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토지 인물열전 뒤적거리다가 글감이 떠올라서 여기에 올림. 물론 제목에서 말한 구천이는 내가 아니라 토지 구천이임. 3인칭 쓴거 아니니 오해 없길 바람.
-구천이/김환
내가 쓴 토지 관련 글들 보면 '구천이'보단 '김환'이라고 많이 표현했음. 사실 그게 본명이라... 정확히 밝혀두자면,
김환 = 구천이
김환 ==> 본명. 2~3부에서 주로 이 이름을 씀. 동학 잔당을 규합한 리더격의 인물.
구천이 ==> 가명. 1부에서 최참판댁 노비 행세할 때 주로 이 이름을 씀. 2~3부에서도 평사리 사람들이 그를 두고 구천이라 말하긴 함. 형수님과 사랑의 도피를 한 패륜의 사나이.
참고로 구천이는 다분히 불교적인 네이밍임. 불교에서 '대지를 중심으로 하여 그 둘레를 도는 9개의 별'을 구천이라 함. 우주의 무한함을 깨닫고 인간이 한낱 미물에 불과하다는 자각에 이르게 하는 불교적 우주관임.
이와 유사하게, 김환의 '환'은 '고리 환'임. 우주의 순환과 연결지어 생각해볼 수 있음.
-토지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사실 없음. 주로 토지 소개할 때 " '윤씨 부인-별당아씨-서희'로 이어지는 3대 여성의 이야기이다 " 라고들 많이 하는데, 조금 아쉬운 설명임. 윤씨 부인은 스토리 라인에서 꽤 중요한 인물이긴 하지만, 1부 중반에 호열자로 죽어서 그 이후론 등장하지 않음. 그리고 별당 아씨는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단 한번도 없음. 구천이의 회상을 통해 단편적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대부분임. 서희는 오랫동안 꾸준히 등장하긴 하지만, 2부에서 자신의 토지를 되찾은 이후로 스토리 중심선상에서 많이 어긋나 있음. 약간 조력자나 npc 같은 느낌? 가만보면 장연학이 npc이고, 서희는 게임 튜토리얼 같은 데 등장하는 박사님 같은 존재가 아닌가 싶다. 그 왜 플레이어에게 아이템 주는 애들 있잖아.
오히려 서사의 중심은 3대 여성의 파트너인 "김개주 - 구천이 - 김길상" 쪽이 차지하고 있는 편임. 하지만 그것도 정확하지 않고, "김개주, 구천이, 김길상에게 영향 받은 농민, 지식인, 독립투사, 여성들"의 이야기라 보는 것이 맞음. 토지에서 주인공을 하나로 좁히는 것만큼 쓸모없는 일이 없다고 생각함. 평사리나 지리산 같는 특정 장소를 주인공으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사실 토지는 용정, 상해, 진주, 통영, 연해주, 서울(혜화동) 등등 무수히 많은 공간적 배경을 품고 있음. 아무래도 1부만 본 사람들이 많아서 평사리에 중점을 두는 게 아닌가 싶음.
뭐 객관적으로 봤을 때 그렇단거고, 내 사심을 넣자면 주인공은 구천이임. 암튼 그럼. 읽고 났을 때 제일 인상 깊은 인물이 구천이고, 이는 내 개인적인 생각만이 아니라 작가가 어느정도 의도해둔 바이기도 함. 박경리는 구천이를 '한'과 '대자대비'를 품은 이상적 인물상으로 만들었음. 저 두번째 짤 철학자가 분석한 구천이 부분 읽어보시길. 제법 괜찮은 분석이라 생각함.
-어째서 실패한 인간들의 이야기를 이토록 길게 쓰는건가?
저번에 박경리 인터뷰 모음을 보다 깜짝 놀란 적이 있었음. 박경리는 김길상이란 인물을 '실패한 인생'이라 단언하며, "내 욕심이 과해서 그를 불행하게 만든 것 같다."라 표현했다는 점임.
노비의 신분에서 양반까지 올라온 그의 인생은 완벽한 드라마지만, 자격지심과 주변의 차가운 시선 속에서 그는 끝없이 고통받음. 심지어 그는 독립운동에 직접적으론 관여하지 못하도 뒤처리만 도맡다가 늙어서는 꽤 오랜시간 감옥에 수감돼 있음. 마지막 장면, 서희와 양현이 부둥켜 안는 그 때에도 길상은 여전히 감옥에 갇혀 있음.
구천이도 성공한 인물은 아님. 자기가 애써 만들어놓은 동학당을 지삼만이 망쳐놓고, 걔가 자기 밀고하는 바람에 감옥에 갇힘. 구천이는 결국 자살함으로써 정보가 새어나가는 걸 막아버림. (감옥생활을 버티고 나중에 풀려난다 할지라도, 뒤에서 순사들이 구천이를 주시하고 있어서 정보가 새어나갈 위험이 있기 때문.)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미친 세상에서는 가장 미친 놈이 왕임. 행복한 세상에선 제일 행복한 놈이 왕이고. 한스러운 세상에선 가장 한스러운 인생을 산 사람들의 이야기가 중심이 될수밖에 없음. 구천이는 구한말과 일제시대를 대표하는 인간상이기도 했다는 것임. (그가 평균적인 인간이었다는 뜻이 아니라, 시대정신을 대표하는 인물이란 뜻.)
갤에 드문드문 토지 얘기가 나오긴 하는데 정작 토지 빠는 사람들은 별로 안 보여서 아쉬움. 언젠가 독갤에서 토지가 율리시스만큼 많이 언급되는 날이 오면 좋겠다. 하지만 그런 날은 오지 않겠지...?
<토지 한마당>
-토지 사투리 모음
https://m.dcinside.com/board/reading/89245
-구천이 소개(1)
https://m.dcinside.com/board/reading/79985
-토지 4, 5부 재미가 떨어지는 이유
https://m.dcinside.com/board/reading/74625
저거하나에만 파기에는 시간이 너무오래걸리잖 그리고 나는 박경리문체자체가 상당히 안맞아서 앞으로도 볼일은없을꺼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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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인칭 오반데.. - dc App
2부 읽는 중인대 스포 당함ㅠ
앗 ㅈㅅ ㅠㅠ 여기 토지 읽는 사람이 얼마 없어서 괜찮을 줄 알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