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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책 리뷰라기보단 글귀 리뷰다

글귀 하나를 보고 든 생각이다


"미성숙한 사람의 특징이 어떤 이유를 위해 고귀하게 죽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동일한 상황에서 묵묵히 살아가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난 이 글귀를 보고 뒤통수를 쎄게 맞은 기분이었는데, 불과 1년 전까지 나의 정신과 너무 비슷해서 그런 것 같다.

확실히 정신이 미성숙한 소년 소녀들, 젊은 축에 속하는 이들은 자살이나 희생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

젊은 층에서 주로 소비하는 웹툰이나 소년 만화만 봐도 조연 주연의 고귀한 희생, 슬픈 죽음 따위의 것들이 명장면 꼬리표를 달고 블로그나 유튜브를 돌아다니지 않는가.


힘든 상황에 반항하지 않지만 또 굴하지도 않으며 묵묵히 살아가는 이 시대 전형적인 가장의 모습, 그것은 찌질해서 참지 못하겠고 그래서 그런 상황에 대항하는 자신의 눈에 띄는 모습, 하지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그럴만한 용기나 의지나 구체적인 방법조차 없으니 가장 쉽지만 무겁게 떠올릴 수 있는 죽음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그걸 영웅적으로 포장한다. 그리고 울며 감동하는 사람들의 반응을 예상하고 우월감을 느낀다. 또는 후회나 죄책감을 주어 복수심을 해소한다. 또는 희생을 기피하는 겁쟁이를 매도한다. 또는 동정을 얻는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의 나였다. 이건 나 자신만의 문제는 아니다. 할리우드 영화 감독은 희생하는 주인공의 친구를 길게 클로즈업 하고 웅장한 음악을 깔아준다. 그리고 관객의 열광을 바란다. 실제로 관객은 열광한다. 그런 뒤틀린 욕구가 저마다의 가슴속에 점점 작아지는 형태로 붙어있는 건 아닐까.



미안한 말이지만 저 글귀를 보고 얼마 전 '현자의 손자' 를 읽다가 자살한 소년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원인은 단순 수치심뿐이냐. 극에 달했을지라도, 순수한 수치심만으로 인간이 자살을 선택할 수 있을까. 여러가지 감정이 있었을 것이다. 분노, 복수심 같은 증오들. 사람을 차가운 죽음으로 이끄는 것이 뜨거운 격정이라는 사실은 모순적이다. 자살은 삶에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죽음과 마주하는 일이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고 하잖는가. 삶에서 도망친 이들은 스스로 뛰어든 죽음의 직전에 삶을 바란다. 삶에서 도망친 게지 죽음을 바란 게 아니라 그렇다. 내가 느낀 미성숙함은 이것이다. 소년은 자신을 비웃은 이들에게 자살로 보답하려 했다. 억측일까? 불쌍한 죽음을 동정하기 위해 성역화 하려는 시도야말로 억지다.

피해자의 죽음은 가해자에게 죄책감, 사회적 타격을 준다. 힘없는 소년이 선택한 방식은 그것이다. 자신의 죽음으로 타인의 삶에 영향하길 바랬으니, 결국 소년은 삶을 바랐다. 소년에게 죽음은 그저 수단이었으니, 직전까지 그런 사실은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이런 생각들을 속으로 펼치고 결론을 내렸다. 소년은 미성숙했다. 중학생 중에 성숙하지 않은 이가 있을까. 공개적으로 망신을 준 교사가 그것을 자극하고, 종국에 충동질했다. 그리고 그 기저엔 미성숙함이 있었다. 미성숙했기에 억누르지 못한 게 아니라 그 미성숙함이야말로 소년을 죽게 했다.


불쌍한 소년이 호밀밭의 파수꾼을 한 번 읽었으면 자살하기 전에 고민해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