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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단편들을 몇 편 더 읽었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인 '굿 올드 네온'에 대해 간단하게라도 감상을 남기고자 한다.

  요약하자면 '굿 올드 네온'은 우리가 속물(snob)이라고 부르는 삶의 태도에 관한 소설이다. 소설은 진정한 관계를 상실하고 모든 관계를 스펙터클로 대체한 남자의 자기고백을 들려준다. 그 자기고백은 자살로 죽음에 이르는 아주 짧은 순간에 전개되는 의식의 흐름인데, 그것을 뒤엎는 나름의 반전이 준비되어 있지만 여기서 언급하지는 않겠다. 어쨌거나 그는 모든 사회적 상호작용을 펜싱 경기나 결투를 하듯이 치러내는 인물로, 오직 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그리고 타인을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기 위해서만 특정한 행동을 한다. 그는 누구보다도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지만 정작 타인에 대해 아무런 질적인 관심도 추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역설적인 존재다. 그는 자신의 유아론적 세계 속에 갇힌 채 타인을 순전한 대상으로만 대하고, 자신이 진실하지 못한 인간이라는 고백조차 또 다른 기만의 방법으로 사용한다.

  우리가 속물을 규정하는 방법은 다양하고, 어떤 것이 속물이라고 분명하게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나는 반칸트적 태도, 즉 타인을 목적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수단으로만 대하는 태도 안에 속물성의 핵심이 있다고 믿는다. 우리가 속물을 반칸트적 태도로 규정할 때 기만적인 인간이란 곧 속물임이 분명해진다. 그것은 '타인을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겠다고 징징거리는 요커'만큼이나 상투적이고 일반화된 인간형이다.

  소설은 한 남자의 자기고백적 서사이면서 동시에 교양계급 속물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우리가 속물을 증오하는 까닭은 무엇보다도 그것이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지적대로, 이처럼 잔인하고 천박한 세상에서 칸트적 태도를 유지하며 산다는 것은 현자가 되는 길이 아니라 오히려 속고 있는 바보가 되는 길이다. 우리는 타인의 선의를 기대할 수도 없고 타인을 목적으로 대하는 이성적인 타인을 기대할 수도 없다. 세상 물정을 아는(worldly) 사람들은 누구라도 타인을 수단으로 대하려 하고, 우리는 그런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속물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속물이 되지 않는 방법은 세상 물정을 모르는 바보가 되는 길뿐인데, 이것은 바보가 세상 물정을 알게 되는 것보다도 더 어렵다. 바보처럼 사는 것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강인한 사람이 되기란 사실은 초인적인 인내력을 요구하는 과업이다. 속물의 진짜 문제는 타인과 진실한 관계를 맺는 '방법'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그러고자 하는 동기를 상실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 모두가 어느 정도씩은 속물이라는 인식이 일반화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김수영 시인의 예언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간판이 너무 많은 종로나 충무로 거리에서 간판이 하나도 보이지 않게 되기까지 더 간판이 늘어난' 세상을 살고 있다. 속물이 만연해 있으며 모두가 속물에 대해서 말하기 때문에 속물이 아무 것도 아니게 된 시대가 됐다.

  속물과 진정성(authenticity)이라고 하는 주제마저도 이제는 진부해졌다. 이 진부함과 상투성을 극복할만한 사유의 깊이와 재치, 그러니까 '화력'은 아무리 강하더라도 여전히 부족한 것 같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가 구사하는 언어의 화력은 꽤 강하지만 충분하지는 않다.

  우리는 이 소설을 읽고 난 다음에도 자기애가 강하고 타인을 수단으로만 대하는 속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자기 자신에게 아주 엄격하고 그래서 타인에게도 엄격해도 되는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애쓸 것이다. 그리고 이런 고백마저도 고급 속물의 자기정당화라고 하는 기만의 역설을 우리는 벗어날 수 없다. 우리가 우리의 속물성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충분한 화력은 오직 죽음뿐인 것으로 보인다.




덧붙임) DFW의 단편들을 죽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그가 상당히 비판이론적인 사유를 전개하는 작가라는 것이다. 한국의 인문학자들에게 비판적 사회학이 얼마나 인기 있는 전통인지를 고려해본다면 그의 소설이 이제 와서야 대중들에게 소개되기 시작했다는 것은 조금 놀랍다. 이는 아마도 극히 높은 밀도로 의식의 흐름을 전개하는 그의 글쓰기 스타일 탓이겠지만, 확실히 그 주제의식은 한국 독자들에게 생소하지 않으리라고 생각된다.


덧붙임 2) 마음에 드는 소설이라 보다 정성들인 감상을 쓰고 싶었는데 어쩐지 힘이 빠져서 포기했다.... 다른 써야할 글이 너무 많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