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어느 가을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비밀스럽게 모여들었다.
그들을 불러모은 한 시인의 낭독회를 듣기 위하여.
모두들 숨을 죽인 채, 조심스럽게 시인이 낭독하는 새로운 시를 듣기 시작했다.
그 시는 스탈린을 '찬양'하는 시였다.
크렘린의 산악인, 혹은 오늘날 <스탈린 에피그램>으로 알려진 시를 시인을 조심스럽게 읊기 시작했다.
<스탈린 에피그램>, 조주관 역.
아래로 나라를 느끼지 못한 채, 우리는 살아간다,
열 발자국 뒤에서 들리지 않는 우리말,
그리고 말하는 사람이 반만 있어도 충분한 곳,
그곳 크렘린의 산악인이 생각난다.
그의 통통한 손가락은 벌레처럼 기름기로 번들거리고
말은 무거운 저울추처럼 믿음직하다.
바퀴벌레 같은 콧수염은 웃고 있고
그가 신은 장화의 목 부분이 빛난다.
목이 가는 대장들의 무리가 그를 둘러싸고,
그는 반만이 인간인 자들의 시중을 받으며 놀고 있다.
누구는 휘파람을 불고, 누구는 야옹대고, 누구는 흐느껴 우는데
그 혼자만 지껄이고 명령을 내린다.
편자를 박아 넣듯이 그는 연달아 명령을 내린다,
누구는 살 속에, 누구는 이마에, 누구는 눈썹에, 누구는 눈에.
그의 사형은 무엇인가 - 산딸기요,
오세트인의 넓은 가슴이다.
6개월 후, 비밀경찰들은 시인을 잡기 위하여 그의 집을 방문하였다.
20세기 러시아를 대표하는 시인 4인방의 최후에 대해선 이미 여러 차례 말해보았다.
숙청을 두려워하며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츠베타예뱌,
굴라그에 갇힌 아들을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아흐마토바,
운 좋게 숙청은 면했지만, <닥터 지바고>로 탄압을 피할 수 없었던 파스테르나크.
그리고 오늘은 이 4인방 중 가장 비극적인 운명에 처했던 마지막 4번째 모더니스트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오시프 만델스탐, 1891년, 바르샤바의 한 폴란드계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곧 그의 가족은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주한다.
어린 만델스탐은 소르본대학이나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하지만, 곧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으로 진학을 결심한다.
유대교도는 받지 않았기에, 만델스탐은 개종을 하여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에 입학을 하고 공부를 한다.
그는 어릴 적부터 시를 써왔다. 격동의 러시아에서, 그는 이 시대 시인들이 그러하듯, <들개 카바레>에서 활동도 하고, 무엇보다도 구밀료프 등과 어울리며 러시아의 모더니즘 운동 중 하나인 신고전주의, <아크메이즘> 운동에 가담한다.
이런 아크메이즘 운동엔, 역시 러시아의 대시인 중 하나였던 아흐마토바와의 친분을 쌓는 계기가 된다. 그 외 츠베타예바와도 어느 정도 친분을 쌓는 등, 만델스탐은 시인이자 작가로서 길을 다지기 시작한다.
그의 첫 시집 <돌>이나 오늘날까지 걸작 산문으로 평가받는 <시대의 소음> 등 작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기 시작한다. 혁명으로 격동의 한복판의 소비에트에서도.
그러나 곧 스탈린이 집권을 하였고, 많은 작가와 예술가들이 그러하듯, 그 또한 공포정치의 분위기 속에서 겉으론 침묵한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그는 어느 날 밤, 스탈린을 대놓고 풍자하고 조롱하는 시를 친구들을 은밀히 모여서 낭독한다.
물론 만델스탐으로선 대놓고 그런 걸 발표할 순 없었다. 애당초 발표할 수도 없었을 것이고.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면, 그곳에 참석한 이들 중 밀고자가 있었다.
물론 그 밀고자에게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었다. 그는 이미 당으로부터 고발당하여 목숨이 위태로운 상태였고, 혹여라도 불순한 시가 낭독된 현장을 침묵할 경우, 죽을 것은 확정되었다.
두려움을 이기지 못한 밀고자는 아이러니하게도 만델스탐을 밀고한 직후, 숙청을 피하지 못했지만, 만델스탐 본인에게도 비밀경찰들은 찾아간다.
그렇게 20세기 최고 시인 중 한명의 수난은 시작된다.
<나의 시대, 나의 짐승이여,
누가 너의 동공을 바라보고,
두 세기의 척추를
피로 붙일 수 있을까?>
- <시대> 中
만델스탐은 당의 적으로서 붙잡혔다.
자살시도까지 할 정도로, 시인에게 모든 것은 이제는 끝장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만델스탐에게 당장에 굴라그행이나 사형선고가 내려지진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스탈린은 직접 만델스탐의 형벌을 명한다.
'살려만둬라.'
스탈린은 자신을 비판한 적이 편하게 죽는 걸 원치 않았으므로, 만델스탐은 자신의 아내와 함께 유배를 떠나게 된다.
물론 그런 과정 속에서도 만델스탐은 계속 시를 쓴다.
츠베타예바가 표현하기를, 만델스탐에게 있어 시는 사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보로네즈에서 기나긴 유배생활을 하며 만델스탐은 계속 글을 썼고, 그렇게 그는 모든 것으로부터 잠시나마 잊혀질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5년 후, 1938년 대숙청이 일어났다.
수많은 러시아의 예술가들이 숙청된 것처럼, 만델스탐은 2번째로 구속된다.
이번만은 스탈린의 '살려만둬라'는 자비는 없었다. 만델스탐은 그대로 5년 형의 굴라그 행을 선고받고, 끌려간다.
혹독한 수용소 생활은 곧 이 늙은 시인의 몸을 갉아먹었고, 수용소로 이동되면서 만델스탐은 그렇게 죽고 만다.
<배꽃과 벚꽃이 나를 노렸나 보다>
배꽃과 벚꽃이 나를 노렸나 보다 -
산산이 부서져 버린 힘이지만 실수 없이 나를 때린다.
별들과 피어나는 꽃송이, 나뭇잎들과 별들 -
거기 이중 권력이란 대체 무언가? 진리는 어느 꽃가지에 있을까?
철봉으로 맞아 죽어 버린 하얗게 피어난 공기를
꽃으로 맹렬하게 때린다.
어울리지 못하는 두 향기의 달콤함 -
싸우고, 퍼지고- 혼탁해지고, 잘려 나간다.
오늘날까지 우리는 이 시인이 정확히 언제, 어디서 죽었는지 모른다. 1938년 12월 무렵에 죽었을 것이라고 추정할 뿐이다.
비극적이게도 그의 아내는 그의 죽음을 듣자,오히려 안도했다.
적어도 만델스탐은 더 이상 고난을 받지 않은 채, 수용소를 이동하던 중 죽었으니까. 소비에트식 축복받은 죽음이었다.
<그래서 제가 모스크바 대학 교수에게 물어봤습니다.
이런 말이 있더라 했더니 그 말이 사실이라더군요.
만젤쉬땀이 강제수용소에서 죽을 때 그 옆에 있던 자가 봤답니다.
만젤쉬땀은 죽기 오 분 전까지 입으로 시를 썼다는 거예요. 종이가 없었으니까요.>
만델스탐이 죽기 전까지 입으로 계속 시를 썼다는 것은 100프로 확신할 수 있는 사실은 아니지만,
그가 죽음을 맞이한 수용소 생활 속에서도 끝없이 입으로 시를 썼다는 것은 사실이다.
시인 만델스탐에게 있어 살아가는 것은 계속 시를 쓰는 것이었다.
<넌 아직 죽지 않았어, 넌 아직 혼자가 아니야
가난한 애인과 함께
평원의 위대함을 기뻐하고
안개와 굶주림과 눈보라를 즐기는 동안.>
- <넌 아직 죽지 않았어>
다만, 불가코프가 걱정했듯, 만델스탐 또한 비슷한 운명을 겪어야했다.
그가 수용소에서 입으로 쓴 시는 오늘날까지 전해지지 못한다. 또한 그가 잡혀갔을 당시, 그의 시가 적힌 수많은 원고들은 모두 비밀경찰들에게 압수되었고, 불태워졌다.
말 그대로, 만델스탐이 남긴 모든 시는 허공으로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원고는 불타지 않듯, 만델스탐의 시 또한 그렇게 사라지지 않았다.
만델스탐의 평생의 동반자였던 나데주다 만델스탐은 남편과 함께 유배를 떠났고, 만델스탐의 모든 원고를 외우고, 또 일부를 성공적으로 숨겼다.
그리고 만델스탐이 수용소로 끌려간 와중에도, 자신마저 수용소로 끌려갈 위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외운 만델스탐의 모든 시를 원고로 옮기고 비밀리에 간직했다.
오늘날 대부분의 만델스탐의 시는 이러한 나데쥬다가 외운 원고에서 비롯된다.
시인이었던 만델스탐처럼, 나데쥬다 또한 탁월한 작기이기도 하였다.
그녀가 남긴 두 권의 회고록, <버려진 희망>과 <희망에 반하는 희망>.
'나데쥬다'라는 이름이 아이러니하게도 러시아어로 '희망'을 의미했지만, 희망 없는 삶을 살 수밖에 없던 만델스탐과 나데쥬다, 그리고 당시의 러시아를 그리는 이 회고록은 오늘날까지 20세기 러시아를 알리는 산문으로도 널리 읽힌다.
<아무 것도 말할 필요가 없고,
아무 것도 배울 필요가 없으니,
아수처럼 어두운 영혼
참으로 슬프나 아름답다.
아무것도 배우고 싶지 않기에
아예 말할 줄도 모른다.
어린 돌고래처럼
깊은 잿빛 바다의 세상을 헤엄쳐 나간다.>
- 만델스탐의 시선집으로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가 대표적이다. 여기 인용한 시들도 모두 여기에서 따왔다.
모더니스트의 기묘한 모험
- 20세기 최고 시인 예이츠의 환상록과 자서전 읽으쉴?
- <율리시스>는 어떻게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책이 되었는가?
- 위대한 피츠제럴드 (1), (2)
- 토끼공듀의 삶
모더니스트의 선조들
왜 시보다 시인 인생이 더 재밌어
도끼와 안나 여사가 생각나는군....
며칠에 하나씩 이런거 쓰는데 소재 고갈안됨? 머리가 짱짱위키인가
그나마 저 양반은 정리해서 남겨줄 사람이라도 있었지, 그럴 사람도 없었던 바벨 같은 양반들은....
러시아 모더니즘에러 항상 스탈린 동무는 빠지지 않는구나
소련 수용소에서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도 밝게 빛날 창작물이나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내놓던 사람들 이야기가 전해지더라구요. 정말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