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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알짝 스포 주의
1.<위폐범들>은 형식이 특이한데, 미장아빔이라고 지드 자신은 불렀다는데 누보로망의 느낌이 난다.
미적 효과를 기대하며 이야기라는 격자 안에 또 다른 격자를 넣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 자체로 내용과 다른 또 다른 주제를 던져준다.
소설가로 등장하는 에두아르는 문학에서 보이는 통속적인 양상이 불만스럽다. 그가 짓고 있는 소설의 제목도 <위폐범들>이다. 하지만 주변 인물들은 에두아르한테 엿보이는 고집 센 관념지향적인 면을 보고 그래서는 소설을 결코 완성하지 못할거라 조언을 한다.
소설가답게 관찰가의 입장에서 에두아르가 적은 일기가 작품의 30~40%를 차지한다.
그는 일상에서 보이는 사람들의 이기주의나 신앙이라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신의 비호와 자만심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몰상식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관념과 사상이 옳다는 반증을 모으는 집념가의 모습도 보인다.
에두아르의 관심은 온통 세상에 대한 자신의 순수한 예술관이 옳다는 걸 입증하는 데에 쏠려있다.
2. 에두아르가 짓고 있는 소설의 제목은 지드가 완성해낸 소설 제목과 같다. 에두아르는 얼핏 지드 자신의 모습 아닐까 하지만 단순하게 봐도 둘 사이의 차이는 분명하다. 에두아르는 소설을 완성하지 못했고, 지드는 완성시켰다.
지드가 만들어낸 이야기라는 허구를 에두아르는 현실로서 부여받는다. 관념적인 에두아르는 결코 제대로 짜여질 수 없는 현실-동시에 허구-안에서 예술의 순수성,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추구하는 사상가의 모습을 보이는 아이러니적인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실상과 허구의 특징을 반씩 섞은 ‘위폐’처럼 모든 작중인물들은 반쪼가리의 가치만을 지닌다.
완벽주의자 에두아르도 예외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사상대로 합리화할 수 없다면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모든 일상을 자기 입맛대로 사족을 붙여서 해석한다. (2부 말미에는 작가가 서술가로 등장해 3부에서 전개될 비극을 암시하는 전지적인 모습을 띈다.) 남의 이기주의와 편협함을 비판하는 에두아르도 시작부터 자기한계에 갇혀있는 인물로 보인다.
관념, 순수성, 끝내는 “하느님께 자신을 귀의시키는 서정적인 정신”으로 자신이 겪는 현실을 해석하며 에두아르는 일기와 소설의 작업을 이어가지만 흐릿하고 쉽사리 실재화할 수 없는 자신의 관념적인 사상마냥 자꾸만 어디선가 중단된다.
에두아르는 시종일관 헤매는 모습이다.
3.반면에 지드는 소설을 완성시킨다. 작가를 작중 인물처럼 과잉 해석하는 것 같지만 지드는 에두아르 사이에 어떤 차별점을 두었을지 생각을 안해볼수가 없다.
이 차별점이 내겐 지드가 말한 “이야기에서 이탈하는 또 다른 주제”처럼 보인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차차 생각해볼 주제다. 시간이 없다 ㅈㅅ.
하지만 단번에 보이는 차이점은 작중 인물 중 어느 한 꼬마의 자살에 대한 서술이다.
사실 내용상 꼬마의 죽음은 자살보다는 비극적인 사고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지드는 (창작자니까 당연히) 사건의 내막을 전부 알지만 에두아르는 꼬마의 죽음을 자살로밖에 볼 수 없는 좁은 위치에 서있다.
숨겨진 내막이 에두아르에게 밝혀지지 않은 채 소설은 끝이 난다.
지드가 세계를 창조하는 “신”이라는 창작자 위치에 있고, 에두아르는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개인이라는 시각하에, ‘하느님에게 귀의하는 정신’을 운운하던 에두아르가 꼬마의 죽음을 “(자신의) 사상에 앞서 일어나는 (이해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이유로 “온당치 않은 일”으로 까지 말하며 자신의 소설(또 다른 <위폐범들>)과 일기에 다루지 않겠다는 모습은 에두아르 자신이 비판하던 오만함으로 내겐 보인다.
또 자연을 있는 그대로 포괄하는 소설을 창작하겠다던 에두아르의 소명과도 같은 작업의지에 걸려있는 그 선천적인?개인적인? 한계를 느끼게 한다.
3.시간이 없어서 에두아르를 중심으로 감상을 썼지만, 소설을 찬찬히 읽다보면 모든 인물이 조금씩 우리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최근 읽은 소설 중 가장 다면적인 소설이 아니었나싶다. 이런 다면성을 염두해두고 소설 내용을 되감아보니 <위폐범들>이 우리같은 독붕이에겐 수많은 소설 중 하나지만, 지드 자신에게는 "유일한 소설"이었던 이유도 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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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흐가 자기 소설을 두고 위폐범들, 율리시스 부류의 예술의 혁신을 가져온 소설이라고 주장했는데 위폐범들은 아직 안 읽어봤네. 나중에 시간되면 봐바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