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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라는 개념이 소설에서 이렇게 중요하게 다루어진 적이 있었던가? 오스트리아 작가 로베르트 무질은 소설의 영역에 사유를 끌어들였고 그렇게 탄생한 《특성 없는 남자》 는 톨스토이였다면 50페이지 정도로 썼을 이야기를 1000페이지가 넘는 거대한 구조물로 확장하였다. 그러나 이는 《특성 없는 남자》 가 소설사의 새로운 예술적 성취임을 보여줌과 동시에, 고전적인 기법에 익숙할 독자들을 불평하게 할 소설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만든다(《율리시스》 에도 불평하는데 무질에게는 얼마나 많은 불평이 쏟아질 것인가?).
많은 독자들이 소설하면 보편적으로 떠올리는 요소들은 서사, 인물, 묘사, 내면 등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 소설을 떠올리면서 사유가 등장할 것을 상상하는 독자들은 많지 않다. 오히려 중간에 사유가 끼어드는 순간 서사적인 재미가 없어진다면서 박한 평가를 내리기 일쑤이다. 이는 대부분의 독자들이 소설을 작가가 만들어내는 하나의 또 다른 세계로 인식함으로써 벌어지는 일이다. 독자 입장에서는 작가가 만들어낸 세계관을 관찰하고 싶을 뿐인데 사이사이 끼어드는 사유는 이를 방해한다. 그러나 아무도 소설에 사유를 끌어들여서는 안된다고 규정한 적 없다. 오히려 소설의 시초인 《돈 키호테》 와 같은 작품들 중간중간에 작가의 사견이 끼어든다는 것을 상기해보면 사유의 개입은 하나도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혹자는 그것은 과거 소설들의 낡은 기법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데 명심하자; 낡은 예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본인이 19세기에 익숙할 뿐인 것을 왜 다른 핑계를 대며 차이를 거부하는가?).
그러나 이런 사유라는 개념은 애매모호하기 그지 없다. 무엇이 사유이고 아닌가? 대체 소설 속의 사유란, 즉 소설적 사유란 무엇인가? 한 가지 명심할 점은 이러한 소설적 사유란 소설에서 철학을 읊조리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한 가지 예로 한국 판타지계에서 유명한 이영도의 소설들을 예로 들어보자(이영도의 소설을 많이 읽어보지는 않았기에 제대로 된 설명이 아닐 수도 있음을 양해 바란다.). 이영도는 작가 자신이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철학을 설파한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어처구니 없을 정도이다. 철학이 특정 상황에 맞춰서 튀어나오는 것도 아니고 등장인물이 그런 사고를 하는 배경이 제시되는 것도 아니다. 철학 자체도 독특한 무엇이 있는 것도 아니고 철학사 책을 펼치면 얻을 수 있는 정보들을 정리해서 뿌릴 뿐이다. 게다가 철학 자체가 소설의 본질적인 요소와 아예 관계가 없다. 단지 소설은 작가의 철학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가 될 뿐이다. 영도식 철학에 대한 학습 소설이라 볼 수 있겠다. 사실 많은 장르 문학이 이러한 요소를 공유한다. 소설은 어떤 세계관, 사건, 작가가 강요하는 철학에 대한 설명을 위해 도구로서 소비될 뿐 어떠한 소설사적 업적을 찾아볼 수 없다(톨킨 정도면 모를까).
반면, 《특성 없는 남자》 는 이와 완전히 다른 면을 보인다. 소설에 등장하는 것은 특정 철학이 아니라 하나의 사유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유는 어떤 논리적인 학문을 기반으로 독자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해 제시 되는 것이 아니라 인물의 삶과 행동,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인물이 맞닥뜨린 상황을 기반으로 전개된다. 사유는 엄밀하고 논리적이지 않다. 오히려 본능적이고 자유로우며 이리저리 움직이며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되고 상황에 대한 새로운 시각으로 변모한다. 근거가 우선시 되는 학문 영역과는 다른, 소설 속 상황을 기반으로 움직이는 소설가의 독특하고 상상력 넘치는 소설적 사유이다.
여기까지 왔다면 갤러들은 비슷한 하나의 반응을 보일 것이다. ‘내가 보기엔 아무 차이 없는데…?’ 당연히 그럴 것이다. 쭉 풀어낸 주절주절거리는 설명만 읽었는데 제대로 된 감이 잡힐 리가 없다. 결국 소설적 사유에 대해 알고 싶다면 그 소설을 직접 읽어보는 수 밖에 없다.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와 헤르만 브로흐의 《몽유병자들》 에 등장하는 각종 사유들을 읽어보며 차이를 몸소 느껴 보는 수 밖에 없다. 내가 언제나 입이 닳도록 언급하고 칭찬한다는 것에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은가? 매번 감상문을 쓰면서 깨달은 점은 아무리 내가 새롭게 알게 된 점을 이야기해봐야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공감을 못한다는 것이었다. 자 그러니 어서 서점으로 달려가 저 두 책을 사서 읽어보자. 적어도 후회할 일은 없고 후회해도 재독하면 생각이 바뀔 것이다. 그리고 자기는 아무리 해도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다면 그냥 자기가 평생 접할 일 없는 영역을 체험했다 생각하고 만족하자.
3줄 요약
1. 《특성 없는 남자》 사고
2. 《몽유병자들》 사고
3. 새로운 깨달음을 얻어라 이거야
이영도 깠으니 댓글 마니마니 달리겠지?
이제 이 떡밥으로 독갤의 순위는 한 차례 상승한다….!!
특성없는남자는 보긴봐야겠는데 흐으으으음...
의식의 흐름이 아니라 사유의 흐름이라...그런 말인가?
소설적 사유가 뭘 말하는 건지 이해했음. 그냥 인물의 착상을 하나하나 세세히 서술한다고 하는 것이 소설적 사유라고 뭉뚱그리는 것보다 더 이해가 쉽지 않을까?
근데 그렇게 얘기하면 걍 내면심리묘사랑 뭐가 다른지 모르더라. 이리 얘기하나 저리 얘기하나 비슷한 개념이랑 섞이는건 마찬가지인 듯 해 그냥 직접 읽는게 답이라 생각.
입문작 하나만 츄라이해보삼 완역된 걸로
그래도 몽유병자들이 특성 없는 남자 보다는 읽기 쉽지. 저 둘이 사유에 대한 특성이 제일 잘 드러남. 다른 소설들은 차용한건 많은데 다른 요소들과 섞이기도 해서. 일단 몽유병자들, 그 다음은 특성 없는 남자.
ㅇㅋ 몽유병자들로 감. 율리시스나 마의 산은 저 둘이랑 좀 다름?
율리시스는 소설적 사유 보단 주인공 의식을 그대로 옮기면서 드러나는 인물의 삶 속 배경 지식들을 나열 및 의식의 거대한 세계로의 확장, 마의 산은 당대 의식을 구성하는 여러 분야의 지식을 세세히 서술하고 뒤섰다 끝으로 갈수록 무에 이르는 식. 율리시스는 의식에 중점, 마의 산은 지식에 중점 정도로 생각하면 될 듯?
음... 읽어봐야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겠네 암튼 ㄱㅅ
소설적 사유가 뭔대-소설적 사유가 소설적 사유지 이런 느낌인가
뭐 사실 그렇긴하다. 소설적 사유: 소설적 상황에 기반을 둔 사유. 이게 젤 단순하게 말한거거든.
진짜 감상문보면 겁나 읽어보고싶은데 '철학 '이 두단어로 그냥 못 읽음..
님 성도 괜찮게 읽었잖음. 집중만 하면 가능하다 이거야. 성이랑 비슷하면 비슷했지 훨씬 어렵고 그런건 없음.
성은 마땅한 지식이 없었고 얕게 파본거지 저런건 읽기 무서워요
단순히 재미를 떠나서 이해를 못하면 어쩌지 싶어서
음 일단 몽유병자들은 그래도 3부 전 까지는 철학 얘기보다는 가벼운 사유 중심이니 이것부터 읽어보는 건 괜찮을지도??
제목부터 얼마나 끌려 ㅋㅋ
이런 글 보니까 책을 사서 실제로 읽어보고싶다 소설적 사유를 내 눈으로 직접 체험해 보고싶네
츄라이츄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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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도는 철학자처럼 말하는 인물은 있어도 계속 강요하고 반복하지는 않음. 그냥 사건에 대해 관조적인 평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음. 어떤 일이 발생하면 나름의 방식으로 철학적이게 설명하는 정도. - dc App
여기서 설명하는 소설적 사유가 에피파니와 무슨 차이인지 모르겠습니다. 설명 좀 더 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흠 에피파니에 대해 내가 잘 알고 있는게 아닌 거 같아서 명확한 설명은 못해주겠네..... 근데 아마 쿤데라 에세이에서 에피파니랑 엮어서 하는 얘기가 나왔던거 같기도 하고. 나중에 찾아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