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18년 연초에 00사단 00연대 내륙 00소초 상황실 컴퓨터로 작성한 글을 인쇄했던 것을 타이핑한 것이다.

나는 우발적인 마주침에 대한 글을 쓰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발표도 여러 번 해보았다. 내 카톡의 상태 메시지는 아직도 '우발적인 마주침은 우연의 다른 말이 아닙니다'라고 되어있다.

요컨데 우발적인 마주침이라는 것이, 나한테는 꽤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 우발적인 마주침이란 무엇을 말하는 걸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내 고등학교 시절얘기를 해야한다.

고등학교가 정해지고 나서, 내가 담임 선생님보다 먼저 보게 된 것은 무선제본까지 해서 나눠준 안내책자였다. 안내책자라면서 수학문제와 영어단어만 가득한 그 책을, 교장선생님은 입학하는 날까지 다 풀고 외워야 한다고 했다. 말인즉슨 입학과 함께 반 배치고사를 보는데, 이 책자에 거기에 나올 문제들이 담겨있다는 얘기였다. 그러더니 국어과 시험은 독후감으로 대체한다고 했다. 찾아보니 책자에는 비어있는 독후감 양식과 대상도서들이 나와 있었다.

당연하게도? 나는 금세 앞의 두 가지를 관둬버렸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렸다. 책의 제목은 '열하일기'였다.

열하일기의 저자 박지원은 전에 읽은 '책만 보는 바보'의 주인공, 이덕무의 친우이자 조선 후기 서울 탑골공원 주변에 형성된 '백탑파'의 리더였던 사람이다. 열하일기는 그런 박지원이 청나라 황제의 생일을 축하하는 사신단을 따라 중국 여행을 갔다 온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단순한 기행문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재미있었던 탓에 열하일기는 금세 사람들에게 유명해졌고, 박지원은 정조에게 안 좋게 찍혀서 이러한 글들을 다시 쓰지 않겠다는 반성문까지 써야 했다.

독후감을 쓴다면서 하필이면 이런 책을 읽어버렸다. 독후감은 커녕 저자의 다른 책은 물론, 그 책의 번역자가 쓴 책까지 찾아다닌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 책의 번역자는 고미숙이라는, 스스로 고전문학평론가라고 말하는 사람이었는데, 이 사람의 책도 하나같이 자기가 좋아하는 소년의 열정과 소녀의 흥분?으로 가득차 있어 내 마음에 불을 지르기에 충분했다. 고등학교 1학년의 점심 자습시간,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이 사람이 쓴 '호모쿵푸스(공부工夫와 쿵푸功夫의 독음이 같다는 사실을 아는가?)'를 읽고 있으려니, 담임 선생님은 공부 연습은 이제 그만! 이제부터는 공부 실전이야~라면서 그 책을 뺏어가버렸다.

하지만 그런다고 공부할 내가 아니었다. 나는 더욱 삐뚤어져 고미숙이 속한 학문공동체 '수유+너머'의 이야기가 담긴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오오 책 읽는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먹고 읽고 얘기 나누면서 산다니, 좋지 아니한가. 그렇게 생각한 나는 수유+너머에 사는 자퇴생이 쓴 '다른 십대의 탄생'까지 읽고, 결국 결심했던 것이다.

자퇴를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