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윌리엄 포크너는 1897년 미국 남부 미시시피 깡촌에서 태어나, 남부 깡촌에서 살며 레드넥들이 삶을 지켜보았습니다.
작은 포크너는 망해가는 시궁창 미국 남부를 뼈저리게 체험했고, 남부 집안의 영향으로 남부를 누구보다 잘 알았습니다.
작은 포크너는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내던 소꿉친구와 결혼할 거라고 믿었지만, 소꿉친구는 다른 남자와 결혼했어요.
물론 10년 정도 지나고, 소꿉친구는 남편과 이혼하고, 포크너와 결혼하여 그럭저럭 잘 살지만, 이때 작은 포크너는 너무나도 큰 충격을 받았어요.
대학에 다니던 작은 포크너는 상심했고, 때마침 1차 대전도 있었기에 군대로 도피하려고 했지만, 불행하게도 키가 작아서, 군대에 갈 수 없었답니다.
(키가 166cm 였음)
하지만 캐나다 쪽을 통해서 어떻게든 군대에 갔고, 전역 후엔 다시 문학 공부를 시작했답니다.
작은 포크너는 놀랍게도 처음엔 시인으로 데뷔를 했어요, 시집 2 편을 출간 후에야 처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죠.
<병사의 보수>를 출간하면서, 작은 포크너는 비록 자신이 좆만하지만, 조이스 같은 거장이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대학생 시절 작은 포크너는 조이스 등 현대 문학의 거장들을 즐겨 읽었거든요.
"비록 내 첫번째 소설과 두번째 소설은 망했지만, 이번에 쓰는 녀석은 갓작이다...이걸로 나는 뜬다....!"
사실 포크너의 생각은 반은 맞았다.
그가 심혈을 기울이던 세번째 장편, <먼지 속의 깃발들>은 그가 너무나도 잘 알던, 그의 삶 그 자체였던 미국 남부의 모든 것을 담은 야심만만한 대작이었다.
무엇보다도, 오늘날 포크너의 세계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미국 남부 가상의 지역, <요크나파토파> 군을 배경으로 시작하는 첫번째 장편이었다.
하지만 포크너의 야심작은 그대로 출판사에서 퇴짜를 맞는다.
결국 눈물을 머금고, 포크너는 자신의 편집자에게 원고 삭제를 부탁하고, 자신의 야심작이 편집자의 손으로 난도질된 상태로, 제목까지 <사토리스 가>로 바꾸고, 분량도 대폭 줄인 이후에야 포크너는 자신의 야심작을 출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눈물 섞인 작품 마개조는 포크너 뿐만 아니라, 앞으로 세계문학을 뒤흔드는 계기가 되었다.
"누구든 작은 포크너의 작은 소설을 건들면...좆되는 거야."
사실 그 동안 포크너는 지인과 편집자들의 조언에 따라 글을 써왔었다.
그러나 자신의 야심작이 편집자들에게 난도질되는 것에 충격을 금치 못한 포크너는 어차피 안 팔릴 거라면, 그냥 내 꼴리는대로 쓰자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후 포크너는 정말로, 편집자나 다른 이들은 의식하지 않은 채, 자신이 쓰고 싶은 대로 쓰게 되고,
오늘날 미국 문학의 괴물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전까지와 달리, 자신이 좋아하는 조이스 등을 본받아, 새로운 형식의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하고...또 다양한 화자를 내세우며 남부의 몰락을 다루는 기묘한, 한 백치가 읊조리는 소음과 분노로 가득한 소설을....
얼마 지나지 않아, 포크너는 자신이 꼴리는대로 쓴 4번째 장편을 출판사에게 가져간다.
"오이오이 포크너 키사마!!! 이 소설은 대체 뭐냐!!!"
"아아 ---- 이건 <소리와 분노>라는 거다. 이제부터 내가 네놈들 조언 안 듣고, 꼴리는대로 쓰겠다는 결심이지."
"스고이이이이!!"
때마침 미국 남부 콤슨 가의 아이들을 주제로 하는 세 편의 단편 연작을 구상중이던 포크너는 꼴리는 대로 쓰자는 생각 아래, 장편으로 마개조를 실시하고,
오늘날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소리와 분노>는 그렇게 출판사의 거절 덕분에 탄생되었다.
출간 후, 크게 팔리진 않았으나, 평론가들의 주목을 받게 된 포크너는 다음작 <내가 죽어 누워있을 때>로 또 다시 미국 문학을 이끌 거두로 평가받으며
그 다음작이자 순전히 돈 때문에 썼다고 포크너가 그짓말하는 <성역>의 성공으로 그는 작가의 길을 본격적으로 걸을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성공 직후, 포크너는 많은 미국 작가들이 그러했듯, 보다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 할리우드에서 제안한 시나리오 작가 생활을 시작한다.
챈들러의 <빅 슬립> 영화 시나리오를 맡는 등 약 20편의 할리우드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서 일하며 삶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도
그는 게속 작품 발표를 하고, 끝내, 노벨문학상까지 받는 등, 영광을 누리게 된다.
1962년 생을 마감할 때까지 포크너는 당대 미국 문학의 대표 작가, 짧고 간결한 문체의 헤밍웨이와 달리, 다채롭고, 의식의 흐름에 몰두하는 정반대 성향의 작가로서 오늘날까지 널리널리 읽힌다.
하지만 포크너가 <의식의 흐름> 기법을 즐겨 사용했다고 너무 두려워하진 말자.
"포크너?"
"아아---녀석은 우리 4천왕 중의 최약체."
"형편없어."
의식의 흐름 사천왕 중 윌리엄 포크너의 작품들은 최약체에 불과하며
오늘날 의식의 흐름 기법 입문작으로도 좋고, 또 수많은 미국 고등학생들이 SAT 대비 등을 위하여 즐겨 읽는 수능 문학 같은 작가이므로
두려워하지 말고, 포크너와 소리와 분노로 가득한 남부 요크파토나파 이야기를 읽자.
모더니스트의 기묘한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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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인이 오리라
모더니스트의 선조들
이럴수가 마침 소리와분노 읽다가 들어왔는데요 ㅋㅋㅋㅋ - dc App
근데 사천왕 남은 세명은 누구인가요...? - dc App
버지니아 울프, 프루스트, 제임스 조이스?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버지니아 울프, 마르셀 프루스트, 제임스 조이스
꺔쌰합니다(두 분이라 2인분으로 감사하다는 뜻) - dc App
와! 맥베스! - dc App
왜 지금까지 이 사람을 동그란 안경 쓰고 말쑥한 노인 같은 이미지로 생각했지
마지막 사천왕 씨발ㅋㅋㅋㅋㅋㅋㅋㅋ 그치 나머지에 비하면 순한맛 맞지
기다리고있었다고..요크나파토파의 창조주여
윌리엄 포크너 예전부터 생각했는데 이름 간지나요 뭔가 정석적인 작가의 이름 느낌이 든다.. ㅋㅋㅋㅋ
두 장 정도 넘기니까 정신이 혼미해지는 느낌이던데... 난 아직 멀었구나 - dc App
사천왕 ㅋㅋㅋ - dc App
정작 노벨문학상 받았을 때, 워낙 난해하고 재미없다는 평판 때문에 대부분의 작품이 절판 상태여서... 독자들이 포크너의 노벨상 소식 듣고 서점을 찾았을 때 팔 책이 없었다고 합니다. 포크너는 노벨상 아니었으면 자신의 절판된 책들이 다시 재출간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술회하기도 했죠
저는 앞으로도 모더니즘을 볼일없겠군요^^
맥베스읽다가 궁금해서 와봤는데 거기에 영향을 받은건가여!! 그리고 글 개욱김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