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략 4달 동안 해외출장와서 읽은 책들입니다.
프로젝트를 마치고 내일 모레 한국으로 귀국할 예정이어서,
이번 해외 출장을 마감하는 기념으로 사진을 찍어 봤습니다.
한국어 번역본 4권, 한국 사람이 쓴 책 1권,
그리고 해외 출장지 서점에서 산 책이 3권입니다.
단촐하죠 - 그 대신 시간을 투자해서 원서를 좀 읽었습니다.
한국에서 가지고 온 책들은 모두 다 문고판이고,
모두 여벌로 같은 책을 다른 판본으로 따로 더 가지고 있는 것들입니다.
경험상 해외 출장 중에는 불행하게도 트렁크가 비를 맞아 젖어버릴 수도 있고,
심지어 비행기에서 내렸는데 짐이 엉뚱한 곳으로 사라져버리는 일도 발생할 수 있어서,
해외를 돌아다닐 때는 마음 속으로 귀중하게 여기는 책들은 잘 가지고 다니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출장지로서 가지고 온 책들은 이미 오래 전에 두 번 이상 읽은 책들이었습니다.
중고등학생 시절에 삼중당문고와 범우문고, 문예출판사 문고 등으로 먼저 사 읽은 후
이런저런 이유로 나중에 같은 책을 다시 새로운 판본으로 또 사 읽었던 것이니까요.
삼중당문고로 사 읽었던 <체홉 단편집> 김학수 번역본과 <젊은 베르테르의 번민> 박환덕 번역본은
본래 이번 출장이 아니었다면 버리려고 했던 책들입니다.
- 하드커버로 이쁘게 만들어진 여벌 번역본을 따로 가지고 있고, 그 책들도 번역이 잘 되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출장 나와서 찬찬히 몇 번이고 정성스럽게 삼중당문고본을 다시 읽어보면서,
김학수 번역본과 박환덕 번역본의 뛰어남에 끊임없이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면서...
책을 처분할 생각이 사라졌습니다 - 보석같이 빛나는 이런 문장을 어떻게 버리겠는가 그런 생각을 했죠.
마찬가지로 문예출판사 구 문고판 <지하생활자의 수기> 이동현 번역본도 이번에 찬찬히 다시 읽었는데,
확실히 번역 레벨에 있어 열린책들에서 새로 다시 나온 책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를 보여주더군요.
어차피 <죽음의 집의 기록>이 합본으로 있는 열린책들판은 처분할 수 없습니다 - 그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이동현 번역의 <지하생활자의 수기>가 열린책들의 도끼전집판과 비교도 안되게 뛰어난 번역이어서...
몇 십 배는 훨씬 더 훌륭한 번역본을 처분해버리는 우를 범할 수 없다고 마음을 고쳐 먹었습니다.
키에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 역시 철학교수이자 명수필가였던 김형석 교수의 번역인데,
삼중당문고 번역 레벨의 높음을 다시 한 번 깨닫고 무릅을 꿇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일단 번역 문장 자체가 격이 다릅니다 - 한국어 구사가 너무나도 뛰어납니다.
본래 "버려도 좋은 책이니 아무래도 좋다" 생각으로 해외에 들고 나왔다가,
버릴 책이 없다는 식으로 생각이 바뀌었으니... 이것도 팔자죠.
그나마 <근원수필> 정도가 새로 다시나온 하드커버본이 유일하게 더 괜찮았던 사례입니다.
하지만 범우사 <근원수필>은 1950 년대에 처음 출간되고 절판되어 영원히 사라져버렸던 책을
수 십 년만에 다시 발굴하여 재출간하면서 세상에 <근원수필>의 뛰어남을 다시 알렸던 판본입니다.
어떻게 보면 범우사 오너 본인이 수필가 출신이어서 가능했던 일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들고 나온 문고판들은 한 달도 안되어 다 읽었고, 읽을 책이 없는 것을 견딜수가 없어서
읽을 거리가 떨어질 때마다 출장지 주변의 시내로 나가 서점에서 한 권씩 책을 사들고 오다보니,
그렇게 되는 게 대략 한 달에 한 권 꼴이어서 뜻하지 않게도 3권이 더 늘어났습니다.
월터 스콧 <롭 로이>
브램 스토커 <백사의 전설>
알렉상드르 뒤마 <삼총사 3부 - 철가면>
모두 한국에 한 번도 번역된 적은 없는 책들데,
무지하게 유명한 작가들의 쓴 고전들이라 할 수 있죠.
월터 스콧의 책은 일전에 이미 5편을 읽어 봤습니다.
<미인의 호수>, <웨이벌리>, <아이반호>, <케닐위스의 성>, <스코틀랜드의 역사 이야기>
하지만 대표작 중 하나이라는 <롭 로이>는 아직까지 번역된 적이 없었고, 못 읽고 지냈죠.
해외 나와서 직접 찬찬히 읽어보니... <롭 로이>는 진정 어마어마한 작품이더군요.
스코틀랜드의 역사와 당시 정치적 사회적 양상, 그리고 문화적인 배경까지,
다채로운 면면을 스코틀랜드 독립 운동을 배경으로 흥미진진한 서사 속에 잘 전달합니다.
다만, 영어 실력이 딸리는 게 한입니다 - 제대로 이해 못하고 페이지를 넘기는 경우도 허다해요.
한 번 읽고 말 책이 아니라 이후 다시 재독 삼독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딸리는 영어실력에도 분량이 무척 많은 <롭 로이>를 어떻게든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이미 월터 스콧의 <스코틀랜드의 역사 이야기>를 일찌감치 흥미롭게 완독했기 때문입니다.
<스코틀랜드의 역사 이야기> 4 권에서 중점적으로 다루어지는 "재커바이트의 난"이야 말로
소설 <롭 로이>의 가장 중요한 테마이기 때문에, 저도 모르게 미리 예습을 잘 해 둔 셈이었죠.
브램 스토커의 <백사의 전설>은 개인적으로 팬터지/호러 팬이어서 집어 든 책입니다.
작가의 말년에 쓰여진 최후의 장편소설이고, 사실상 유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작품이죠.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백사의 전설>이 책으로 나온 것은 휴 그랜트 주연의 영화 덕분일런지도...
책을 읽으면서 브램 스토커는 아일랜드 스타일의 호러 작가이기도 하지만 변태로 여겨지기도 하더군요.
뒤마의 <삼총사 3부 - 철가면>은 지금 읽고 있습니다.
한국에는 <삼총사>, <삼총사 2부 - 20년 후>가 완역되어 있고,
지금까지 <삼총사 3부 - 철가면>은 한 번도 완역본이 나온 적이 없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철가면>의 유명세와 수 많은 영화, 만화 등이 나와도 그렇습니다.
영어 실력으로 인하여 쉽게 잘 읽히지는 않지만, 프랑스 고전을 영어로 읽어야 하는 게 아쉽지만,
그래도 한량없이 기다리다가 이렇게 어떻든 책으로 읽고 있으니 행복합니다.
- 스스로의 영어 실력이 부족하여 이해 안되는 대목은 대충 넘어가는 경우가 꽤 있지만,
어떻게든 하여간 꾸역꾸역 읽고 있으니까요.
어? 딴 건 몰라도 철가면이 왜 아직 한국어가 없지? 당연히 있다고 생각했는데?
ㄴ 완역본 없어요
그나저나 웃기네요. 기껏 글을 올렸더니 글 쓴이 정보가 깨져서 나오니 원... 댓글은 또 안깨지니 이건 또 뭔지
철가면이 어린이 만화판으로는 두 번 번역되어 나왔네요. 성인용이 아직 없는 줄은 몰랐습니다.
멋지십니다. 죽음에 이르는 병, 번역이 궁금하네요. 가독성 좋게 읽히던가요?
자극받고 갑니다
박환덕역의 젊은 베르테르의 번민은 도저히 구할수가 없던데ㅜ 큰글이라는 출판사에서 말도 안되는 가격에 파는 것 말고는..
오 존멋 - dc App
저도 이동현 제일 좋아합니다~
<죽음에 이르는 병> 최근 판매중인거는 누구 번역이 나음?
ㄴ 모릅니다. 김형석 교수는 젊을 때부터 키에르케고르 빠돌이였고, 그의 대표작이 <고독이라는 병>입니다. 누가 봐도 키에르케고르에 대한 오마주죠. 저 수필집이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 유명해지고 연세대 철학과 교수에 임용되었죠. 당대를 진동시킨 명 수필가이자 철학자가, 자신의 평생 영혼의 지침서였던 책을 직접 번역해서 그런지... 문장이 참 좋습니다
글보고 저도 체홉단편 지하생활자의 수기 이북으로 삿어요. 글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dc App
역시 대독서가이심
ㄴ '큰글 세계문학 시리즈'는 저시력자를 위하여 글씨 크기를 거의 2~3배 키워서 펴내는 책이고, 제작 단가가 비싸고 판로가 넓지 않아서 어마어마한 가격이 붙을 수 밖에 없다고 하더군요. 1970 년대 까지 나온 문고판 위주로 번역원고 저작권자에게 출판권을 기증받아서 펴내고 있다고 합니다. 삼중당 문고가 큰글 세계문학으로 다시 나온 게 꽤 많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