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테면 이런 거
모나드 / 정원숙
검은 구름이 몰려옵니다. 창문이 없는 것은 내 잘못이 아닙니다. 세상엔 창문 같은 건 없었나 봅니다. 이 글쓰기를 지연해야 할까요? 온종일 검은 흙을 토해내는 천장, 날개 잃은 새들의 노래 소리, 밤하늘의 별들이 떨어져 이마에 핏물이 흐르는 소리 들립니다. 여기가 어디냐고 묻는, 거기가 어디냐고 따지든, 난 뿌리째 가득합니다. 주머니가 없는건 내 잘못이 아닙니다. 세상엔 주머니 같은 건 없었나 봅니다. 이 텍스트를 포기해야 할까요? 보세요. 주머니가 없어도 나는 상상으로 아기를 낳고 상상으로 아기를 사산합니다. 완전한 복화술을 익히면서 완전한 식물성을 탐구하면서 정의도 사상도 검은 흙 속에서 골라냅니다. 손톱으로 짓이겨 없애버립니다. 손목에 돋아나는 정맥들의 인사,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세요. 깨끗하게 지워질 날이 가까워옵니다. 죽어서 사는 것보다 살아서 죽는 것이 찬란하다고 썼던 걸 지워야 할까요? 아닙니다. 고백은 텅 빈 것입니다. 고백 같은 건 기르지 않기로 했습니다. 무섭지 않아요. 두렵지 않아요. 창문은 원래 없었고 깨진 유리 조각도 애초에 없었습니다. 구속하고 인내하고 굶으면서 골똘히 생각이라는 물질을 만집니다. 마음의 창문을 부숴야 할까요? 어디로 나가야 할지 나에게 묻지 마세요. 나는 온통 젖어 있고 뿌리째 아득합니다. 주머니가 없는 건 내 잘못이 아닙니다. 고백 같은 건 기르지 않기로 했습니다.
정원숙, 『수요일의 텍스트』 , 천년의 시작, 2016, 13~14쪽
이 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해? 궁금하다. 글쓴분은 이 시를 어떻게 해석하시나요?
유아론이 지닌 역리의 해소? 정도로 보면 무난하지 않을까요?
나도 한국시는 안 깐다. 좋은 시들 많은 것 같다.
문보영 시 디게 좋아했는데 - dc App
시부분은 잘은 모르겠는데 좀 신기한기분은 들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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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압축적으로 쓸 수밖에 없어서.. 얻어 걸린다라.. 한 편 한 편이 단편소설만큼의 힘을 실어서 쓸 수 밖에 없다고 보는데..
이우환도 무시할만한 화가는 아니고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사람임.
그 작품이 뭘 담고 있고, 그게 얼마만큼의 호소력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달린거지. 그리고 시 쓰는 거는 점 찍는 것 보다 훨씬 기술적으로 고난도임. 산문 작가보다 운문 작가가 지켜야 할 규칙이 훨씬 많은데 당연히 훨씬 어렵지.
그 점 찍는 작가는 미술계에서도 나름 논란 있는거로 아는데..... 그리고 예술의 가치랑 겅제적 가치는 무조건 같다고 볼 수 없는거고. 예술이 투기용으로 쓰이는 현실을 욕해야지 그 화가 자체를 까는 건 좀 논점에서 벗어난거 같은데
단편소설은 형식적인 면에서 시만큼 복잡한 규칙이 없으니까. 님 말대로면 단편 소설 여러 편 써서 그 중 하나 얻어걸리는 거랑 시 하나 얻어걸리는 거랑 무슨 차이인지 잘 모르겠는데요. 그리고 시도 짧게만 쓰지 않습니다.
아니 ㅋㅋ 짧은게 대다수고 시인들은 그 짧은 걸 다작하니까 그중에서 얻어걸리는게 맞는데 왜 자꾸 실드질이노? 지가 시인이라도 되나 ㅋㅋㅋㅋ
"짧게" 쓴다는 게 어느정도인지 모르겠는데, 시가 짧은 건 그만큼 형식이나 내용 면에서 압축적이기 때문. 그리고 단편 소설도 서정시만큼 짧은 건 수두룩하고요. 당장 카프카만 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