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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닮은 사람 > - 누쿠이 도쿠로 (엘릭시르) 김은모 옮김
누쿠이 도쿠로의 작품답게 각 열 명의 등장인물들의 시점별로 담긴 소설집이다. 소규모 테러가 전염병처럼 사람들 사이에서 퍼진 게 아닐까?
아무튼, 감상문 분량도 많아질 것 같아 각 인물별로 나눠서 쓸까 한다.
이제 마지막 파트다!
10. 가타쿠라 료의 경우
드디어 이 소설의 마지막 에피소드다. 여기서 모든 사건이 다 풀리고 진짜 도베의 정체가 드러날까.
배경이 일본이 아닌 말레이시아다. 도베가 잡히지 않으려고 외국에 도망 온 걸까?
더위를 피하려는 이유로 성당에 다니는 료. 순수한 건지 이상한 건지 알 수가 없다.
성당에서 봤던 여자를 일본 서적이 있는 서점에서도 발견한 료. 일본인이었다. 이 여자 누굴까 했더니 마이코다. 세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인 마이코. 미와처럼 국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미와와 이어진 건가?
문득, 그녀들의 국제 자원봉사를 보니 오래 전, 일본 운동권 극단주의자들 중에 팔레스타인 같은 곳에 가서 테러리스트 활동을 한 이들이 떠오른다. 이건 영화 배틀로얄2 레퀴엠에도 등장하는 내용이다. 거기서 모티브를 따온 걸까?
말레이시아는 의외로 살기 좋은 듯해서 눈길을 끈다.
소설에서 두 남녀가 먹는 닭밥은 묘사가 너무 맛있어 보였다. 나도 먹고 싶다. 이 부분을 읽기 직전 저녁 식사를 했는데 또 뭔가가 먹고 싶어진다. 닭밥, 닭밥... 그래... 운동권이니 사회 운동이니 정의니 하는 것보다 닭밥이 중요하지... (작성자가 뚱땡이랍니다. 이해해주세요.)
연애 얘기는 이 소설에서 가장 달달하고 훈훈한 장면이다. 허나 곧 결말을 향한 혼돈이 예상된다.
말레이시아는 어딘가 다문화 정책이 가장 성공한 사례로 보인다. 그래서 마이코가 이곳에 온 걸까? 저자 또한 이곳을 롤 모델로 삼고 싶은 지상낙원으로 택한 게 아닐까? 내가 예전에 북유럽을 지상낙원의 롤 모델로 삼았듯이 말이다.
마이코가 자원봉사를 온 이유에 대한 답변을 거절한다. 수상하다.
료의 부모님은 소규모 테러로 희생됐다. 그리고 이를 듣고 뭔가 심상찮은 반응을 보이는 마이코. 마이코짱, 너 설마...?
알고 보니 료의 부모님은 전편의 트럭 테러(작중 트럭 테러가 두 개가 있을 듯. 그 중 하나일 듯싶다.)의 희생자였다. 역시 이 소설은 촘촘히 얽혀 있다. 추리물로서의 본분을 버리지 않았다.
마이코는 최초의 도베가 자신이라고 고백한다. 그녀 입으로 직접 말하는 대사를 보니 머리를 얻어맞은 듯 멍해지는 기분이다.
마이코 편 트럭 사고는 소규모 테러와 별개의 다른 사건이었다. 일종의 트릭이자 트랩이었다.
진심으로 일본이 망하길 바라며 도베의 이름을 빌린 이들도 잡히는 게 일종의 복수라는 그녀. 역시 배후의 우두머리는 다르다.
남의 아픔을 상상하지 못하는 자는 용서할 수 없다는 마이코. 명대사였다. 박수를 쳐주고 싶은 명대사였다. 나도 그랬으니까. 내 삶 또한 한때 그랬으니까. 그래서 입진보 놀이를 하며 투쟁에 어떻게든 동참했다. 바꾸려고 했었지만 그 무엇도 바꿀 수 없던 좌절뿐인 그 시절.
마이코는 자신의 죄와 직면하고 심적으로 복잡해진 듯하다. 그리고 공감하는 료. 어쩌면 우리 모두 마이코 같은 기질을 갖고 있는 건 아닐까.
결국 료는 마이코를 용서한다. 그녀도 살아서 속죄하며 살기로 한다.
그렇게 작품이 끝이 났다.
서로 배려하고 용서하며 여러 국적과 인종, 종교가 섞여 잘 돌아가는 말레이시아가 마지막 파트의 배경인 원인은 이 때문이 아닐까. 저자가 말레이시아에서 이 소설의 답을 찾은 건 아닐까.
이제 감상을 전체적으로 정리해야 할 것 같다. 처음엔 이 책이 어떨지 몰라 읽을까 말까 고민했다. 전혀 기대를 하지 않은 채로 읽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놀라웠다.
소설이 전부 독백 형식이었다. 이 책은 급하게 읽지도, 억지로 읽지도 않고 천천히 곱씹으며 읽었다. 지루함이나 성급함을 느낄 수 없었다. 천천히 즐기고 싶었다.
요즘 신춘문예 시즌인데 나 또한 한 명의 도베가 되어 문단을 바꾸고 싶었다. 내 가슴에 불을 지폈다.
다만 소설에 너무 많은 에피소드와 인물들이 등장해 헷갈리는 부분이 있다. 두 번째로 붙잡힌 도베는 누구인지 아직도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소설이 촘촘하고 복잡하게 뒤섞여 시기의 순서와 인물이 헷갈릴 수 있다.
잠재된 내 운동권의 피를 끓게 해줬다. 추리물로서도 이정도면 적당하다. 은근히 복선이나 함정이 깔려 있다. 느슨하면서도 끊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얽혀 있다.
읽는 내내 많은 생각을 했다. 다 읽지도 않았는데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준 작품이었다. 또한, 책장이 꽉 찼음에도 반드시 구입해 소장하고 싶은 책이었다. 올해 읽은 책들 중 가장 내면을 울리게 해줬다. 남들이 뭐라 하든 내게는 올해 최고의 명작이었다.
정치성향을 떠나 내 주변의 여러 운동가들을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난 뭘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도 마이코처럼 뭔가를 바꾸기 위해 실천하고, 행동하고, 계획하고, 그리고 속죄해야 할까. 나도 이 세상 어딘가를 바꾼 후 속죄하고 싶다.
그 타깃은 정했다. 이제 내 실천 의지에 달렸다. (이렇게 말하니 무슨 테러 예고 같다)
만약 내가 다시 소설을 쓴다면, 이런 소설을 쓰고 싶다. 세상에서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은, 내가 쓰고 싶은 책이라는 점을 깨닫게 해줬다.
나도 한명의 도베가 되어 이 세상을 살아가고 싶다. 미워하고 싶지만, 결국 그 미움은 자기혐오였음을 고백해야겠다.
마지막으로 쑨원이 죽기 전 남긴 말로 이 감상문을 마무리 짓고 싶다. 그래야만 할 것 같다.
'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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