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유에서도 <전쟁과 평화>가 번역되었으니까
아직은 한국에 소개되지 않은 20세기의 <전쟁과 평화>와 그 작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1905년, 제정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서 유대인 가정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난 바실리 그로스만은 작가이자 종군기자였다.
아쉽게도 모더니즘의 시대 속에서 딱히 바실리 그로스만을 모더니스트라고 칭하기는 조금 어렵지만
모더니스트가 아니더라도, 모더니스트처럼 다루면 되지 않을까?
짧게 갑시다.
젊은 그로스만은 단편들을 발표하며 작가로서 준비를 시작했는데, 이 중 몇몇 단편은 고리키나 불가코프의 관심을 얻는 중 촉망받는 작가의 길이 될 것만 같았다.
그의 장편은 스탈린상의 후보에도 오르는 등 촉망받을 듯 보였지만, 소설이 반동에 대해 연민을 표한다는 이유로, 스탈린이 직접 후보에서 제외한다.
이것만 봐도 이제부터 그로스만의 삶은 앞으로 단단히 꼬일 예정이었다.
그가 재혼을 했을 때 스탈린의 꼬봉 예조프의 지휘 아래 대숙청 사업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재혼했던 아내의 전남편이 숙청된다.
이에 그로스만은 자신의 2번째 아내와 아내의 전남편 사이의 아이들의 후견인을 자처하며, 예조프에게 직접 편지를 써서, '내' 아내지 숙청된 반동의 아내가 아니라며 항변하였고, 용케도 이 시기를 무사히 넘긴다.
하지만 이러한 일화들을 봐도, 바실리 그로스만은 많은 소비에트의 숙청당한 작가들이 그러하듯 반골기질이 농후하였다.
그는 2차대전 시기 종군기자로서 붉은 군대와 함께 종군하며 전쟁의 참상을 목격하였고, 이에 관한 거대한 작품을 구상하기 시작한다.
이러는 가운데에서도 소비에트 내에서 홀로크스트에 대한 조사를 하는 <검은 책>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소비에트 당국의 심기를 건들기 시작했고, 이는 끝내 그의 소설 <삶과 운명>이 완성되었을 때 터지고 만다.
바실리 그로스만의 오늘날 20세기의 <전쟁과 평화>라 불리는 이 거대한 작품, <삶과 운명>
1부 <스탈린그라드>와 2부 <삶과 운명> 중 2부 <삶과 운명>이 단독적으로 더 많이 읽히지만, 스탈린그라드 전투 자체와 2차 대전 중 여러 학살과 만행들의 기록, 거기에 스탈린 치하의 소비에트와 소비에트 자체에 대한 비판, 거기에 더하여 그럼에도 삶과 운명은 계속된다는 이 거대한 이야기.
바실리 그로스만은 종군기자로서 자신이 본 모든 것, 그리고 소비에트에 사는 유대인으로서 자신이 겪은 모든 것을 담아내는 걸작을 자랑스럽게 완성하였고, 때마침 스탈린이 죽고, 흐루시초프의 지배가 시작되었기에 그는 출판 허가를 위해 당국에 이 원고를 제출한다.
물론 그대로 바실리 그로스만의 집에 KGB 요원들이 들이닥쳤고, 그의 <삶과 운명>의 원고는 물론, 집필하는데 사용했던 타자기 리본까지 모조리 압수하였다.
소비에트는 반동 바실리 그로스만의 모든 작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소비에트 당국은 바실리 그로스만이 죽은지 2,300년이 지나도 그의 작품은 세상에 보일 수 없다고 선언하였다.
그로스만이 굴라그에 가진 않았으나 그는 없는 사람처럼 취급당하였다. 그로스만은 흐루시초프에게 직접 편지를 쓰며 자신의 원고를 돌려주고, 또 출판을 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그의 <삶과 운면>은 물론, 그의 마지막 소설 <만물은 흐른다>까지, 어떠한 것도 소비에트 당국에서 출간되는 일은 없었다.
실의에 빠진 그로스만은 <삶과 운명>의 원고가 압수된지 5년 후, 1964년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하지만 죽어가던 그로스만조차 자신의 <삶과 운명>의 원고의 복사본이 비밀리에 소비에트 밖으로 유출되었다는 것은 알지 못하였다.
그로스만의 완성된 원고를 본 누군가가 미리 원고를 복사하여 숨겨두었고, 끝내 소련 밖으로 반출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렇게 1980년, 스위스에서 바실리 그로스만의 <삶과 운명>은 출간되었고, 끝내 소비에트 당국에도 출간되었으며 오늘날까지도 20세기의 <전쟁과 평화>로 남으며 21세기에 들어선 라디오 드라마나 다큐멘터리 드라마 등으로 제작되며, 300년이 지나도 사람들이 알지 못할 것이란 소비에트 당국의 말과 달리, 많은 이들이 그로스만의 삶과 운명을 알게 된다.
아직 바실리 그로스만의 작품이 국내엔 소개되지 않은 걸로 알고 있고, 아마도 방대한 분량 때문이겠지만, 준-메이저급 작가이므로 머지 않아 소개될 것이라고 믿는다.
모더니스트의 기묘한 모험
- 20세기 최고 시인 예이츠의 환상록과 자서전 읽으쉴?
- <율리시스>는 어떻게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책이 되었는가?
- 위대한 피츠제럴드 (1), (2)
- 토끼공듀의 삶
- 만델스탐의 노래
- 악어들의 거리
- 독일인이 오리라
모더니스트의 선조들
진짜 관심 있던 쪽 글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사람 예전에 어디서 본 거 같은데 어디였지 흠
컥 재밌게 보여서 볼까했는데 번역이 없다니...
2021년은 바야흐로 소비에트 해체 30주년이니 기대할만하지 않을까? 러시아 문학의 선구자 열린에서 한 번 땡겨주면 좋겠다
올해 1부 스탈린그라드랑 2부 Life and fate 읽어봤슴. 물론 영역본으로. 1부는 솔직히 지루했고 작가의 주관이 별로 안드러나는 것 같았는데 2부는 완전히 다른 소설 같았슴. 동일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소설이지만 스탈린이든 히틀러든 여과없이 비판함. 표면상으로는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이뤄지는 몇달간이지만 실제 소설이 다루는 시공간은 훨씬 넓고 길었슴. 시간상으로는 30년대 대기근, 대숙청까지 다루고 공간상으로는 소련의 굴라그, 독일의 포로수용소, 유대인 가스실 등 엄청나게 방대한 지역을 다루고 있슴. 특히 스탈린의 공포 정치하에서 이뤄지는 우상숭배와 한 개인의 심문과정에서 심리적으로 무너지는 모습은 무시무시할 정도임. 아마 스탈린 치하 소련의 모습을 이렇게 생생하게 그린 작품도 없을듯.
그리고 이 소설의 백미는 어머니가 수용소에서 마지막으로 아들인 빅터에서 보내는 편지임. 당시 소련에서의 반유대주의가 얼마나 심했는지 생생하게 그려짐.실제로 그로스만의 어머니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독일군한테 학살당했고(당시 종군기자로 참전한 그로스만은 후퇴중이었는데 구데리안의 기갑군의 진격속도가 워낙 빨라 겨우 약간 앞선 상태로 퇴각 중이었다고 함.그래서 순식간에 어머니가 살던 지역이 독일군 점령하게 들어갔다고...) 그로스만은 자신과 어머니를 모델로 캐릭터를 등장시킴. 번역가 로버트 챈들러 그런 이유로 그로스만이 이 책을 살아 있는 생명체로 생각한 것 같다고 함. 개인적으로 이 편지 부분이 영화 쉰들러 리스트보다 더 인상적이었슴. 이 정도 대작이 아직 한국에 소개도 안됐다는 게 의아할 정도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