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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액트 오브 킬링>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그런 일도 여기서 있었지요, 하고 약간은 대수롭지 않은 추억을 늘어놓듯 기괴한 살인 행각을 이야기하는 걸 듣고 있자니 참 마음이 불편해졌다. 과한 일반화가 아니라면, 자신과 무관했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참상을 듣고 얼굴을 찌푸리게 된다. 그런 식으로 나치의 유태인 학살이나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듣고 고개를 젓는다. 아마 소련의 굴라그 역시 마찬가지 반응을 보일 것이다.
옛날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이 굴라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해줄 자료가 참 많다. 앤 애플바움이 저널리스트로서 정보를 수집해 출판한 <굴락>이 있고, 최근에는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여성들의 인터뷰들을 모은 영화 <굴라크 수용소의 여인들>도 있다. 하지만 냉전이 아직 데탕트에 들어서지 않았을 때에는 그리 정보가 많지 않았다. 굴라크의 존재 자체가 약간은 전설적으로 느껴지던 시기도 있었으니 말이다. 유일하게 참상을 알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책들이었다. 솔제니친이 쓴 <수용소 군도>는 너무나 유명하지만, 지금은 다른 유명작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바를람 샬라모프의 <콜리마 이야기>다.

<콜리마>는 짧막짧막한 다큐멘터리들을 모아놓은 것 같은 단편집이다. 수용소 안에서 생긴 일들을 각기 다른 화자를 통해 짧게는 몇 페이지, 길게는 서른 페이지 정도를 걸쳐 이야기하는데, 대부분의 경우 주관적인 해석은 거의 없다. 말 그대로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괴혈병에 걸려 곪기 시작한 다리의 농과, 통조림 깡통에 끓인 수프 한 그릇 때문에 뒤에서 머리를 얻어막고 죽은 시체 따위를.
분위기가 언제나 암울하진 않다. 이따금 재치 있는 비꼼, 지금은 공산주의 유머라고 알려진 것들도 종종 보인다. 단편 <인젝토르>를 짧게 인용해보겠다.
“보고서 ㅡ (...) 여섯 시간 작업 지연에 대한 해명서를 제출하라는 소장님의 지시에 따라 다음과 같이 보고합니다. 아침 기온은 영하 50도 이하였습니다. 보고드린 대로 우리 온도계는 당직 감독관에 의해 고장 났습니다. 그러나 뱉은 침이 공중에서 얼어붙었기 때문에 온도 측정은 할 수 있었습니다.
작업반은 정시에 데리고 나갔으나 우리 구역에 공급되어 동토를 녹이는 보일러의 인젝토르(급수용 분사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바람에 작업에 착수할 수 없었습니다. 인젝토르의 작동 불량에 대해서는 주임 기사에게 수차례 통보했으나 어떤 조치도 취해지지 않아 인젝토르는 완전히 못 쓰게 되었습니다. (...) 인젝토르는 이미 5일 동안 형편없이 작동하고 있는데, 사실 구역 전체의 계획 수행은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인젝토르를 잘 다루지 못하고, 주임 기사는 이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흙 몇 세제곱미터를 요구할 뿐입니다.
이상. ‘황금샘’ 구역장 광산 기사, L. 쿠디노프.”
“다음은 보고서에 정확한 필체로 비스듬히 쓴 것이다.
1) 5일간 작업 거부로 구역의 생산 중단과 지연을 야기한 수인 인젝토르를 3일간 작업에 나가지 못하게 하고 감금했다가 징벌 중대에 수용할 것. 이 건은 수인 인젝토르에게 법적 책임을 묻기 위해 조사 기관에 넘길 것.
2) 주임 기사 고레프에게 생산 현장의 규율 부재를 경고함. 수인 인젝토르는 자유노동자로 교체하도록 제안함.
광산 소장 알렉산드르 코롤레프” (pp.81-82)
이따금, 현실은 그저 본 것만으로 웃음이 나올 정도로 골계적이다.
다만 물론, <콜리마>는 골계적인 것보다는 참담함에 더 초점을 둔다. 그저 밥 한 그릇, 따뜻한 온기 하나만을 위해 사람이 얼마나 치졸해지고 밑바닥까지 내려앉을 수 있는지, ‘깡패’들이 수용소에서 어떻게 자기들만의 세상을 살아가는지, 그리고 사람들이 어떻게 그들을 닮아가게 되는지 말이다. 거대하고 싸늘한 세계 앞에서 개인이 망가져간다고 표현할 수도 있다.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아마 이 글은 모더니즘 문학 중 하나에 들어갈 것이다. 체호프가 보여주고 암시한 방식을 그대로 이용해, 보다 더 근대적인 주제를 이야기하는 모더니즘 말이다.
이런 참상 앞에서 말을 잃은 작가들이 참 많다. 토마스 만만 하여도 <파우스트 박사>를 통해 근대성이 암시했을지도 모를 참상-나치즘-에 대한 절망을 써냈다. 하지만 물론 <콜리마>는 두 걸음 더 나아간다. 그 참상의 한가운데에 서서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점에서 하나, 그리고 그 소란을 수용소 안에서뿐 아니라 밖의 현실까지 소폭 적용시킨다는 점에서 또 하나. 도덕의 배반, 동물적인 배덕, 지성에 대한 배신과 ‘깡패’들의 생활 방식에 대한 고평가는 어쨌든 밖에서도 약하게나마 반복되는 일이다. 매번 하기 낯부끄러울 정도로 뻔하고 약간은 질리는 말이지만, 결론은 경각심으로 돌아온다.
P.S. 그러고보면 최근 상당히 인지도 높은 작가 중 하나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체르노빌의 목소리> 등의 저자)가 인터뷰 중 자신은 솔제니친보다는 샬라모프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다고 한 적이 있다. 메시아적인 방식으로 마치 톨스토이처럼 지옥 속의 구원을 이야기하는 것보단 담담하게 거창함 없는 참상만을 이야기하는 방식이 확실히 닮긴 닮았다고 생각한다.

기승전 체르노빌의 목소리로 끝나서 뭔가했네. 이런거보면 그냥 러시아 자체가 문학적으로는 매력적인 장소가 아닌가싶음
좆같이 살기 끔찍한 곳이라는 뜻일지도...
유튭에서 러샤 흑돌고래 교도소 다큐 본거 생각난다. 죄다 장기수였는데, 자발적으로 담담하게 성매매하던 할아버지가 인상적이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