 이어지는 오랜 인류의 시대와 유산을


색안경을 낀 채 바라본 것은 아닐까.


본질에 접근하기엔 아직도 어딘가 부족했던 게 아닐까.


과거에서 찾아야 할지, 현재에서 찾아야 할지, 아니면 미래에서 찾아야 할지 나는 잘 모르겠다.


다만, 프듀48에서 탈락하고 아이도루를 그만 두고 연극 배우와 모델로서의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 모에는


어쩌면 진실을 있는 그대로 파헤쳐 바라보기엔 아직 준비가 덜 된 이 시대가 탄생시킨 미숙아가 아니었을까.


나는 알리고 싶다.


책에, 그리고 독서에, 그 어떤 환상과 고풍스러운 잣대조차 모두 무의미했으며 있는 그대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그것은 단순히 인류가 객관적 시험 기준이라는 평가나 고정화 된 선입견으로 인지할 수 있는 이미지를 파고들어


내면의 진실성에, 피와 살과 뼈로 이뤄진 그 감각에 다가서야 한다고.


어두운 밖에 비가 내린다.


우리는 안전한 방 안에서 빗소리를 듣지만


비가 쏟아져 내리는 밖으로 나가기를 주저한다.


빗물에 맞는 그 감촉과 감각에 다가서기보단 멀리서만 소리를 들으며 빗물이 내 몸에 스며드는 것을 거부하려 든다.


많은 이들이 독서를 할 때 안전한 실내에서 빗소리를 감상하려들 뿐


빗소리가 들려오는 비내리는 어두운 하늘 아래로 나서려고는 하지 않는다.


독서에 대한 고정관념들이 결국 독서인들 스스로 방패 삼아 그것으로 자기 포장을 하면서


우리는 그 안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고토 모에' 그녀를 이 시대가 제대로 평가하고 그 매력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처럼


우리는 독서가 전해줄 수 있는 진정한 가치에 다가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나, 너, 우리 모두.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아직 현실을 직시하고 진실에 눈을 뜨겠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공간에서 머무르는 것 같다.


우리는 아직도 원초적인 그 진실의 무대를 향해 '고토 모에' 그녀처럼 투신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것 같다.


책에 담겨진 활자들의 진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는 지금까지 읽어 온 수많은 책들과 활자들보다


고토 모에, 그녀의 존재를 인지하면서 더 많은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다.


왜 원효 대사가 해골물을 마신 후 깨달음을 얻고 당나라 유학을 포기했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귀중한 주말의 시간 동안 독서를 하지 못해 아쉬웠던 나는


고토 모에를 통해 책에서는 배울 수 없었던, 시대가 다가서지 못한 진실로 한 걸음 내딛을 수 있었다.


그녀가 미소지으며 머릿결을 흩날리는 모습이


충선왕이 고려라는 한 국가의 총력을 기울여 세운 만권당에 새겨진 수많은 가르침들보다 더 가치가 있었다.


나는 독서하기로 결심했다가 날려버린 이 시간을 후회하지 않고, 자신을 돌아봄으로서 좀 더 성숙해진 인간이 될 수 있었다.


고토 모에. 그녀의 존재 덕분이다.


실수로 마신 해골물이 원효 대사에게 있어서 깨달음의 발아가 되었듯, 단순한 덕질과 유사 연애 감정이 나를 더 성숙한 독서인으로 탄생시켰다.





 추가: 미안하다. 덕질하다가 갑자기 센치해지고 삘받아서 이런 글을 쓰게 됐다. 그래도 나름 최대한 독서와 책에 관련되도록 쓰려고 열심히 노력했으니 너무 비난만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때론 정신없이 책만 읽는 것보다 스스로를 돌아보며 이렇게 독서 일기를 쓰듯 정리하는 시간도 갖는 게 중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