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viewimage.php?id=3fb8d122ecdc3f&no=24b0d769e1d32ca73ded85fa11d028314c091b806630224048cd6cbd1051c69e7a18db57308a34db6d3af6ead1a2a3af198527652f2b85beafada58b5a6ff2a6fdbf


 

이 책은 이번년도 7월에 산 책인데, 이제서야 시간이 나서 다 읽게 된 책이다.


 

먼저 책 자체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작가가 죽고 난 뒤 초고와 여러 노트들로 이뤄진 책이어서 그런가 글의 문장이 매끄럽진 않았다. 또한 문장순서 및 챕터 순서에 아쉬움이 있다.


 

또한 책의 내용 자체가 생소한 내용들로 가득 차 있다. 일반적으로 음악에 관한 책, 혹은 모짜르트에 대해 얘기하는 책, 이러면 다들 전기, 혹은 문화적인 내용들을 생각하지, 이 책처럼 사회학적 고찰은 잘 생각하지 않는다. 거기다 사회학이란 분야가 상당히 생소한 분야여서 읽기가 살짝 힘들었다. 거기다가 작가는 처음부터 고찰을 쓰질 않나, 알고 보면 간단한 말인 데도 굳이 어렵게 꼬아서 얘기를 한다.


 

그래서 이 책은 뒤에서부터 읽어야 한다. 편집자 노트(재밌는 점은 편집자도 작가가 글을 못쓰는 것을 우회적으로 인정하는 문장이 있다.) , 역자노트, 작가가 남긴 초고들을 먼저 읽고, 본문을 읽기 시작하면 굉장히 수월히 읽을 수 있다.


 

책에 대해서 여러 불평들을 늘여 놓았으니 이제 책의 본문으로 넘어가자


 


 

작가는 사회학 학자답게 이 책에서 자신이 다루는 모든 요소들을 비교하고 정리하였는데, 그중 가장 비중있게 다룬 세가지를 정리해보도록 하겠다.


 

1. 일반시민계급인 모짜르트와 귀족계급과의 마찰.


 

2. 모짜르트의 천재성은 사회와 연관되어 있는가 동떨어져 있는가.


 

3. 수공업 예술과 예술가적 예술.


 


 

먼저 계급 간의 마찰이다.


 

모짜르트는 자신이 일반 시민계급임을 확실히 인지한 듯하다. 그는 교황에게서 기사작위를 받았지만 단 한번도 기사라는 점을 내세운 적이 없었으며(그보다 낮은 기사작위를 받은 글루크의 경우 자신을 기사 글루크라 칭하고 다녔다) 그 시대의 교양이라 할 수 있는 궁정적 세련미를 익히지 않고, 골수 시민적 면모를 지속적으로 유지하였다.


 

또한 계급간 마찰은 그가 궁정일을 못 견뎌 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지금 보기엔 궁정악사란 타이틀이 굉장히 낭만적으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우린 그 시대 사람의 눈길로 이 타이틀을 바라봐야 한다.

18세기는 절대왕정이 끝나고 프랑스 혁명의 시대다. 하지만 독일은 전혀 그러한 영향을 받지 못했다.(바그너를 생각하자) 재밌는 점은 독일이 프랑스처럼 혁명을 하지 않았기에 궁정의 취향을 맞춰야 했기에 궁정악법에 따라 여러 음악들이 생겨났으며, 지속적으로 음악은 발전할 수 있게 됐단 점이다. 즉 18세기 이전 17세기의 절대왕정 수준의 궁중생활을 모짜르트는 견뎌야 했단 소리다.


 

모짜르트가 가지고 있던 직위인 궁정악사는 말 그대로 궁정에 있는 악사다. 즉 궁정내의 제후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제후가 원하는 음악을 써줘야 한다. 즉 하인이나 다름이 없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주인이 부를 때마다 있어야 했으며, 상시로 궁중에 거주해야 했다. 모짜르트의 고용주였던 콜로레도 백작은 오죽하면 모짜르트에게 전혀 성실치 못했다고 온갖 욕설을 퍼붓기까지 했다.


 

그리고 온갖 아부에 능숙해야 했다. 그들의 제후들은 궁정악사보다 자신의 음악적 소양이 대단하다 여기길 원했으며, 궁정악사들은 이를 맞춰줘야 했는데 이는 지금 직장인들이 사장님께 아부 떠는 건 귀엽게 만들 수준이었다.

또한 궁정 귀족들이 자신에게 대하는 태도들에 대한 분노는 쉽게 가라앉히기 힘들었다. 이는 오페라를 통해서 유난히 드러나는데, 후궁으로부터의 편지, 피가로의 결혼은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그는 죽을 때까지 이러한 계급 간의 마찰의 끈을 놓지 않았다.


 


 

두번째로 모짜르트의 천재성은 사회와 연관되어 있는가 동떨어져 있는가, 이다.


 

우리는 흔히 천재들을 얘기할 때 그들의 재능은 하늘에서 떨어졌기에 사회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오히려 사회에 비해서 몇배나 대단하다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의 재능이 만들어져 가는 과정에 대해선 다들 관심이 없다. 작가는 이 지점에 주목하였다.


 

물론 모짜르트는 신동이 맞다. 전 유럽을 돌아다니면서 퍼포먼스를 펼쳤으며, 상당한 돈을 벌었고, 교황에게 기사작위를 받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다들 간과하는 지점이 있다. 아버지인 레오폴트 모짜르트의 헌신적인 교욱이다. 그는 자신이 받은 교육들을 아들에게 해주었으며, 그를 자상하면서도 엄격하게 가르쳤고, 이는 편지로도 드러난다.

또한 사회적인 부분에서도 그러하다. 모짜르트가 잘츠부르크 궁정에서 나온 이후, 빈에서 그는 궁정양식의 음악에 얽메이지 않고 자유로운 형식의 음악들을 쓰기 시작한다. 피아노 협주곡 20번(K.466)이나 후기 3대 교향곡이라 부르는 39, 40, 41번(K.543, 550, 551)이 대표적이다.(아르농쿠르는 이 세개의 교향곡을 기악적 오라토리오라 칭하기도 헀다.)

그리고 오페라에도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었다. 기존의 오페라는 성악이 극을 지배하였다. . 하지만 모짜르트는 성악과 기악을 대화속에 엮는 것을 시도한 것이다. 이러한 예들을 통해 작가는 만일 모짜르트가 계속 잘츠부르크에 있었다면 그저 궁중악법에 얽매여서 이런 훌륭한 작품 및 개혁들을 하지 못했을 것이란 가정을 하면서, 한가지 결론을 내린다.


 

예술적 천재들이 성장하는 과정이 사회상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말은 설득력이 없다. 또한 천재성이 동떨어져 있다면 레오폴드 모짜르트의 헌신을 부정하는 것이며, 또한 궁정양식에 맞선 모짜르트의 창조적 결과물들의 차이점을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라는 말을 한다.


 

세번째로 수공업 예술과 예술가적 예술이다.


 

수공업적 예술과 예술가적 예술의 차이는 간단히 말해서 누가 주도적 역할을 가졌냐를 말한다.


 

수공업적 예술에선 주문자의 위치가 예술가의 창작적 욕구보다 앞섬을 말한다. 그렇기에 창작자는 주문자의 양식에 맞춰서 물품 즉 음악을 만들어내야 했다. 아이러니한 점은(앞에선 언급했듯) 독일은 프랑스와 다르게 혁명의 열기가 전혀 없었기에 궁중에 소속된 악사들은 궁중양식에 맞춰서 수준 높은 음악들을 그려낼 수 있었다.

즉 예술의 향유를 위해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 실용적인 예술(미사, 식사와 춤을 위한 음악, 축제를 위한 음악 등등 )을 위해 음악을 만들었다.


 

예술가적 예술은 예술가의 창작적 욕구가 추문자의 위치보다 높음을 말한다.

예술가는 자신의 재능적 결과물을 이용해 대중들이 원하는 결과물이 아닌, 자신이 만들어낸 결과물로 청중을 설득시키므로서 예술적 권력의 균형은 생산자쪽으로 기울어지며, 사회의 기호로부터 자유로워질 뿐만이 아니라 청중들의 태도도 변화되기 시작한다.


 

수공업적 에술의 시기엔 청중들이 특정한 목적에 의해 에술들이 만들어 졌다면, 예술가적 예술의 시기에는 개별적으로 이뤄진 청중들이 예술작품을 보거나 들으면서(미술의 경우는 미술관을 의미하며 음악의 경우는 베토벤의 아카데미가 대표적인 예) 개인적인 의견을 자문하거나 나누기도 했다.

그러면서 예술가 본인의 주관적 의견이 예술작품에 유입되며, 관객들도 자신의 감정을 음악에 이입할 수 있게 되었고, 예술작품에 공감하기까지 하였다. 이때부터 개별 예술가 혹은 예술가 집단이 예술적 취향을 주도하게 되어진다.


 


 

이처럼 수공업적 예술과 예술가적 예술은 굉장한 차이점이 있다. 수공업적 예술을 왕정시기, 예술가적 예술은 민주화 시기라 부를 수 있을 정도다.


 


 

책에서 말하는 것 중 중요하다 생각하는 세가지에 대해서 말을 했으니 이제 글을 마무리 짓고자 한다.


 


 

이 책은 작가가 죽고 난 뒤에 나온 책이다. 그러다보니 한계점이 명확하다. 작가의 초고에 맞춰서 책이 나와야 하며, 편집도 함부로 해선 안되기에 글의 순서를 과감히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다. 또한 편집자가 함부로 글을 건드려서도 안되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글이 난잡하며 쓰잘대기 없이 정리 안된 문장과 현란한 수사어로 독자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경우도 있다. 또한 글의 순서가 너무나도 아쉽다. 98쪽부터는 일반 모짜르트 전기처럼 글이 진행된다. 이 글을 앞으로 놓고 뒤에다가 앞의 부분을 놓으면 좀더 괜찮았을 것 같았다. 혹은 전기 중간중간 이러한 고찰들을 넣는 게 좋았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위에서 말한 어려움들을 감안해도 모짜르트를 사회적으로 정리한 이 책은 확실히 가치가 있다. 중요한 것은 읽으면서 재밌었다. 그리고 글이 난잡해서 읽기가 어렵다면 해답은 간단하다. 두 번 읽으면 된다. 나도 두 번 읽고 이 글을 쓴 것이다.


 

모짜르트에 대해 사회적으로 알고 싶거나 사회학자가 보는 모짜르트에 대한 관점이 궁금하다면 이 책만큼 좋은 책이 없을 것이다.


 

여러분도 한번 읽어보시길 바라는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