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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의 단편집을 읽고 나서, 나는 그의 단편들이 카프카의 소설과 견줄 만하다는 감상을 남겼다. 논란의 여지가 큰 감상이기 때문에 이렇게 몇 자의 부연설명을 더한다.
카프카는 두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작가다. 예술사적으로 보더라도 미학사적으로 보더라도 그가 유럽 예술장에 준 충격은 강렬하며, 현대예술이 카프카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표현하더라도 결코 과장이 아니다. 그는 예술적인 것의 개념 그 자체를 전복시킨 탁월한 작가들 중 하나다.
카프카는 그의 일기에서 음악과 회화가 행복한 사람들을 위한 예술이라고 쓰고 있다. 그에 따르면 음악이나 회화는 공연장이나 전시회를 방문하는 여유롭고 넉넉한 가족들을 위한 예술일 뿐이다. 반대로 문학은 행복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예술이며 행복에서 소외된 사람들만이 향유할 수 있는 예술인 것이다. 이 규정, 즉 문학은 행복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예술이라는 규정이 그의 글쓰기를 특징짓는다. 불안, 두려움, 비현실적인 공포, 시지프스의 형벌처럼 반복되는 일상 속의 소진이 강박적으로 표현된다. 문장은 매끄럽게 읽히지 않고 아름답지만 진부한 장식들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우리는 카프카의 소설을 읽으며 즐거워 하기보다는 역겨움을 느낀다. 카프카는 문학을 아름다운 것으로부터 불쾌하고 추한 것으로 변화시켰다.
이것은 불쾌와 추를 미의 영역으로 끌어 올렸다는 점에서만 중요한 변화가 아니다. 모더니즘의 부상과 함께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미학, 즉 반 칸트적 미학의 태동을 알린다는 점에서 역시 그것은 중요하다. 종래의 칸트 미학에서 미는 '목적 없는 목적성으로의 형상'으로 규정되며, 따라서 어떤 종류의 관심도 배제한 관심이라는 역설적인 태도를 요구한다. 카프카는 그런 태도를 거부하고 우리로 하여금 예술에 대해 역겨움과 두려움이란 형태의 관심을 갖도록 한다.
단순히 문학의 영역에서만 일어난 변화가 아니다. 현대예술이 카프카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평가가 가능한 것도 그때문이다. 쇤베르크의 총렬주의 음악이나 후기인상주의의 퇴조와 같은 다른 예술 분야에서의 흐름은 음악과 회화 또한 불쾌의 체험으로 변형시켰다. 더 이상 아름다운 것만이 미의 대상으로 남아 있을 수 없었고, 예술은 추의 문제와 마주해야만 했다. 추와 불안은 카프카에 의해 예술 속으로 확실하게 포섭되었다.
한편으로 나는 카프카의 소설들을 순전한 환상소설로 읽는 관점에 반대한다. 그것이 환상소설이라는 견해가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환상소설이라는 이유만으로 그의 소설을 에드거 앨런 포나 러브크래프트의 소설과 유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카프카의 소설은 환상적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환상은 현실과의 긴장 속에서만 유지될 수 있다. 카프카의 소설 속에서 표현되는 것은 비현실적인 환상이 아니라 일상과 현실에 단단하게 뿌리내린 환상이다. 소설 속의 불안과 공포는 비현실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현실로부터 온다.
김숨이 카프카와 유사하다는 인상을 받은 이유 또한 이런 맥락 위에 있다. 김숨의 소설들은 아름다운 것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추하고 불쾌한 것들을 대상으로 한다. 그러면서도 그의 소설에서 드러나는 현실성과 환상성 사이의 긴장은 카프카의 그것과 닮았다. 그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고유성을 잃어버리지 않는 까닭은 우리의 근대적 일상성을 숨이 막힐 정도로 치밀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는 그가 단지 카프카를 따라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문제 삼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앞서 말한 것처럼 그의 소설이 고유성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더 긴급하게 물어야 할 것은 다음과 같은 질문이다: 오늘날 고통으로서의 예술에는 카프카의 시대와 같은 의미가 남아 있는가?
쇤베르크의 총렬적인 음악조차 이제는 진부해지고 클리셰화되었다. 불쾌와 추로 여겨졌던 양식이 점차 일반적인 것이 됨에 따라 우리로 하여금 다시 생각할 기회를 갖게 했던 불쾌는 더는 불쾌가 아니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카프카 시대의 예술을 반복하는 것은 무의미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예술이 총체적인 무의미의 장이 되어버린 지금, 내게는 카프카적인 시도 또한 다시금 절박한 시도가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카프카는 두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작가다. 예술사적으로 보더라도 미학사적으로 보더라도 그가 유럽 예술장에 준 충격은 강렬하며, 현대예술이 카프카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표현하더라도 결코 과장이 아니다. 그는 예술적인 것의 개념 그 자체를 전복시킨 탁월한 작가들 중 하나다.
카프카는 그의 일기에서 음악과 회화가 행복한 사람들을 위한 예술이라고 쓰고 있다. 그에 따르면 음악이나 회화는 공연장이나 전시회를 방문하는 여유롭고 넉넉한 가족들을 위한 예술일 뿐이다. 반대로 문학은 행복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예술이며 행복에서 소외된 사람들만이 향유할 수 있는 예술인 것이다. 이 규정, 즉 문학은 행복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예술이라는 규정이 그의 글쓰기를 특징짓는다. 불안, 두려움, 비현실적인 공포, 시지프스의 형벌처럼 반복되는 일상 속의 소진이 강박적으로 표현된다. 문장은 매끄럽게 읽히지 않고 아름답지만 진부한 장식들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우리는 카프카의 소설을 읽으며 즐거워 하기보다는 역겨움을 느낀다. 카프카는 문학을 아름다운 것으로부터 불쾌하고 추한 것으로 변화시켰다.
이것은 불쾌와 추를 미의 영역으로 끌어 올렸다는 점에서만 중요한 변화가 아니다. 모더니즘의 부상과 함께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미학, 즉 반 칸트적 미학의 태동을 알린다는 점에서 역시 그것은 중요하다. 종래의 칸트 미학에서 미는 '목적 없는 목적성으로의 형상'으로 규정되며, 따라서 어떤 종류의 관심도 배제한 관심이라는 역설적인 태도를 요구한다. 카프카는 그런 태도를 거부하고 우리로 하여금 예술에 대해 역겨움과 두려움이란 형태의 관심을 갖도록 한다.
단순히 문학의 영역에서만 일어난 변화가 아니다. 현대예술이 카프카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평가가 가능한 것도 그때문이다. 쇤베르크의 총렬주의 음악이나 후기인상주의의 퇴조와 같은 다른 예술 분야에서의 흐름은 음악과 회화 또한 불쾌의 체험으로 변형시켰다. 더 이상 아름다운 것만이 미의 대상으로 남아 있을 수 없었고, 예술은 추의 문제와 마주해야만 했다. 추와 불안은 카프카에 의해 예술 속으로 확실하게 포섭되었다.
한편으로 나는 카프카의 소설들을 순전한 환상소설로 읽는 관점에 반대한다. 그것이 환상소설이라는 견해가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환상소설이라는 이유만으로 그의 소설을 에드거 앨런 포나 러브크래프트의 소설과 유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카프카의 소설은 환상적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환상은 현실과의 긴장 속에서만 유지될 수 있다. 카프카의 소설 속에서 표현되는 것은 비현실적인 환상이 아니라 일상과 현실에 단단하게 뿌리내린 환상이다. 소설 속의 불안과 공포는 비현실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현실로부터 온다.
김숨이 카프카와 유사하다는 인상을 받은 이유 또한 이런 맥락 위에 있다. 김숨의 소설들은 아름다운 것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추하고 불쾌한 것들을 대상으로 한다. 그러면서도 그의 소설에서 드러나는 현실성과 환상성 사이의 긴장은 카프카의 그것과 닮았다. 그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고유성을 잃어버리지 않는 까닭은 우리의 근대적 일상성을 숨이 막힐 정도로 치밀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는 그가 단지 카프카를 따라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문제 삼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앞서 말한 것처럼 그의 소설이 고유성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더 긴급하게 물어야 할 것은 다음과 같은 질문이다: 오늘날 고통으로서의 예술에는 카프카의 시대와 같은 의미가 남아 있는가?
쇤베르크의 총렬적인 음악조차 이제는 진부해지고 클리셰화되었다. 불쾌와 추로 여겨졌던 양식이 점차 일반적인 것이 됨에 따라 우리로 하여금 다시 생각할 기회를 갖게 했던 불쾌는 더는 불쾌가 아니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카프카 시대의 예술을 반복하는 것은 무의미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예술이 총체적인 무의미의 장이 되어버린 지금, 내게는 카프카적인 시도 또한 다시금 절박한 시도가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님 쇤베르크 후기인상주의 이런 거 다 어디서 읽는 거임ㅜㅜ? 같이 좀 읽읍시다... 그리고 카프카가 문학에 대해 정의내린 건 서핑하면 금방 나오나? 나도 나중에 글 쓸 때 인용하고 싶은데
어... 전자는 미학 관련 서적 이것저것 읽다보면서 알게 된 내용들에 가깝고... 후자는 저는 블랑쇼 문학의 공간에서 읽었는데 원전은 카프카의 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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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 ㅜㅜ...
매우 좋은 글. 일단 영업 당하였다. 추천 박았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