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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은 유성룡이 임진왜란 후 집필한 책이다. 황송하고 부끄러운 심정으로 썼다는데, 일단 책을 읽다보면 독자가 부끄러워 진다는 점에서 저자와 독자가 일맥상통한다. 독자와 저자가 하나 되는 일심동체의 지경에 이르는 것이다. 때문에 이 책은 가히 명저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부끄러운 감정이 든다는 건 정신이 건강하다는 방증이다. 잘못된 행동을 두고 반드시 그렇게 해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잘못된 행동은 일어나지 않는다. 부끄러운 감정은 잘못된 행동을 예방하는 백신과 같은 것이다. 문제는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할때 생긴다. 더군다나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인간이 하나가 아니라 많을 때는 어떻게 될까? 징비록은 그 답을 보여준다.

임진왜란 직전 일본이 조선을 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조선은 소문 확인을 위해 통신사를 일본에 보냈다. 일을 마치고 온 황윤길은 부산에 배가 도착하자마자 전쟁이 반드시 날 것이라는 보고를 했다. 그런데 같이 갔다온 김성일은 그런 정황을 보지 못했다고 답한다. 그리고 ‘황윤길이 인심을 동요시키기에 옳은 일이 아니’라며 오히려 황윤길을 나무란다. 이에 조정은 두 패로 의견이 갈렸다. 류성룡은 혀를 차며 김성일에게 만일 전쟁이 나면 어떻게 할꺼냐 물었다. 김일성 아니 김성일의 답이 가관이다.

“왜인들이 끝내 움직이지 않는다고 제가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황윤길의 말은 너무 지나쳐서 안팎의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미혹시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의혹을 풀어주려고 하였을 뿐입니다.”

갑론을박이야 어떤 상황에서도 벌어질수 있다치자. 문제는 강도가 당장 집에 처들어오려고 칼을 준비하고 있는데도 집안 싸움을 하고 있는 행태다. 경계가 허술하여 강도가 집에 들었으면 집안싸움은 멈추고 강도를 때려 잡는게 우선이다. 그렇다면 조선은 강도가 든 후 정신을 차렸을까?

강도가 가재를 다 털고 백성들이 도검에 찔려죽고, 못먹어 아사하는 상황에서도 조선의 고관대작들은 또 집안싸움을 했다. 지방수호라는 역할을 맡은 장군들은 지형상 유리한 성곽을 버리고 평지에서 전투를 감행하는 병신짓을 서슴치 않았고, 일부 머리가 돌아가는 무관들은 자신의 공을 세우려 다른 무관을 모함하고 죽이는 짓을 신속히 감행했다. 충격적인 것은 이게 다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이다.

그 와중에 류성룡을 빼고선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집안을 살릴 인재가 나타난다. 바로 이순신 장군이다. 징비록이 조선의 병크짓을 밝히는데 많은 분량을 할애해 이순신 장군에 관한 분량을 얼마 되지 않지만, 그 짧은 분량에서도 이순신 장군이 이룩한 업적은 ‘나 혼자만 레벨업’ 수준이다. 류성룡이 이순신 장군을 천거했기에 이순신 장군의 업적에 약간의 msg를 치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면서도, 장군의 임진왜란 전적은 이미 역사적 고증으로 드러난 것이라 의구심은 한낱 혼자만의 의혹임을 깨달을 뿐이다.

임진록엔 졸렬한 인간만 한가득이다. 그 중에서 으뜸을 뽑자면 역시나 선조다. 그는 무슨 연유에선지 이순신을 싫어하고 상대적으로 원균을 좋아했다. 태생 때문인건지, 아니면 이순신이 평소 뿜어내는 원칙주의자의 냄새가 싫었던 건지 아무튼 싫어한다. 이순신 장군이 한산도대첩으로 다 꺾여가던 전세를 역전시키는 발판을 마련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처벌한다. 연유는 일본 해군을 쫓아가 잡으라는 명에 소극적이라는 보고가 올라온 것. ‘기회는 이때다’ 선조는 냉큼 시행한 것이다. 그나마 사형에서 백의종군 처벌로 감형돼 불행중 다행이었다.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 한뒤 결말은 잘 알려져있다. 원균이 이순신을 대신해 싸움에 나섰고, 칠천량에서 대패해 죽는다. 모든 배가 다 쓸려나가 남은건 12척.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 라는 말로 더 유명한 그 12척은 실은 ‘배설’이 도망쳐 나오면서 남은 것이다. ‘배설’이 도망치지 않았더라면 이순신은 싸움조차도 시도 못했을 뻔 했다. 문득 주식매매의 격언이 떠올랐다. ‘손절도 전략이다.’ (배설은 명량해전 직전에 도망갔다.)

흥미로운 것은 이순신의 복귀하자 백성들과 군사들이 사기가 올라갔다는 점이다. 이쯤되면 선조가 그를 싫어한게 이해된다. 빤스런한 자기와는 달리 일본군과의 싸움에서 최초로 승리한 옥포해전부터, 전세를 역전시킨 한산도대첩까지 조선군의 피해 없이 왜적을 물리친게 첫번째 이유요, 그로인해 백성들의 인기가 하늘을 찌른게 두번째 이유다. 첫번째 보다 두번째 이유가 더 선조의 내장을 살살 꼬이게 했음은 미루어 짐작 가능하다.

복귀한 이순신은 그 유명한 명량해전을 치른다. 12척으로 120여척과 싸워 이긴다. 그리고 최후의 전투지인 노량에서 총탄에 맞아 장군은 숨을 거둔 다. 징비록에서는 명량해전과 노량해전에 대해 자세히 서술되어 있진 않다. 다만 노량해전에서 그가 죽은 뒤 조선은 물론 명나라 군대가 모두 통곡하였다는 대목이 나온다.

 ‘공께서는 실로 우리를 살려주신 분인데, 지금 공은 우리를 버리고 어디로 간단 말입니까?’

 징비록에서는 장수를 칭찬하는 대목이 없는데, 이순신에 대해서만은 예외다. 저 대목을 역으로 해석하면 ‘우리를 살려주지 않는 놈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류성룡이 저 발언을 굳이 쓴 이유는 선조와 조정을 은근히 겨눈 것은 아니었을까?

징비록을 읽게된 동기는 조선이 치명적인 실수를 얼마나 많이 저질렀나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초반 중반부에서는 조선이 저지른 짓들을 문자로 확인하면서 혀를 찼다. 열받으면서도 즐겁기도 한건 함정. ‘에라이 ‘병x들아’ 속으로 되내이는 맛이 일품이다. 하지만 후반부에는 결국 이순신 장군의 거대한 존재감에 압도된다. 이게 사람인가…

이 책은 징비록의 내용과 함께 해설이 들어가 있어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책의 마지막 또한 해설로 끝나는데, 선조의 졸렬함을 다시한번 확인시켜 준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선조가 공을 기리는 문서를 만든다. 선무공신첩. 일등 공신은 세명이다. 이순신, 원균, 권율. 선조가 나라말아먹을 뻔한 원균을 일등 공신에 올린 것이다. 자기가 택한 원균을 차마 2등급 내지는 3등급을 줄순 없었나 보다. 책은 졸렬함의 끝을 확인하고 막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