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권 더 있었으나, 다 버렸음.
버린 책들 중에는 최수철 소설가의 초기 단편소설집이 있었음. 나는 그의 소설들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인간 최수철’이 나름 흥미롭다고 생각해서 글 씀. ‘음, 뭐 이런 인간도 있구나’는 느낌으로 읽으면 재밌을 것 같음. 그의 작품들을 적극 추천하고 싶지는 않지만, 뻔한 소설들에 염증을 느낄 때 한 권쯤 훑어보면 이색적인 경험이 될 것 같다.
우리나라의 소설가 중 한 명이다. 가장 유명한 작품은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얼음의 도가니』 나는 장편소설 『침대』를 통해 그와 만났는데, 그 작품을 가장 추천한다(제일 재밌음). 최수철의 작가 이력을 소개하는 데에 소설 「페스트에 걸린 남자」가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주인공인 중견 소설가 ‘그’는 자신의 삶이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그가 열심히 써온 몇 편의 소설들의 성과는 “처참”했으며, 때문에 그는 삶과 소설쓰기에 대한 자신감을 잃은 채 ‘죽음 충동(정신적 페스트)’에 시달린다. 그리고 그는 죽음 충동을 장편소설로 써내려고 한다. 이후 그는 소설쓰기를 통해 자기 자신과 처절한 사투를 벌인다.
물론 위 작품은 최수철의 자전적인 소설이다(원래 그는 자신을 객관화시켜 3인칭으로 쓰는 수법을 즐겨 쓰며, 또한 『페스트』라는 제목의 장편소설이 실제로 존재한다).
언급한 작품을 토대로 최수철 작가를 좀 더 자세히 소개하자면, 원래 최수철 작가는 불문학을 전공하고 프랑스의 누보로망을 롤모델로하여 실험적인 소설들을 써내던 작가였다. 그런데 비슷한 연배의 몇몇 소설가들이 주목받을 때 그는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음. 여러 소설이나 인터뷰에 의하면 그는 큰 자괴감을 느꼈던 것 같으며, 그로인해 그는 작품 세계에 다소 수정을 가했다. 물론 타고난 기질이라는 것이 있어 어느 정도는 흡사하지만...
사실 내가 봐도, 최수철의 초기작은 완전히 폭망이다... 별로 의미 없는 실험이랄까. 좀 심하게 말하면 나 같아도 그런 소설 쓰면서 인생을 허비했다면 ‘죽음 충동’에 시달릴 것 같다...
이후 그의 작품들은 의식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이전의 경향은 조금 줄이고 서사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대체로 그의 작품의 주인공들은 심리적인 면에서 세계와 큰 불화를 겪고 있어 특정한 이상 증세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 장편 소설들 같은 경우, 어떤 소재를 중심으로 그 소재와 연결되는 증상을 가진 여러 인간들을 그려낸다.
후기 작품들은 단편 소설집 『몽타주』, 『갓길에서의 짧은 잠』, 장편 소설 『침대』, 『페스트』, 『사랑은 게으름을 경멸한다』 등이 있음.
그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이런 이미지가 떠오른다. 이상한 눈빛의 자폐증 소년이 구석에 앉아 혼자서 웅얼거리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모여서 저마다 수다를 떨고 있는데 뭐하는 건가 싶어서 그에게 다가가면, 그는 갑자기 나를 쳐다보며 절박하게 중얼거린다. 처음에는 그 얘기들이 대단하다 싶었지만 알고 보면 그야말로 자폐적인 말들이다. 그러나 그 중에 몇 마디 정도, 지극히 몇 마디 정도가 머릿속에 크게 각인된다. 앗, 다시 들어보면 뭔가 의미 있는 형태로 이해해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다시 들어도 여러 미친 소리들 중 몇 마디만 건질 수 있을 뿐이다. 생각해보니 그 몇 마디의 말들도 좀 실없고 우습다. 그 말들이 인상 깊었던 이유는 그것이 의미있어서가 아니라 굉장히 절실해서 일종의 에너지가 감돌기 때문이랄까. 생각해보면 애당초 그의 중얼거림에 이끌렸던 이유도 절박한 에너지 때문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 하지만 중얼거림은 결국 중얼거림에 불과하다. 너는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겠군. 끝까지 중얼거리기만 할 뿐이겠지.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평소 하루키가 참 교묘한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재밌게도 최수철의 소설을 읽다보면 나는 하루키가 떠오른다. 하루키와 정반대의 느낌. 생선을 잡아서 요리를 하는 상황에 비유하자면, 하루키는 생선에 갖가지 요리 비법과 비밀 소스를 활용해 우아한 스튜나 섬세한 생선 요리를 만든다. 반면 최수철은 생선을 산 채로 회를 뜬 뒤 강한 초장과 함께 내놓는다. 하루키가 만든 요리의 생선에서는 현란한 요리 솜씨가 느껴진다 -음, 생선을 이렇게 요리하는 나라도 있네-. 최수철의 생선 요리를 먹어보면 살아 숨 쉬는 듯한 생선의 맨살과 강한 초장의 맛이 입 안에서 충돌한다.
최수철은 읽는 사람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자신의 경험과 내면을 그대로 내어놓는다. 대신 그는 거기에다 환상적 요소와 초현실주의 회화를 연상케 하는 독특한 이미지를 덧붙인다. 그 요소들은 대체로 작품의 클라이막스 부분에 등장하여 주인공의 혼란스러운 심리나 내면의 깨달음 같은 것을 표현한다. 그의 이상한 성격;;에서 비롯된 내면의 갈등에 초현실주의적인 이미지까지 곁들여지니 그의 소설이 강한 에너지와 절실함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그의 소설들은 여러 비유들로 넘치는데, 이 점이 자폐아를 떠올리게 만든다. 문장은 만연하지 않은데도 그의 표현들은 간결함과 단순함이 없고 복잡하다. 정말 심하다 싶을 정도로 웅얼거린다. A는 B처럼 C했다. A는 나에게는 B였으며 C였으며 D였고 E였다. A라는 상황은 B 상황과 흡사하다. 그 때 A에게서 B가 겹쳐 보였고 C가 떠올랐다...
그리고 몇몇 문장들이나 표현은 그의 성격을 짐작케 한다. 어떤 문장들은 짧으나 헤밍웨이처럼 하드보일드하거나 하루키의 쿨하지는 않고, 괴팍하다. 예를 들면, “나는 침대이다”, “-에서의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제 내가 –의 주인이다”
그는 기술적으로 투박하기 때문에... 읽다보면 몇몇 소설들은 막 짜증이 난다. 그러나 특정 소설들의 어떤 부분에는 크게 감탄했다. 대표적으로 개가 나오는 부분. 나는 그의 소설 속 개들을 좋아한다. 그의 소설에는 개가 어떤 심리적 원형을 대표하는 존재로 자주 등장하여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주인공과 대면하는데, 개가 주인공에게 으르렁거리며 말할 때의 그 절박함은 눈물을 핑 돌게 만든다(얼음의 도가니, 낮고 희뿌연 방, 진부한 일상). 또한 앞서 언급한 대로 초현실주의 회화를 연상시키는 기괴한 이미지들이나, 최수철 작가 특유의 분열성 인격의 탐색과 그로 인한 고민이 표현된 소설들(채널 부수기, 페스트에 걸린 남자)이 있겠다.
언급했다시피 나는 이 작가의 작품들을 그 자체로 좋아하기보다는, 작품들을 통해서 최수철이라는 인간에 대해 관심도 가지고 생각도 많이 했다. 열심히 글을 썼으나 끝까지 고만고만할 뿐 뜨지 못하는 소설가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들의 마음속은 얼마나 황폐할지. 뜨지 못하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고 자신도 그것을 알 텐데, 그 점을 극복하고 변화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지. 예술, 소설 뭐 이런 것들은 작가가 타인과 자기 마음 사이의 어떤 접점을 자기 방식대로 찾는 것이 아닌지. 그런 의미에서 예술이라는 것은 진정성보다는 표현과 기술의 문제가 큰 것 아닌지. 이런 생각들.......
오 읽어보고싶다 정성스런 글 개추
ㅊㅊ
자살충동... 나도 인생 허비했어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