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는 차우셰스쿠와 드라큘라로도 유명하지만, 예로부터 모더니스트를 수출하는 강국으로도 유명했다.
다다와 초현실주의에서 크게 활약한 트리스탕 차라나
와! 차라!! 파피루스! 샌즈 PPAP~
부조리극의 한 축을 형성하는 외젠 이오네스코 또한 루마니아 출신이다.
그럼 대체 이러한 루마니아 모더니즘의 정신의 근본은 어디인가?
바로 1883년, 루마니아에서 태어난 <우르무즈>가 그 시초다.
물론 <우르무즈>는 필명이지만, 본명이 루마니아어로 어떻게 발음되는지 찾기도 귀찮고, 중요하지도 않으므로 생략한다----
사실 이번 편은 정말 짧고 굵게 가야한다. 이야기할 게 별로 없으니까.
우르무즈는 루마니아에서 자라나, 변호사 일 등을 하면서 간간히 당시 루마니아 문학 서클에 참여하면서 단편들을 짬짬히 발표한다.
미래주의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지며, 본업이 있으므로, 전문적인 작가는 아니었다.
그러다가, 그는 1923년, 뜬금없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의 나이, 40세였다.
여러 이유 등이 추측되지만, 명확한 이유는 없다.
거기에, 취미로 글을 쓰는 것에 가까웠기에, 그가 쓴 소설 전집은 오늘날에도 40여 쪽에 불과하고, 십여 편의 짧은 엽편들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는 루마니아의 카프카, 혹은 알프레드 쟈리에 비유될 정도로, 혁신적이었고, 기묘했고, 그로테스크했다.
그와 친분이 있던 자들이 우르무즈의 작품을 모아서 알리기 시작했고,
앞서 언급된 트리스탕 차라도 그의 작품들을 접하면서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유력하게 추정되고,
이오네스코 또한 우르무즈를 널리 츄라이 츄라이! 하면서 그의 영향을 누구보다도 강력하게 받았다.
물론 오늘날엔 이 짧고, 굵게 간 기묘하고 비밀많은 작가에 대한 많은 논쟁이 있다.
그가 루마니아 출신의 선구적인 모더니스트로 추앙되는 것엔 그의 작품을 출간한 동료들의 신격화 때문이지, 실제론 오히려 전통적인 작가에 가깝다는 비판 등
오늘날까지 이 <우르무즈>라는 기묘한 이름의 작가를 어떻게 대해야할지 의문을 낳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가 트리스탕 차라나 이오네스코 등 수많은 루마니아 산 작가들, 더 나아가 모더니즘과 세계문학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므로 이 짧고 굵은 그의 전집들이 영어, 독어, 이태리어 등으로 소개되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아직 한국어역은 없지만, 언젠가는 그래도 나오지 않을까? 존버 가자.
그리고 기다리면서 이오네스코 같은 루마니아 출신 모더니스트를 읽자.
"방 중앙엔 미적분과 확률론으로 이루어진 다리 없는 탁자가 있는데 그 위엔 '물자체'의 영원한 정수를 담은 화분과 마늘 한 쪽, 손에 구문론과 구리 20개의 끝을 쥐고 있는 트란실바니아 신부 형상을 한 금도금 조각상이 놓여있었다... 나머지는 중요치 않다."
-우르무즈,<굴뚝과 스타메이트>中
"푸크는 사실 어머니로부터 나오지 않았다..태초에, 그가 삶을 시작했을 때엔 그는 보여지지도 않았다 - 그는 그저 들렸을 뿐이었다. 태어날 때 푸크는 그의 할머니의 귀 한 쪽에서 나타나는 것을 선호했는데 이는 그의 어머니에겐 음악적 감각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르무즈,<푸크시아드>中
<이스마일과 투르나비투>
-우루무즈-
이스마일은 눈과 구레나룻, 그리고 가운으로 구성되어있는데, 요즘에는 구하기 무척이나 힘들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식물원에서나 볼 수 있었지만, 최근엔 화학적으로 합성할 수 있게 되었으니, 우리는 현대 과학의 진보에 감사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이스마일은 결코 혼자 걷지 않는다. 그것이 새벽 5시 반 즈음에 거리에서 오소리 무리와 어울리며 지그재그로 돌아다니는 걸 흔히 볼 수 있는데, 이스마일이 배에서 쓰는 밧줄로 오소리를 잡아 귀를 찢곤 레몬주스로 조금 간을 쳐서 산 채로 저녁에 오소리 생고기를 먹기 때문이다… 이스마일은 도브루자의 한 구덩이 밑바닥에 놓인 모판에서 다양한 오소리들을 재배하는데, 오소리가 16살이 되어 균형 잡힌 곡선형 몸매가 완성될 때 즈음, 법적책임을 물지 않을 그가 양심의 가책 없이 하나하나를 범하기 위해서였다.
1년 중 대부분의 이스마일의 행방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없다. 그가 자신이 좋아하는 아버지의 저택 다락에 위치한 단지 안에서 지낸다고 추측할 뿐이다 – 그의 아버지는 잔가지 울타리로 거푸집으로 된 코를 고정한 매력적인 노신사였다. 이러한 행동은 그가 벌침과 선거의 부패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은둔하기 위해서라고 여겨진다. 그렇지만 이스마일은 매해 3개월 정도씩은 열정적인 부모의 사랑으로부터 도망치려고 하는데, 겨울 동안 그가 제일 좋아하는 자카드-침대보로 만들고 커다란 벽돌 꽃으로 장식한 자선 행사 가운을 입곤, 벽토 치장을 축하하기 위해 열리는 수많은 파티 속에서 들보에 매달리기 위해서다 ― 다른 모두는 그저 고용주로부터 보상을 받고, 노동자들 사이에 분배되기를 바랄 뿐이지만… 이게 그가 생각하는 사회 정의 문제에 중요하게 기여하는 방법이었다. 이스마일은 인터뷰를 허락하기도 했지만, 오소리 모판이 위치한 언덕 꼭대기에서에야 가능했다. 수백 명의 구직자와 보조금 그리고 장작이 거대한 등갓 아래 모여들면, 각자 달걀 4개위에 앉아있으면, 그들은 쓰레기 트럭에 실려선 이스마일의 거주지인 언덕 꼭대기로 최대 속도로 이동되었는데, 이를 살라미처럼 따라다니는 그의 친구 중 하나가 담당했다. 투르나비투라 불리는 그 기이한 인물은 올라가는 동안, 도전자들에게 연애편지를 써달라고 끝없이 조르는 역겨운 버릇이 있었는데, 이를 거절하면 넘어뜨릴 거라고 위협하곤 했다.
투르나비투는 오랫동안 그저 코바치와 가브로베니 거리들에 위치한 수많은 더러운 그리스식 카페의 전기 환풍기에 불과했다. 억지로 숨을 쉬어야하는 그 악취를 견딜 수 없게 되자 투르나비투는 정계에 입문하여 오랫동안 ‘라두 보다’ 소방청 부엌에서 전기 환풍기로 일했다.
그는 이스마일을 무도회에서 만났다. 그가 처한 불행을 설명하고, 자신의 차례를 기다린 끝에 투르나비투는 이스마일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는데 전적으로 이스마일의 자선을 베푸는 성향 때문이었다. 그는 오소리들의 시종으로서 일할 수 있는 권리를 일일 50 센트의 봉급과 식권 몇 장과 바꾸기로 약속받았다: 또한 그의 주인을 매일 거리에서 만나 그를 보지 못한 척 오소리의 꼬리를 밟아선 방해한 걸 수없이 사과하고, 유채씨유로 털을 촉촉이 적시며 이스마일의 가운에 경의를 표하고 그의 번영과 행복을 빌 것도 약속했다...
그의 좋은 친구와 보호자를 영합하려는 똑같은 목적 아래 투르나비투는 일 년에 한 번 용기 속을 찾았는데, 그곳이 가스로 가득 차있을 때면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곤 했다, 대개는 마조르카와 미노르카로 향했다. 이러한 여행에서 그는 샤워를 하거나 해군성 문손잡이에 도마뱀 걸어놓기, 고국으로 돌아오는 걸 하곤 했다.
이러한 여행 중 투르나비투는 끔찍한 비충혈에 걸렸는데, 그가 돌아왔을 때엔 모든 오소리들에게 옮기고 말았고, 오소리들의 끝없는 훌쩍거림 덕분에 이스마일은 더 이상 그들과 함께할 수 없었다. 투르나비투는 곧바로 해고되었다.
무척이나 감정적이라 모욕을 견딜 수 없었던 투르나비투는 어금니 4개를 가까스로 뽑아낸 직후에 바로 사악한 자살 계획에 몰두하게 된다…
자신을 죽이기 전에, 그는 이스마일에게 끔직한 복수를 했다. 그는 이스마일의 모든 가운을 훔쳐선 빈 터에 모아두곤 그의 주인으로부터 뿜어져나오는 가스를 사용하여 불을 붙였다. 그리하여 눈과 구레나룻만 남게되는 안타까운 상황에 처했을 때 이스마일은 가까스로 자신을 오소리 모판으로 끌고 갈 힘만 남았다. 그곳에서 그는 노쇠해졌고, 오늘날까지 그렇게 이스마일은 남아있다.
모더니스트의 기묘한 모험
- 20세기 최고 시인 예이츠의 환상록과 자서전 읽으쉴?
- <율리시스>는 어떻게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책이 되었는가?
- 위대한 피츠제럴드 (1), (2)
- 토끼공듀의 삶
- 만델스탐의 노래
- 악어들의 거리
- 독일인이 오리라
모더니스트의 선조들
제목은 루리웹 루마니아 사건 패러디한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