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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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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나 좋음


이 책의 장점을 말하라하면 너무 많아 무엇부터 말해야 할지 막막해집니다. ‘존X 좋음’ ‘별점 다섯개 쌉가능’ 최고의 만족감을 나타내는 계량적 표현으로는 이 책의 효용을 나타내기에 부족할 정도지요.(그래도 뭔가 이 책에 대한 선호를 계량화 해보라 한다면 이 책은 모든 문장에 밑줄이 쌉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특이하게도 논어가 주 콘텐츠인데, 장르는 에세이인 생경한 포지션을 취합니다. 이를 반영한 듯 표지에는 김영민 논어 에세이라고 떡하니 표시를 해놓았죠. 에세이면 에세이지 논어 에세이라는 장르를 들어나 보셨나요. 또 표지 디자인도 아주 갬성이 좀… 이게 논어와 관련된 책인가 싶죠. 그런데 이 모든 설정은 의도된 전략인 듯 합니다. 에세이가 주는 편안한 느낌 그리고 표지의 갬성을 더해 유교 = 탈레반 쯤으로 여기는 분들 또한 독자로 포섭하겠다는 큰 계획을 엿볼 수 있는 것이죠. 거기에 전작인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에 감명받은 저와 같은 독자들도 책의 구매자가 될터. 앞서 말씀드린 독자층을 넓히는 전략은 꽤나 적절하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고전 왜 읽음? 논어 왜 읽음?


한남, 한녀, 맘충 등 혐오의 표준어가 된 이런 단어들은 하루에도 몇번씩 지겹게 들립니다. 뉴스에서는 갈등이 극에 달해 당장이라도 남녀가 서로 다른 국가를 세울것 같고 , 사회가 분열하고 대한민국이 무너기라도 할 듯 호들갑을 떱니다. 이런 때에 항상 들리는 레퍼토리.


‘인문학이 필요하다. 인문학은 고전에서 출발해야 한다.’


재밌는 건 사회에서 갈등, 비난, 혐오에 대한 언급빈도가 높아 질수록, 이 ‘고전출발론’은 더욱더 확대 재생산 된다는 특징이 있지요. 확대 재생산은 ‘고전출발론’ 이 자본주의의 병폐를 고치고, 사회의 분열을 통합으로 이끌며, 개인의 정신 건강은 평온한 상태로 돌릴 수 있다는 막연한 희망을 갖게 합니다. 마치 고전이 만병통치약인 양.


‘만병통치약을 표방하는 고전 해석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동양 고전에 대한 상대적으로 정확한 지식이 아니라, 부지불식간에 전시하는 지적 권위에 대한 화급한 욕망, 사회인들의 전방위적 멘토가 되어보겠다는 허영, 그리고 무엇보다 지성계에 광범위하게 뿌리 내린 허위의식(p.10)’


이라고 김영민 교수는 꼬집습니다. 그렇다면 왜 교수는 허위의식, 화급한 욕망의 근원지일지도 모르는 논어를 택하고 그 지옥 불구덩이로 뛰어들었을까요? 논어의 순교자쯤 되는 걸까요?


'고전의 지혜가 우리가 현대에 당면한 어떤 문제도 해결해주지 않는다고? 그렇다면 논어를 왜 읽는가? 고전을 왜 읽는가? 실로 고전 텍스트를 읽는다고 해서 노화를 막거나, 우울증을 해결하거나, 요로결석을 치유하거나, 서구 문명의 병폐를 극복하거나, 21세기 한국 정치의 대답을 찾거나, 환경 문제를 해결하거나, 현대인의 소외를 극복하거나, 자본주의의 병폐를 치유할 길은 없다. 고전 텍스트를 읽음을 통해서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은, 텍스트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삶과 세계는 텍스트이다.(p.17)


김 교수는 순교자가 아닌 텍스트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되고자 논어를, 고전이라는 텍스트를 읽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삶과 세계는 읽어야만하는 텍스트란 얘기를 하면서요. 여기까지가 이 책의 서문입니다. 저는 서울 출장이 끝난 후 교보문고에서 책을 둘러보던 중 김영민이라는 익숙한 이름을 발견했고, 이 서문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서문이 끝나자마자 이 책을 구매했습니다. 전작인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도 서문이 좋지만, 이 책은 그 서문을 뛰어넘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서문 만으로도 15,000원에서 10% 할인된 13,500원의 값어치를 합니다. 서문 이후의 텍스트는 말 그대로 보너스입죠.


공자도 사람이야! 사람!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공자도 사람임을 잊지 않는 자세에 있습니다. 공자도 밥먹고 똥싸는 인간이라는 거죠. 김영민 교수님은 ‘공자도 밥먹 똥싸’를 증명해내는 데 있어 아주 탁월한 능력을 보여줍니다. 가령, 직장인들의 망상중 하나인 사장 얼굴에 사표 던지기와 공자를 연결시킵니다.


“아니 지금 할 일이 산더미 같은데 직장을 그만두면 어떡합니까? 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급 존댓말)”

“오늘 하늘이 청명하더군요. 직장 그만두기 좋은 날이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뭘 잘못했나? 뭐든 내가 고치지, 고치고 말고.”

“지난 주 회식 때 저만 고기 안주셨잖아요.”


이 고기를 안줘서 사표를 냈다는 얘기와 공자가 무슨 상관이냐고요? 공자도 고기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직장을 떠난 적이 있기 때문이랍니다. 고기를 줘야될 때야 주지않는 직장은 떠나야하는 법이죠. 실로 공자는 떠나야할때 떠날줄 아는 예를 갖춘 성인임 에 틀림이 없음을 김영민 교수는 또한번 일깨워 줍니다.웃자고 예시를 든 거고 약간의 msg도 첨가되긴 했지만, ‘공자도 사람이야 사람!’ 기조는 책의 시작부터 끝까지 멈추지 않습니다.


다 아는 사람들이구먼.


전작에서는 새해를 대하는 마음가짐에 대한 본인의 확고한 철학을 설명하는데에 타이슨을 꺼내들죠.


그러나 새해에 행복해지겠다는 목표나 계획 같은 건 없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권투 선수 중 한사람이었던 마크 타이슨은 이렇게 말했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이 책에서는 타이슨 말고도 지드래곤, 프란시스 베이컨, <대부>의 콜레오네도 등장합니다. 대관절 지드래곤이 논어와 무슨 상관일까요? 콜레오네는? 공통분모 혹은 대척점이 전혀 없어보이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김영민 교수는 이걸 또 해냅니다. 다 아는 사람들로 공자를 설명하는게 쉬운일은 아닌데 말이죠.



사실 진짜 좋은건 탄탄한 문장 비빔밥


김영민 교수가 어떤 글쓰기를 해온지는 에세이 두편 밖에 없어서 잘 모르지만 지레 짐작이 됩니다. 일단 아카데믹한 트레이닝을 엄청나게 받았다는 걸 알수 있습니다. 단어와 문장에 조그마한 틈도 없습니다. 아주 정교합니다. 학자로서의 글쓰기가 극에 달했구나 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죠. 하지만 아카데믹한 글로 끝났다면 김영민 교수가 에세이계의 아이돌 칭호를 받진 못했겠죠. 그 아카데믹함에 대중예술과 정치, 사회를 잘 비벼놨습니다. 탄탄한 문장 비빔밥이 아주 맛있습니다.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