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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이미지

  김숨의 단편집 '국수'를 읽었다.

  첫인상은 분명했다. 아름다우면서도 동시에 절망적이고 숨이 막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일상의 절망 속에 얽혀 있는 아이러니와 긴장이 나를 사로잡았다. 단 몇 편의 소설을 읽었을 뿐인데 순식간에 그가 그려내는 세계 속으로 빠져들었다.

  김숨의 단편들은 덧없는 것들, 소외된 것들, 시간 속에 사라져가는 것들을 다룬다. 그는 지극히 사실적인 방식으로, 우리 주변에서 금방이라도 찾아낼 수 있을 만큼 구체적인 인물상을 그려낸다. 그러면서 동시에 어딘가 모호하고 환상적인 여지를 남겨 둔다. 그는 한 순간을 존재했다 사라져가는 것들을 묘사하면서도 그것들이 일반성 속에서 숨을 쉴 수 있도록 한다. 그러한 방식으로 소설 속에서는 개별과 일반이 매개된다.

  사라져가는 것들을 다루는 소설은 수도 없이 많다. 시간의 냉혹하고 압도적인 힘 앞에서 불안에 떠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내는 작품들도 드물지 않다. 그럼에도 내가 김숨의 소설이 특별하다는 인상을 받은 까닭은 개별과 일반 사이에서 지속되는 긴장, 시간과 영원 사이에서 지속되는 긴장의 힘이 강렬하기 때문이었다.

  단편 '국수'는 익명의 누군가가 국수를 만드는 장면을 보여준다. 꼼꼼하고 치밀한 묘사는 언뜻 실감이 느껴지면서도 너무나 생생해서 현실감이 들지 않는다. 암에 걸려 죽어가는 새어머니의 이야기, 국수 한 그릇을 필사적으로 먹어내는 어느 노년의 모습, 국수는 팔지 않고 다만 면을 뽑아서 파는 떠돌이 제면사의 모습 등이 그 묘한 환상성 속에 얽힌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내는 국수는 소금간조차 되지 않은 순수한 밀가루로 된 국수다.

  그 국수는 질료적인 국수가 아니다. 그것은 문명이 국수를 만들어 온 이천 년의 시간이 녹아든 형상으로서의 국수다. 끝없는 고통에 내몰린 채 부패하고 소진되어가는 일상 속에서, 국수를 만드는 작업은 마치 오르페우스의 노래처럼 소멸과 영원 사이의 경계를 가로지른다. 그것은 단순한 노동이지만 순전한 노동으로, 그러니까 일(Beschäftigung)의 일환으로 남아 있지 않는다. 국수를 만드는 작업은 노동이면서 동시에 예술적으로 승화되는 영원의 소망이 된다.

  그 영원의 소망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덧없이 사라져가는 것들의 반복이다. '국수'에서는 사라져가는 것들의 덧없음 만큼이나 덧없는 것들의 반복이 중요한 모티프가 된다. 이천 년을 누군가 반복해서 만들어온 국수, 그리고 새어머니인 당신이 만들었던 국수와 '내'가 만드는 국수, 그 국수를 마디마디 끊어내는 사건이 심경의 차이와 함께 반복되는 것 등등. 그 반복은 순간만큼이나 덧없지만 어쩐지 우리의 순간이 순간으로 끝나는 것만은 아니라는 확신을 준다. 어쩌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순간이 순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이 부패해가는 삶을 살아낼 힘을 얻는 것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