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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의 인간이 오로지 개인의 의식만으로 정의될거라 생각하는 것은 시대에 대한 몰이해라고도 볼 수 있다. 개인의 자아는 이미 주변부에 잠식 당했고 이로 인해 내면의 흐름이 주체성을 대표하지 못하게 된 것이야말로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한 개인의 내면 만을 다루는 소설을 읽고 마치 삶의 비밀을 깨달은 것 마냥 행동하는 것은 사춘기 중학생의 감정적 고취와 동일해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런 내면 소설들이 현실과 아예 무관계하다고 단언해버리는 것 또한 이치에 어긋나 보이기도 하다. 그저 의식 속으로 침잠하는 소설화된 개인의 고백록임에도 현실의 인간이 동질성을 느낀다면, 그것은 그저 어쩌다 마주치게 된 서술 상의 우연인가 아니면 내면의 주체성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희망인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흔히 독갤을 대표하는 찐따 소설로 유명하다. 소설 속 주인공인 지하 인간의 삶을 페북에 올라오는 찐따의 특징 정리 등과 비교해보자. 정확히 일치한다. 이런 면 덕분에 4대 찐따 소설 중 나머지 셋이 근거없는 사춘기의 어린 치기, 인싸의 이유없는 기만적 방황, 예술뽕에 미친 또다른 금수저의 예쁜 문장집 정도로 폄하받을 때도 독갤러들의 무한한 지지를 얻으며 찐따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최고의 소설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방구석에 쳐박려 스스로는 고귀하다 위로하며 각종 개똥철학을 읊거나 머릿속으로만 시뮬레이션 돌리며 실행도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어처구니 없어 하나 평소에 많이 보던 누군가가 떠올라 괴로워 하기도 한다. 또, 작은 우연 하나로 벌어진 일에 기뻐하며 승리했다고 자신만만해하는 부분에서도 익숙한 누군가를 떠올리며 책을 덮고 작가의 예견력에 소름돋아 하기도 한다. 적어도 이 소설을 읽고 한 군데서도 감흥을 느끼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니라고? 인싸새끼들 안꺼지냐 씨발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들어와.

그러나 한편으로는 소설 속 주인공의 과도한 행동이 그다지 와닿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 지하수기의 주인공은 찐따가 아니라 정신병 환자로 느껴지기도 한다. 찐따였다면 아예 시도도 안했을 일들, 동창생 파티에 굳이 참가하거나 창녀 상대로 자기 개똥철학을 잔뜩 늘어놓거나 등등을 주인공은 비록 의도치 않았으나 행하고 후회하고 뒷수습하려 한다. 도끼 소설이 가지는 특유의 감정적이고 과장적인 서술로 인해 벌어지는 일이 아닌가 싶다.

사실 앞서 언급했던 대로 나는 이 소설이 찐따들의 심리를 정확히 파악한 위대한 경전인지, 그저 감정 폭발의 우연으로 발생한 일치인지 파악이 되지 않는다. 도끼 소설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지만 도끼 소설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은 충분히 많기 때문이다. 아니 이것도 맞는지 모르겠다. 내가 보기에 인류의 태반은 아무 생각없이 사는걸로 보이는데.

결국 소설을 읽고 확실해진건 스스로가 지하인간의 부류라는 것 말고는 없다. 하기에 이런 류의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찾아서 읽지도 않았겠지만. 아니라고? 씨발 인싸 새끼들 아직도 안 꺼졌냐?

뭐 독기넘치는 누군가의 내면 속으로 침잠하고 싶다면 한 번 쯤은 펼쳐보면 괜찮겠다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소설 읽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지하수기》를 다시 펼치지는 않을 듯 하다. 나에게 도끼의 감정 과잉 상태는 친근함과 거부감이 공존하는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