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이런 식으로 내 순정을 짓밟으면은, 마 그때는 개가 되는 거야!"
노벨연구소 100대 세계문학작품 카더라라는 목록을 보면 대충 각 나라별 레전드 작품들이 들어가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스페인의 경우는 그 명성과 달리, 작가 2명, 2개의 작품 밖에 없음을 알 수 있다. 북유럽이 남유럽을 싫어하는 걸까?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보자. 혐성 북유럽인들이라도 스페인의 대표적인 문학 하면 적어도 그 2명의 작가, 2개의 작품을 빼놓을 수는 없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그 2 개의 목록 중 첫번째는 당연히 서양문학사의 레전드오브킹갓제네럴 시초를 자랑하는 세르반테스와 그의 <돈키호테>다.
--대 문학 작품 뽑는데 돈키호테를 빼놓는다? 바로 구라란 걸 증명하듯, 무식한 노벨놈들도 이걸 빼놓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른 하나가 조금 의외일지도 모른다.
100대 문학작품 중, 스페인의 수많은 작가들 중에서 세르반테스와 동등한 왕좌를 차지한 이는 누구일까?
바로 오늘 이야기할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가 그 주인공이고, 로르카의 대표작 중 하나인 <집시 발라드>가 <돈키호테>와 같은 영광을 차지하였다.
그래서 로르카가 뭐고 집시 발라드가 누군데 씹덕쉐리들아! 라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오늘 이야기할 로르카는 세르반테스 이후로 스페인 문학의 왕좌를 차지한 킹갓제네럴이자 모더니스트,
그리고 단순히 재능만으로 따지면 하트 크레인과 더불어 20세기 수많은 천재 시인들 중 탑급을 자랑하는 천재이자 신화다.
1898년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는 스페인 남부지방 안달루시아, 그것도 그라나다 인근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안달루시아라는 환경, 이슬람의 왕궁이 있던 그라나다, 그리고 그라나다에 거주하던 집시들, 이러한 환경들이 로르카의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끼친다.
로르카의 아버지는 설탕 사업으로도 꽤 돈을 만졌고, 로르카는 풍족하게 자라난다.
오늘날 로르카는 천재 작가로 널리 알려졌지만, 어릴 적에 그는 주로 음악을 배웠다. 드뷔시나 쇼팽, 베토벤 등을 음악 교사로부터 배우며 음악가의 꿈을 꿈꾸기도 한다.
제법 재능도 있었던 모양이다. 이러한 음악적 재능을 바탕으로, 훗날 스페인 작곡가 마누엘 데 파야와도 친분을 쌓기도 했으니까.
그리고 이러한 음악적 재능과 교육, 거기에 더하여 당시 안달루시아와 그라나다 인근의 민요들에 대한 관심은 훗날 그의 시의 '음악성'에 큰 영향을 준다.
원래 로르카는 대충 스페인 남부 대학에서 계속 공부해야할 운명이었지만, 청소년이 된 로르카는 북부 스페인으로도 여행도 떠나고, 또 부모도 설득하여 마드리드 대학을 다니러 마드리드로 오게 된다.
마드리드에서의 대학생활은 로르카의 삶에도, 그리고 이후 일어날 스페인의 예술사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당시 마드리드 대학의 학생들은 일명 ‘레시덴시아 데 에스투디안테스’라 불리는 학생 기숙사에서 거주하며 패거리를 형성하고 있었는데
이 즈음에 여기 소속된 인물들이 오늘날 스페인 문화사의 거장들이었다.
대표적으로 로르카가 있으며, 살바도르 달리, 그리고 영화가 루이스 부뉴엘이 있었다.
또한 이 셋은 이곳에서 친구가 되어 여러가지 활동을 같이 하게 된다.
또한 이 당시 이 레시덴시아엔 로르카보다 선배였던 시인 하몬 히메네즈가 패거리를 형성하고 있었는데,
로르카는 곧 이 집단에 합류하며 여러 작가들과 교류하게 된다.
그리고 곧 작품활동을 시작하게 되고, 첫 연극은 비록 실패로 끝났으나, 첫 시집에서 성공을 거두며 이후 쭉 탄탄대로를 걷게 된다.
특히나, <집시 발라드> 같은 오늘날까지 그를 전설로 만들어준 시집은 로르카를 당대에 이미 스페인의 국민시인으로 만들어주었고,
로르카가 발표하는 산문이나 희곡들 또한 그를 유명하게 만들어주었다.
그의 시들은 참으로 다양했다. 자신의 음악교육과 고향에 영향을 받은 집시들의 민요들과 같은 노래들도 있었으며 여러 복잡한 시어를 자유롭게 쓰는 모더니즘적 시들이나 사랑시까지, 그는 스페인어 문학의 중심으로 자리잡으며 멀리선 네루다나 바예호 같은 이들과 교류를 하기도 하였고, 스페인어로 시를 쓰는 이들의 우상이 되어갔다.
그러면서도 앞서 언급한 달리나 부뉴엘과의 관계는 점점 소원해지기도 한다.
달리, 로르카, 그리고 부뉴엘 삼총사의 관계는 참으로 기묘하였다. 셋이 친하면서도 은근히 로르카가 좀 겉도는 면이 있었다.
사실 로르카는 게이다. 오늘날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런 로르카의 당시 구애 상대는 살바도르 달리였다.
달리 자신은 로르카가 자신을 사랑했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관계를 가진 적은 없다고 말하지만,
사실 이 둘의 관계는 오늘날까지도 논쟁의 대상이다. 연인인 것은 맞다, 아니다로 주로.
거기에 더하여 로르카는 스페인 남부 출신이었다. 마드리드에서 놀던 이들이 보기엔 왠 집시들이 사는 촌동네에서 온 친구처럼 보였다.
이렇게 알게 모르게 겉돌던 로르카와 달리/부뉴엘의 관계는 1929년, 부뉴엘의 오늘날 레전드 영화 <안달루시아의 개>로 파탄이 난다.
달리도 참여한 오늘날 초현실주의 영화의 대표작으로 뽑히는 이 기괴한 작품이 어째서 <안달루시아의 개>란 제목이 붙었는지, 많은 해석이 있지만
대표적인 해석으론 로르카와 관련이 있다.
달리와 부뉴엘이 로르카를 '안달루시아에서 온 개'로 조롱하기 위하여 이런 제목을 붙였다는 해석이다.
그리고 로르카 또한 이 영화가 촬영된 당시, <안달루시아의 개>란 제목이 자신을 향한 모욕이라고 받아들였다.
<기수의 노래>
코르도바여, 멀고도 외롭구나.
검은 조랑말, 만월,
그리고 내 주머니 속 올리브.
내가 길을 알더라도,
나는 코르도바에 갈 수 없으리.
평원에서, 바람에서
검은 조랑말, 붉은 달,
그리고 죽음이 나를 바라본다,
코르도바의 탑들 사이에서.
아아! 멀고도 먼 길이구나!
아아! 내 용감한 조랑말이여,
아아, 죽음이 나를 바라보는 구나
내가 코르도바에 닿기 전에.
코르도바여, 멀고도 외롭구나.
"사랑했다 시팔놈아"
이런 사정과 더불어 이런 저런 일들이 겹치면서 잠시 쉴 겸 로르카는 1929년, 미국으로 여행을 가서 1년동안 북미를 방황한다.
이 과정에서 오늘날 역시 그의 레전드 시집 중 하나인 <뉴욕의 시인>이 나오기도 하지만,
이후 돌아온 로르카는 더더욱 왕성한 활동을 벌인다.
이전에도 희곡을 쓰긴 하였지만, 뉴욕에서 돌아온 로르카는 이제 본격적으로 당시 정체되어있던 스페인 희곡을 부흥시키기 시작한다.
한때 스페인 바로크 시기 로페 드 베가나 칼데론 데 바르카 등의 황금기가 지난 스페인 희곡은 이제는 유럽의 길을 뒤따르는 후발주자에 불과하였으나
로르카는 인형극들을 부활시키고, 또 극단을 만들어 자신의 희곡들을 공연함으로서 다시금 스페인을 문화강국으로 만드는데 일조를 한다.
이런 과정에서 나온 그의 <피의 결혼식>이나 <예르마> 등은 오늘날까지 로르카를 시인뿐만 아니라 스페인의 대표적인 극작가로 만들어준다.
이렇게 이미 스페인의 국민시인이자 국민 작가가 된 로르카는 고작해야 삼십대 중반에 불과했다.
왠만한 작가들이 평생에 걸쳐 이뤄야할 업적 달성을 다른 작가들이 이제 막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려는 나이에 이미 달성해버린 것이다.
이제 로르카는 대체 어떤 위치까지 날아오를 것인가?
"그걸 믿었음? 파시스트킥!"
그러나 불행하게도 로르카는 스페인 사람이었고, 이제 스페인은 프랑코에 의하여 스페인 내전을 맞이하려고 하고 있었다.
1936년 8월 18일, 숨어있던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는 스페인 파시스트 당원에 의하여 처형되고 만다. 그의 나이 38살 때였다.
당연히 갑작스러운 이 스페인의 젊은 천재의 죽음은 유럽의 수많은 작가들에게 충격을 주었고, 멀리 네루다 같은 이들에게까지도 슬픔을 안겨주었다.
공식적으로 알려진 것은 로르카가 평소 좌파적 발언을 하였기에 파시스트 단체에서 그를 살해했다고 알려져있으나,
사실 로르카의 죽음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논쟁을 낳고 있다.
로르카가 좌파라는 해석과 달리, 사실 로르카 본인은 생각 외로 정치적이지 않았고, 또 그는 당시 스페인 좌우파를 가리지 않고, 두루두루 친분이 있었다.
심지어 내전 당시 로르카에게 은신처를 제공해준 이론 스페인 파시즘 팔랑헤 당원도 있었으며 로르카의 죽음에 많은 스페인 반공주의자들은 슬픔을 표하였다.
이런 그의 죽음에 대해, 왜 그가 파시스트에게 살해당했는지 명확한 이유를 알기 위한 여러 추정들이 있다.
앞서 말했던 로르카 본인의 정치성 때문이라는 가설, 혹은 그가 동성애자였기에 죽였다는 가설, 혹은 당시 스페인 극우 또한 여러 파벌이 갈려있었으므로 그러한 파벌 싸움의 희생양이나 단순히 스페인 지식인들에게 두려움을 주기 위한 희생양이었다는 가설 등등
그러나 어느 이유든, 그것이 세르반테스 이후 스페인 문학의 최대 거인의 죽음을 정당화할 순 없을 것이다.
오늘날까지도 살해된 로르카의 시신이 묻힌 곳은 알려지지 않았으며 스페인 당국 또한 자국이 낳은 국민시인의 무덤을 만들기 위해 아직도 유해 발굴 작업을 하고 있다.
<월계수 가지 사이로
나는 두 마리 검은 비둘기를 보았네
하나는 태양
다른 하나는 달
꼬마 이웃들이여 나는 말했지
내 무덤은 어디인가 -
내 꼬리 속이지 태양이 답했고
내 목구멍 속이네 달이 답했네>
- <검은 비둘기들에 대하여>
삶은 꿈이 아니다. 조심하라! 조심하라! 조심하라!
우리는 촉촉한 흙을 먹기 위해 계단에서 굴러떨어지거나
우리는 죽은 달리아의 목소리와 함께 눈의 칼모서리를 향해 기어간다.
하지만 망각은 존재하지 않는다, 꿈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살이 존재한다. 키스가 우리의 입들을 묶을 뿐이다,
새로운 정맥의 덤블로.
누구든 자신의 고통을 느끼는 자는 그 고통을 영원토록 느낄 것이다.
누구든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는 자신의 어깨 위에 그걸 짊어질 것이다.
- <잠들지 않는 도시>
모더니스트의 기묘한 모험
- 20세기 최고 시인 예이츠의 환상록과 자서전 읽으쉴?
- <율리시스>는 어떻게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책이 되었는가?
- 위대한 피츠제럴드 (1), (2)
- 토끼공듀의 삶
모더니스트의 선조들
아니 이 아저씨 글을 아예 연재하고 있었네 ㅋㅋㅋㅋ
글을 읽어도 딱히 로르카한테 관심은 안 가는구만. 율리시스로 넘어가야겠눼
달리가 저리 빨리 달리다가 발리가겟다 엌ㅋㅋ
서양에는 나찌와 파시즘 동양에는 덴노헨자이라...우주의 균형이 이렇게 맞아가는구나
로르카.. 최고지. 가끔 로르카 시집 봄
개인적으로 스페인 문학하면 후안 발레라의 페피타 히메네스가 떠오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