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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이미지

독일은 매력적이다. 문학에서는 세계급 대문호 괴테 하나로 정리되며 철학에서는 칸트와 헤겔이 오늘도 마조독붕이들의 두뇌회로를 태우기 위해 열일 중이며 과학에서 아인슈타인괴 하이젠베르크에게는 이과충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무한한 존경을 보내고 있다. 그러니 모든 분야에서 한 명 쯤은 독뽕일 수 밖에.

그리고 어느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독일이라는 나라가 쌓아올린 가장 위대한 업적은 바로 음악이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숱하게 접했던 바흐와 헨델, 모차르트(오스트리아 사람이라고 딴지걸지 말자. 그렇게 따지면 히틀러도 오스트리아 사람이다.), 베토벤, 브람스, 바그너 등등 여전히 불멸의 고전으로 사랑받으며 살면서 한 번 쯤은 들어본 수많은 작곡가들이 독일 음악 금자탑에 이름을 올렸다. 독일 음악이란 민족에게 가장 자부심 넘치는 정신 그 자체이다.

그리고 여기 《파우스트 박사》에서 그런 독일의 음악은 아드리안 레버퀸이라는 한 작곡가로 표상되어 나타난다. 이 주인공은 천재 그 자체이며 시대 최고의 작곡가이다. 그는 일상에서 음악의 신비를 깨닫고 완벽히 이해하며 평생 동안 음악사 전체를 아우르는 대작들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생의 마지막에 자신의 예술성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얻게 된 것임을 고백하고 비극적이라고 할 법한 결말을 맞게 된다.

《파우스트 박사》의 내용을 요약하면 아드리안 레버퀸을 곁에서 바라보았던 화자(인문학자이다)가 서술한 그의 전기이다. 2차 세계 대전이 벌어지고 있는 시대를 배경으로 화자는 주인공을 회상하며 그에 대한 추억과 그 천재성, 여러 사건들과 비극, 그리고 그의 최후까지 세세히 서술한다.



토마스 만의 소설들은 언제나 무언가의 뿌리를 테마로서 탐구한다. 그런 테마는《마의 산》에서는 한 시대의 학문이었고 《요셉과 그 형제들》에서는 보편적인 신화로 등장했다. 《파우스트 박사》의 테마는 한 민족의 거대한 문화적 뿌리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소설의 주인공 아드리안 레버퀸은 독일 음악(또는 유럽 음악)의 표상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예술성을 불어넣어주는 악마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괴테의 《파우스트》 속 그 악마이다. 즉 우리는 독일 음악을 체험하는 존재가 독일 문학의 뿌리와 함께하는 곳을 목격한다. 그 존재 자체만으로 아드리안은 독일 문화를 대표하는 인물이 된다.

그 주인공의 삶이 서술되는 소설 속 배경은 아이러니하게도 독일과 전세계를 파멸로 이끌어간 히틀러 치하의 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이다. 독자는 소설을 읽으며 문화가 가장 찬란하게 꽃피우는 시대를 보면서 동시에 이 시대를 둘러싼 지옥을 본다. 한 민족이 바닥까지 추락하게 되는 그 사건, 전세계로부터 수치를 받게 되는 그 사건을 경험하며 화자는 자신의 정신적 뿌리를 묵묵히 서술해 나간다.

《파우스트 박사》는 2차 대전 2년 후 출간된 소설이다. 그 전까지 한 시대의 젊은이를 다루던 작가는 전 유럽까지 그 범위를 확장하여 탐구를 했으나 전후 돌연 자신의 민족에게로 스코프의 범위를 줄여버린다.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었겠는가? 자신의 민족이 패배했다는 그 사실을, 토마스 만은 소설의 렌즈 아래에서 해체하고 분석하여 거대한 작품으로 승화한 것이다. 결국 비극의 시대를 앞에 두고 소설가는 그 자신의 가장 근본적인 뿌리로 주제를 돌리게 되었다.



소설은 전체적으로 읽기 쉽지는 않다. 만일 읽는다면 무시하기 힘든 구조적 문제점을 안고 가야하는데 바로 과도한 문장이다. 우선 소설 내에서 창작된 음악은 우리가 들을 수 없기에 전부 화자의 설명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이는 어마어마한 양의 텍스트를 필요로 한다. 거기다 굳이 음악적 설명이 아니라 하더라도 만연체 마스터인 토마스 만은 그 모든 것을 소설 속에 우겨넣겠다는 마인드인지 사소하고 자잘한 부분들까지도 모조리 서술해버린다. 개인적으로 토마스 만에 대해 아쉽게 생각하는 요소 중 하나이다. 다리가 너무 화려해 테마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불어나버린 묘사는 소설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방해한다. 이는 19세기 소설들에서 그대로 나타나는 문제이며 특히 토마스 만처럼 테마에 대한 접근이 신선한 작가들에게는 새로움을 경험하기 위해 넘어야 할 장벽이나 다름없다.

그래도 인내는 쓰지만 열매는 달다고 몇백페이지를 가득 채운 묘사를 지나 뒤를 돌아보면 작가가 쌓아올린 거대한 구조물이 눈에 들어오면서 그 문학적 수준을 실감하게 해준다. 괴테가 한 민족의 정신을 홀로 세웠듯이 토마스 만은 그 민족 정신의 탐구를 소설가 개인으로서 해낸다. 괴테의 《파우스트》가 독일 정신이 듯 만의 《파우스트 박사》 또한 새로운 기대를 위한 독일 정신이다. 누군가 마음 속에 독일에 대한 선망을 조금씩은 품고 있지 않은가? 연말을 맞이해 독일 정신의 발자취를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