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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데라가 얘기하는 19세기 문학들은 저 글을 참조하고


암튼 19세기 소설을 크게 보면 진짜 본질을 담은 작가의 핵심이 속하는 '테마' 부분들과 그 테마들을 연결하는 '다리' 부분들로 구성된다고 쿤데라는 주장함.

다만 그 다리들을 최대한 튼튼하고 명확하게 만들수록 테마 간의 연결은 약화되고 결국 본질에 대한 목표는 실종된다는거지

그래서 이후 소설들은 다리 부분들을 약화시키며 테마 자체 만 제시하는 쪽으로 흘러갔고

예를 들면 성에서 별다른 묘사없이 황당한 환상적인 사건들의 연속을 나열한다던가 참존가에서 인물 설명없이 단어 몇 개로 퉁치는 모습이라던가 등등

그러다 하루키가 떠오르게 됐는데(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랑 노르웨이의 숲 두 권만 읽어봐서 정확하진 않을 수도 있지만) 하루키의 목표는 테마들 없이 다리만을 건설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음.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서 진짜 맥락없이 글만 나열되는 모습이나 특히 노르웨이의 숲에서 섹스, 보통 섹스가 이전 소설들에서는 등장인물들 간의 관계 형성이나 갈등의 소재가 되는 반면에 하루키 소설에서는 걍 섹스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고 공허함만 남게 되는 그런 거

그런 의미에서 하루키가 누구도 써보지 않았던 소설을 쓰고 싶었다는 말이 이해가 되기도 함. 아무리 그래도 테마 없이 던진 채로 다리만 쓴 소설가는 없었으니까. 다리 자체가 테마가 되는거지.

오에가 하루키 깐 이유도 이해가 가고. 적어도 오에는 내가 알기로는 테마를 중시하는 소설가거든


암튼 독갤러들이 하루키 소설 읽고 부정적이거나 까는 이유인 분위기만 남은 공허함은 그런거 아닐까? 인싸들이 하루키 좋아하는 이유도 이것 때문이고.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음.





그보다 슬슬 파우스트 박사 끝나간다. 토마스만특) 끝에 100~200 페이지 남기고 ㅈㄴ 재밌어짐. 그걸 위해 참는 700페이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