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적 행위는 경제적 가치와 관련있다. 이를 부정 할수 없다. 경제적 관점에서 순문학과 라노벨(저급문화)의 차이는 발견할 수 없다. 따라서 둘의 차이점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목적인가?"에 대해 물어야 한다. 목적에 대한 물음은 곧 가치에 대한 물음이다. 우리가 무엇을 목적으로 하느냐에 따라서 가치가 달라진다. 우리가 만약 망망대해에서 홀로 표류하고 있을 때 우리는 오직 생존만을 '목적'으로 한다. 이 상황에서 돈다발은 우리에게 '가치'를 가지기 힘들 것이다.
따라서 문학의 목적은 무엇인가? 문학은 무엇을 가치로 두고 있는가? 문학은 인간 삶을 반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둔다. 문학은 인간 삶을 벗어날 수 없다. 모든 문학은 인간의 삶에 대한 것이다. 일리아스부터 채식주의자까지 동서고금 어디서든 문학은 인간 삶을 보여주고자 한다. 또한 단지 인간 삶을 보여주는 것을 통해 쾌락을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인간 삶을 반성하고자 한다. 인간 삶을 다시 보는 것, 인간 삶에 익숙해진 것을 다시 낯설게 하는 것(우리는 한 번도 삶을 살아보지 않았던 적이 없다)이 문학의 목적이며 동시에 가치이다.
그러나 라노벨은 무엇이 목적이며 무엇이 가치인가? 그것은 휘발적 쾌락이 목적이요, 교화되지 못하고 교육되지 못한 무목적적인, 맹목적 쾌락이 곧 가치이다. 결정적으로 그들은 쾌락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무엇을 위한 쾌락인가?"라는 질문에 쉽사리 대답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은 결국 "행복을 위한 쾌락이요, 개인의 취향이요, 쾌락은 개개인마다 차이가 있다!" 라고 주장하며 결국 회의론적 논변으로 순간적 상황을 무마하고자 할 뿐이다. 그들은 일시적 쾌락이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하는 것을 스스로 알면서도 부정한다. 개인의 취향이라며 도덕위에서 개인의 자유에 호소한다. 하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쾌락은 도덕위에서 토대를 세우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시간이 지나면 붕괴할 모순 위에 자리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