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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은 구석기 시대에서 시작해 근대까지 미를 보는 시각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여준다. 그 여정에는 동반자가 함께한다. 모리츠 에셔라는 판화가다. 처음엔 저자의 취향으로 에셔의 작품을 넣었나 싶었다. 그런데 책의 진도를 뺄수록 에셔의 저작이 <미학 오디세이>를 관통하고 상징하는 하나의 ‘표상’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미학이라는 어려운 소재이자 학문에 에셔의 작품을 배치함으로써 미학은 이 책에서 하나의 훌륭한 서사가 된다. 이 책이 칭찬 받는 이유중 하나는 아마 배치의 탁월함과 그 배치로 파생되는 드라마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을 칭찬하고 싶은 것 중 또 하나는 가상의 ‘대화’다. 대화의 주인공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인데, 책의 중반부가 시작될 무렵부터 등장해 후반부까지 이 책의 중심 축을 담당한다. 다소 늘어질수 있는 미의 역사는 이 둘이 대화로써 한층 생동감을 띠게된다. 진중권이 학자가 아닌 작가로서의 탁월함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플라톤 : 미의 이데아가 현상 세계에 어떤 모습으로 나오는줄 앎?

아리스토텔레스 : 글쎄요?

플라톤 : 정확한 척도와 비례임. 기하학적인 것.

아리스토텔레스 : 기하학적으로 너무 정확한 형태는 아름답지 않다던데요. 가령 프락시텔레스는 폴리클레이토스의 엄격한 인체 비례에 약간의 일탈을 줌으로써 비로소 ‘미의 양식’을 낳지 않았습니까?

플라톤 : 자네 의견에는 찬성할 수 없네. ‘실제로 아름다운 것’하고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지. 알겠나?

아리스토텔레스 : 하지만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이 무슨 소용이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대화를 쉽게 풀이하면, 인지와 감각 혹은 객관과 주관의 논쟁이라 할 수 있다. 플라톤은 순수한 기하학형태가 미라고 생각한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감각을 표현한 것이 미라고 생각했다. 이 부분의 논의는 단순히 한 문장으로 풀어내기에는 복잡한 문제라, 책 속의 둘의 대화를 직접 엿들어 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럼에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중 누가 이겼냐 라고 초딩스러운 질문을 한다면, 아리스토텔레스가 판정승했다고 볼수 있다. 풀이하자면 미는 객관이 아닌 주관의 영역에 가깝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완벽히 주관의 영역이라고 할수는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평가하는 작품은 분명히 존재한다.아름답다고 공통적으로 평가내린 것은 객관적 요소로써의 미가 그 작품에 존재한다 얘기이다. 결국 미는 객관과 주관의 요소가 공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결론이 한 문장으로 났지만, 이 또한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1권의 마지막에 실린 진중권과 유클리드의 상상 대화를 엿들어 보자.


나 : 미는 혹시 주관과 객관 모두에 달려 있는 게 아닐까요? 박수를 치고 나서, “이 소리가 왼손에서 난 소린고, 오른손에서 난 소린고?”하고 물었다는 한 고승의 말처럼

유클리드 : 말하자면 주관과 객관이 만나서 생긴 현상이란 얘기군.

나 : 잘하면 고전주의에서 말하는 미의 ‘규준과’ 현대 예술이 누리는 창작의 ‘자유’를 동시에 살릴 수 있지 않을까요?

유클리드 :고전주의적 ‘획일성’에 현대 예술의 ‘미적 무정부 상태”까지 겹치는 정반대 경우도 생각해야지.

나 : 그런가요?

유클리드 : 자네와 같은 생각을 ‘관계주의’라 한다네. 물론 손뼉 소리는 왼손에서 나는 것도 아니고 오른손에서 나는 것도 아냐. 그건 두 손이 만나서 일으키는 현상이지. 하지만 이 세상에 주관도 아니고 객관도 아닌 게 있겠나? 세계 = 주관 + 객관, 이항하면 세계 - 주관 - 객관 = 0 ~주관∩~객관 = { }

무슨 소린지 알겠나?

나 : …


이쯤 되면 미술이 객관인지 주관인지 헷갈린다. 또한 주관과 객관의 양 극단에서 논쟁을 하면 무한루프에 빠지게 된다. 객관적으로 안 예쁜게 미냐 -> 미는 객관적으로 측정 불가 주관의 영역 -> 그럼 객관적으로 안예쁜게 미냐 -> 미는 객관적으로 측정 불가 주관의 영역 …(무한반복)

위의 무한루프를 진중권은 에셔의 작품인 <그리는 손>으로 대치하며 1권은 끝난다. 2권에서는 좀더 철학적 논의를 진행한다고 한다. 당장 2권을 읽으러 가야겠다. 책은 물론 추천드린다.


여담으로 에셔의 그리는 손은 놀란의 영화<인셉션>에 영감을 줬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