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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간 삶의 표현일 것이다(동의하죠?). 이는 문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그 궁극적 목표에 도달한 작품들은 몇 되지 않는다. 대다수의 작가들은 스스로가 옳다고 생각한 내용을 가득 채운 지극히 개인적이기 그지 없는 소설을 쓸 뿐이다. 이는 작가 개인의 일기나 다름이 없다. 일반적인 일기와의 차이점이라면 예쁜 문장들과 여러 인물들의 등장으로 마치 무언가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흉내 낼 뿐인 자들과는 다르게 문학의 목표에 당당히 도달한 작가들 또한 존재하며 나에게 있어 카프카는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 삶의 표현을 독창적인 방식으로 성공한, 진정한 소설을 탄생기킨 소설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프란츠 카프카의 《성》 은 독갤에서도 여러 번 얘기가 나왔던 소설이다. 공통적인 평이라면 지루하고 재미없고 딱딱하고 과대평가된 역시 카프카는 단편만 읽어도 되는 작가,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앞선 평가들은 카프카에 대해 정당하지 않은 평가이다. 이들은 소설에서 전혀 중요한 요소도 아닐 뿐더러 그저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다고 대다수가 가하는 부당한 비난일 뿐이다(만일 카프카의 장편들 다 읽어보지도 않고 이런 소리를 하는 거라면 심히 곤란하다.).
사람들이 카프카의 《성》 에 큰 끌림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그 특유의 서술 방식 때문일 것이다. 사실 《성》 은 문장이나 전개 자체도 딱딱하고 지루함 쪽에 가까운 소설이다. 대화는 한 패턴으로만 진행되며 10페이지 가까이 문단 구분없이 이어지기도 한다. K를 둘러싼 사건들도 별 다른 변화없이 비슷하게 반복된다. 매 순간 새로운 일들이 터지며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대다수의 소설들과는 확실히 다르다(여기서 의문이 생기는데 그러면서 위고는 왜 그렇게 잘 읽는가? 오히려 분량 면에서나 전체적인 설명 면에서나 카프카가 더 콤팩트한테도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특징들 이야말로 카프카의 소설들에 최적인 형식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문장과 문단들의 효과는 이미 플로베르에게서 잘 드러났다(여기서 플로베르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은 당장 《마담 보바리》부터 읽고 오자. 이 소설 없이는 소설에 대한 얘기를 할 수가 없다.). 카프카는 이를 계승함과 동시에 좀 더 나아간 면모를 드러낸다. 대화는 지루하게 이어지고 행동들은 사소하게 반복된다. 즉 작가는 인물들의 행동과 대사를 전혀 강조할 생각이 없다. 《성》 에서는 아무 것도 강조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사소하다.
《성》 의 가장 기본적인 내용은 토지 측량사인 K가 성과 벌이는 투쟁이다. 그리고 소설을 읽어본 사람이 있다면 알겠지만 이 투쟁은 대부분 소설에서의 갈등과 전혀 다르다. 소설 속에서 K의 투쟁은 사소하고 중요치 않은 내용으로 나타난다. 이는 단순히 투쟁의 스케일이 줄어들었다는 것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이전까지의 소설들은 아무리 사소한 갈등이어도 어떤 결론을, 적어도 작가가 강조하고자 하는 점이라도 드러났다. 《성》 에서 K의 투쟁은 그저 무의미에 그칠 뿐이다. 마치 꿈에서 주먹질하 듯이 목적도 목표도 없고 그 성과도 보상도 없는 무의미함이다. K가 성과의 투쟁에서 이겨 무엇을 얻는가? 아무리 많아도 토지 측량사의 자리 하나 뿐이다. 이는 그저 영광도 명예도 없는 우스꽝스럽고 희극적인 전투이다.
이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예시가 소설의 중간에 삽입되는데 바르나바스의 가족이 겪었던 성과의 마찰을 다룬 이야기이다(이 장면에서 《돈 키호테》 가 생각나기도 한다. 《돈 키호테》 를 읽어본 사람은 계속해서 끼어드는 중심 외적인 이야기들을 알 것이다. 혹시 안 읽었다면 당장 《돈 키호테》 도 읽어라.). 바르나바스 가족과 성의 마찰은 그 원인도 불명하며 전개도, 결말도 지리멸렬한 기괴함이 든 투쟁이다. 바르나바스의 아버지는 처벌을 용서해달라고 말하나 아무도 처벌을 내린 적이 없다고 성은 주장한다.
그러나 바르나바스 가족은 분명히 성으로부터 불이익을 받았고 이는 주변 인물들의 반응으로 들어난다. 결국 바르나바스 가족은 K가 마을에 올때까지도 이 무의미한 투쟁을 계속해서 벌이고 있었다. 빠르나 늦으나 비슷한 것이 K의 운명일 것이다.
투쟁 뿐만이 사소해진 것은 아니다. K와 프리다의 성교에서 어떤 숭고함이나 따스함도 관측되지 않는다. 끊임없이 따라다니는 조수들은 K의 사생활을 지켜주려는 생각도 없다. 중요한 일들은 문서 한두개로 정리되어 대충 처리되고 관리로부터의 편지는 핵심없이 안부 인사 정도로 끝나버린다. 이의 정점은 인물들의 행동들이다. 《성》 을 포함한 카프카 소설에서 행동들은 우스꽝스러움의 극을 보여준다. 남자들은 매번 팔짱을 끼고 다니고 작업장에서 서로 손을 주물대기나 한다. 사람들의 일처리는 비상식적이기 그지 없어서 채찍으로 하인들을 마구간으로 몰아넣거나 서류를 바닥에 엎어버리고 뒤적거리면서 찾기나 한다. 마치 마을 전체가 유아 퇴행을 경험하고 있는 것 같다.
유아 퇴행이라니 떠오르는 한 가지 경험이 있다. 어릴 적 나는 회사원이라는 직업이 무슨 일을 하는지를 당최 종잡을 수가 없었다. 텔레비전에서 묘사되는 그들은 언제나 서류를 작성하고 상사에게 혼나고 다시 서류를 작성하고 커피를 마시며 동료들과 수다 떨다가 서류를 작성하고 야근하면서 서류를 작성하고 술 마시고 집에 들어가서 다음날 서류를 작성할 일에 대해 걱정하는 존재였다. 그렇기에 나는 회사원이 어떤 서류를 작성하는 존재인건가라는 식으로 막연히 생각했다. 《성》 또한 마찬가지이다. 소설을 읽고는 도대체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카프카는 유아의 눈으로 사회를 바라보았던 것인가?
성에서는 모든 장면, 모든 문장 하나하나가 관료화 된 사회를 소설적으로 그려낸다. 가령, K의 일상 자체를 살펴보자. 아무도 그에게 성과의 투쟁을 요구하지도, 강요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K는 홀린 듯 소설 내내 성과의 투쟁 만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가. 그가 정의로워서 그런 것 인가? 성의 부조리를 참지 못해서? 평상시 태도를 보면 그다지 정의롭진 않다. 오히려 개인적이고 이기적이다. 프리다와의 결합도(이는 프리다와의 성교 후 K의 반응에서 잘 드러난다), 한스와의 만남도, 바르나바스 가족과의 관계도 그저 투쟁을 지속할 도구일 뿐이다.
K는 계속해서 성에 얽매여 산다. 마을에 들어선 순간부터 K에게 진정한 자유 란 없는 것이다. 물론 성은 그에게 최소한의 자유를 제공하나 K는 꾸준히 속박된 자유를 느낄 뿐이다. 오늘날 우리가 자유 시민임에도 스스로 주위의 어떠한 현상도 바꿀 수 없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는 K나 마찬가지이다.
카프카의 소설은 실존의 교과서다. 세상의 빛을 본지 10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우리는 그의 소설이 드러낸 현대 사회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렇기에 그의 소설을 읽고 나면 도저히 요약해서 감상문을 쓸 수가 없다. 단지 "이 소설은 삶의 모든 것입니다" 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는 작품들에 무슨 다른 얘기를 덧붙일 수 있겠는가? 나는 사람들에게 단지 읽으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 때로는 직접 체험해야만 깨닫는 것이 있기에.....
카프카 장편은 심판밖에 안 읽었는데 성도 한 번 읽어볼까요....ㅔ
츄라이츄라이
첫 문장부터 동의할 수 없는데여.. ㅋㅋㅋ 읽다가 더 읽으면 스포 당할까봐 중간에 끊음 ㅋㅋ 근데 솔직히 위고보다 카프카 많이 읽지 않음?
첫문장이 아니면 난 예술이 왜 있어야 하는지 몰루겓음. 위고는 거의 세계문학 대표 작가 아님?
궁극적 목표를 정하는 것부터가 예술의 가능성을 억압하는 것이라고 생각함. 그리고 꼭 예술이 있어야 할 필요가 없고, 그 필요성을 갖추게 하려는 것도 억압인 것 같고. 그냥 상대적 목표만 있는 듯함. 그리고 위고가 위상이나 인지도 면에서는 더 높을 수 있어도 아는 거랑 읽어본 거랑은 다르잖음 ㅋㅋ 레미제라블 읽어본 사람 변신 읽어본 사람 통계 내면 후자가 훨씬 많을 걸 ㅋㅋ
저 목표를 모든 예술에 강요할 수는 없지만 저런 목표가 없다면 예술 성립이 안되지. 예술의 차이는 목표의 차이에서 오는거지 목표의 유무에서 오는게 아뉳ㅁ. 위고 거의 다 읽고 했는 줄 알았는데 걍 뮤지컬충들이 나대는거였나
그럼 궁극적이라는 말을 쓰면 안 되죠; 그리고 모순적이긴 하지만 목표 없는 예술을 만드려는 목표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함. 레미제라블 읽으려고 시도해본 사람은 꽤 있겠지만 완독한 사람은 훨씬 적을 듯...
그래서 일 것이다 라고 했잖어. 약간 추정의 뉘앙스로.... 글쿠먼 위고 그다지 안 보는갑네.
아니 동의하냐길래... 대답한 거에여. 이렇게 된 거 이번엔 레미제라블이나 완독해서 감상문 쓰자.
살짝 농담 느낌으로 했던건데 ㅋㅋ 위고는 쵸큼... 너무 엘랑스 대중 소설같아서...
주딱도 거르는 위고; 사실 진짜 힙한 건 레미제라블 아니었을까
예술의 궁극적 목표는 예술 그 자체가 아닐까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