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kdemo.or.kr/dn?type=book&src=file_19860610011461.pdf&filename=%EA%B8%B0%ED%9A%8D2.pdf
2009년 여름, 연구실에서 작은 사건이 생겼다. 대학생 프로그램의 뒷풀이를 카페에서 하게 되었는데 그 뒷풀이 준비를 누가 담당했어야 하는가를 둘러싸고 약간의 갈등이 생긴 것이다. 그 갈등 자체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면 어디서나 늘 일어날 수 있는 작은 것이었고 따라서 시시비비를 가리든, 아니면 오해를 풀든, 그것도 아니면 서로를 좀 더 이해하면서 풀든, 어쨌든 그렇게 풀릴 수 있고, 또 그렇게 풀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연구실의 모든 사람들이 그 일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의견을 표현하고 감정을 드러냈다. 해묵은 여러 가지 일들과 감정이 그 일에 덧붙여졌다. 사람들의 말과 감정이 고삐가 풀린 듯이 제어가 되지 않고 터져 나왔다. 연구실의 모든 사람들은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또 상처를 받았다. 일주일 만에 연구실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치명상을 입었다. 더 이상 함께 간다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결국 연구실은 그 일주일 동안 벌어진 일들의 인과를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또 서로에 대한 감정의 호불호에 따라 몇 개로 분리되었다.
3년이 지난 지금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함께 공
부했던 친구들은 이제 각개약진하고 있다. 어떤 곳은 여
전히 <수유너머>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도 하고 (<수유너
머 N>, <수유너머 R>, <수유너머 문>) 또 어떤 곳은 아
예 <수유너머>라는 이름을 떼어버렸다.(<남산강학원
Q&?>, <감이당>, <인문팩토리 길>)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분열을 어떻게 보아야 할
까? 그것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것은 이 글의 과제가 아니다. 다만 지금 할 수 있는 이야기는 10여년 간 대안적인 학문공동체의 대표 선수격이었던 <연구공간 수유
+너머>가 2009년 당시 공동체 내에서 벌어진 사소한
시시비비와 감정의 균열을 해결하는 데 매우 무력했다
는 사실이다. 더구나 우리가 지속적으로 앎과 삶의 일치를 주장해왔던 집단이었다는 점에서, 삶의 작은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했던 우리의 무능력은 당시 나에겐
매우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우리는 또 다시 앎과 삶 사이에
얼마나 깊은 심연이 존재하는지를 절감할 수 있었다.
우리가 했던 수많은 공부와 새로운 실험들이 여전히
그 간극을 좁히는 지혜에 도달하기에는 역부족임을 깨달았다. 그 사건의 상처와 절망 속에서 다만 그 한 가지 사실을 뼈아프게 깨달았다.
會者定離 ! <수유너머>로 맺었던 인연이 끝나자 <수유너머>의 친구들은 각자 또 다른 인연들을 만들면서
새로운 공부와 실험을 하고 있다. 우리가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분리 과정에서 깨닫게 된 앎과 삶의 일치를 향한 끝없고 험난한 구도와 해방의 길을 향하여. 이
지면을 빌어 <수유너머>의 모든 옛 친구들에게 건투를
보낸다.
캬
와 멋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