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Soviel Gestirne / Paul Celan
저 많은 별 / 파울 첼란
Soviel Gestirne, die
저 많은 별,
man uns hinhält. Ich war
우리 앞에 내밀어져있는. 나는
als ich dich ansah – wann? -
언제였던가? 너를 보았을 때
draußen bei
바깥의
den andern Welten.
다른 세계 곁에 있었어.
O diese Wege, galaktisch,
오 은하의 이 여러 길,
o diese Stunde, die uns
오 이 여러 시간, 그들은 우리에게
die Nächte herüberwog in
이쪽으로 와 밤들을 저울질 하네
die Last unsrer Namen. Es ist,
우리의 이름이라는 짐 안으로.
ich weiß es, nicht wahr,
나 알겠네, 거짓이라는 걸,
daß wir lebten, es ging
우리가 살았다는 것이, 지나갔다는 걸
blind nur ein Atem zwischen
단지 하나의 숨결이
Dort und Nicht-da und Zuweilen,
저기와 거기 없음 그리고 이따금 사이를,
kometenhaft schwirrte ein Aug
혜성 처럼 눈 하나가 지나갔네
auf Erloschenes zu, in den Schluchten,
꺼져버린 것 위로, 골짜기로 말이야.
da, wo’s verglühte, stand
눈이 작열했던 그곳에 서있네
zitzenprächtig die Zeit,
젖무덤처럼 화려한 시간이,
an der schon empor- und hinab-
거기서 이미 위로, 아래로,
und hinwegwuchs, was
또 저편으로 자랐어,
ist oder war oder sein wird-,
존재하는 것이, 또는 존재했던 것이, 또는 존재할 것이,
ich weiß,
나 알겠네
ich weiß und du weißt, wir wußten,
내가 알고 당신이 알고, 우리가 알았네,
wir wußten nicht, wir
우리는 알지 못했네, 우리는
waren ja da und nicht dort,
있었지만, 거기에는 없었어
und zuweilen, wenn
그리고 이따금,
nur das Nichts zwischen uns stand, fanden
단지 무가 우리들 사이에 서 있을 때, 찾아냈지
wir ganz zueinander.
우리는 서로를 온전하게.
----------------------------------------------------
*이하는 필자의 감상
파울 첼란의 이 시는 무 속에서 존재가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논하고 있다. 첼란의 무는 존재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현존에 대한 아님이다. 이렇게 첼란은 무를 부정(negatio) 내지 부정적 무(nihil negativum)으로부터 건져낸다. 그런데 시에서 존재가 드러나는 가장 근본적인 계기는 무임에도, 이 무는 시간에 의거해 이해되고 있다.
da, wo’s verglühte, stand
혜성이 작열했던 그곳에 서있네
zitzenprächtig die Zeit,
젖무덤처럼 화려한 시간이,
an der schon empor- und hinab-
거기서 이미 위로, 아래로,
und hinwegwuchs, was
또 저편으로 자랐어,
ist oder war oder sein wird-,
존재하는 것이, 또는 존재했던 것이, 또는 존재할 것이
존재가 시간을 통해서 드러난다. 사실 이러한 구절은 이미 호메로스와 오비디우스에게서도 나타난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독창적인 시구는 아니다.
"τοῖσι δ' ἀνέστη
Κάλχας Θεστορίδης οἰωνοπόλων ὄχ' ἄριστος,
ὃς ᾔδη τά τ' ἐόντα τά τ' ἐσσόμενα πρό τ' ἐόντα,
καὶ νήεσσ' ἡγήσατ' Ἀχαιῶν Ἴλιον εἴσω
ἣν διὰ μαντοσύνην, τήν οἱ πόρε Φοῖβος Ἀπόλλων·"
("일리아스" 1권 68-72행)
그렇지만, 첼란의 독창적인 점은, 이 "존재하는 것"을 호메로스와 오비디우스의 아폴론적 세계관에서 하이데거적 세계관으로 옮겨놓았다는 점에 있다. "존재의 빛"은 더 이상 아폴론적 태양이 아니라, 현존에 대한 아님에서 드러나는 "무의 밝은 밤"이다. 첼란의 무가 해석학적 의미에서의 무라는 사실은 이 다음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ich weiß,
나 알겠네
ich weiß und du weißt, wir wußten,
내가 알고 당신이 알고, 우리가 알았네,
wir wußten nicht, wir
우리는 알지 못했네, 우리는
waren ja da und nicht dort,
있었지만, 거기에는 없었어
und zuweilen, wenn
그리고 이따금,
nur das Nichts zwischen uns stand, fanden
단지 무가 우리들 사이에 서 있을 때, 찾아냈지
wir ganz zueinander.
우리는 서로를 온전하게.
무는 "너"와 "나" 와 같은 종류의 특정한 존재자의 존재방식이 아니다. 도리어 무는 그러한 방식의 존재자의 견지에서 파악될 수 없음에도, 존재자 일반은 무를 통해서 드러나는데, 왜냐하면, 무는 어떠한 존재하는 것도 아니기에, 존재 그 자체를 드러내거니와, 실로 존재 자체는, 유한한 존재자의 견지에서 볼 때 무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무는 존재 자체와 유한한 존재자 사이에 성립하는 그 "아님", 즉 플라톤 식으로 말하자면 "존재함"과 "아님" 사이에서 성립하는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첼란의 무는 하이데거에게서 그렇듯이 "존재하는 것"이 아님에도, 그를 통해 존재하는 것 일반이 드러나는 존재 자체로 이해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인용한 판본은 Paul Celan, "Sprachgitter/Die Niemandsrose", S. Fischer, Frankfurt am Main, 1986
히읶 다국어 능력자 무서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