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내가 이런 글을 쓸만큼 이 주제에 대한 지적 역량을 갖추고 있는진 모르겠다...


다만 정치철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으로서

이게 정치철학에서 아주 중요하고 또 해묵은 떡밥이고

내 생각을 정리해둘 필요도 있다고 생각해서 가볍게 써봄.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하는 정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에서 제시되고 있고, 정치학이라는 저술의 영향은 여럿 있겠지만 (혼합정체 개념의 제시, 자연법 이념의 정립, 좋은 정체와 그 정체의 타락이라는 원형의 출발) 인간을 정치적 동물로 놓는 정의의 영향 또한 그에 못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인간이 정치적이라는 것은 최소한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서양에서는 의심할 수 없는 일종의 공리로 여겨졌지.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어쨌거나 인간은 그가 속한 공동체라는 뚜렷한 기원을 갖고 있을 수밖에 없거든. 아무리 민족과 같은 개념이 근대의 발명품이라 하더라도 그게 인간이 특정한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는 현실까지 부정하진 못하니까. 그렇듯 그리스 문화에서 인간이란 언제까지나 공동체 속의 인간으로만 이해됐어.

  그러나 기독교 문화 아래에서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기보다는 신의 가장 뛰어난 피조물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영원이라는 주제가 화두가 되면서 세속의 정치라는 문제는 부차적인 것으로 밀려났지. 여전히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라는 정의는 유효했지만 그건 단지 세속의 세계에서만 유효할 뿐, 영원과 영혼의 문제에서는 무의미하고 덧없다는 인식이 생겨났으니까. 뒤에 가서 헤겔을 언급하겠지만, 헤겔이 정립한 '내면성을 갖춘 개인' vs '세속의 외부세계'라는 대립구도는 이미 기독교에 의해 어느 정도는 제시되어 있었던 거지.

  다시 정치라는 문제를 전면부에 등장시킨 건 한스 바론이나 JGA 포칵이 말하는 르네상스와 문예부흥, 혹은 '시민적 휴머니즘'의 대두야. (그렇지만 이 '시민적 휴머니즘'이 실제로 형태를 갖춘 운동이었는지는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있긴 해.) 공화주의적인 용어를 사용하자면, 스콜라적인 관조적 삶(vita contempaitva)에 대비되는 활동적 삶(vita activa) 혹은 시민적 삶(vivere civile)이라는 삶의 태도가 대두되었고, 서양의 지성계에서 정치와 공동체는 다시금 중요한 문제가 됐지. 시민적 휴머니스트들은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어떻게 적합한 역량을 갖출 수 있게 할 것이며, 어떻게 공동체를 유지하고 궁극적으로는 시민들의 자유를 보장할 것인가에 대해 질문하게 됐어. 그들은 여전히 세속의 시간(서양에서는 '세속'이 '시간적인 것'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이 표현은 다소 동어반복적이지만)이 영원의 문제보다는 하찮다고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적극적인 정치적 참여와 그 성공이 중요하다고 믿었지.

  여기에 더해 17세기즈음에 이르면 우리가 근대성(modernity)이라고 부르는 특성이 대두되기 시작해. 사실 근대성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것이 어리석은 짓이 된 시대가 됐지만, 그럼에도 근대성을 정의한다면 그건 일정한 합리성을 갖춘 거대 체제의 등장으로 이해되는 게 가장 타당하겠지. 즉 근대 체제의 출현 이전까지 인간이 폴리스와 같은 직접적 공동체에 속해 있었다면, 근대 이후로는 민족이나 국가와 같은 - 그러니까 민족국가(nation-state)라는 - 상상의 공동체에 속하게 되었고,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라는 문제는 그 이전과 전혀 달라지게 돼.

  근대 이후로 체제는 지나치게 거대해진 반면 인간은, 그러니까 개인은 한없이 무력한 존재로 비치기 시작했지. 이제 인간은 공동체 속에서 적극적으로 정치적 문제에 참여하는 시민이 아니라, 거대한 체제 아래에서 무력하게 순응하거나 혹은 그와 불화하는 개인이 되는 거지.

  이 대립, 그러니까 단지 사유할 수 있을 뿐 그 사유를 실현시킬 소재를 전혀 갖추지 못한 무력한 개인과 그 개인 외부에 절대적인 외부적 조건으로 주어지는 사회 혹은 세계라는 대립쌍은 헤겔 좌파의 철학에서 - 보다 구체적으로는 '소설의 이론'을 비롯한 루카치의 비평이론에서 - 가장 명징하게 드러내는데, 루카치는 아예 '문제적 인간'의 탄생을 근대성의 근간으로 놓고 있어. 그러니까 '내면과 세계의 불화'라는 주제가 본격적으로 전면에 등장하는 거지.


  헤겔 본인 이야기를 좀 하자면, 헤겔은 개별적 인간과 일반적 인류, 그리고 특수한 민족 공동체라는 세 가지 항의 매개를 상정했다. 즉 개별자인 인간은 보편자인 인류와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을 수 없다고 봤고, 대신 민족이 일반성과 개별성 사이를 매개하는 특수한 항이라고 생각했음. 그래서 인간은 내면-민족공동체-인류라는 세 항 사이에서 때로는 불화하기도 하고 때로는 협응하기도 하면서 살아간다고 봤던 거지.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헤겔 철학적인 이해도 점점 낡은 것이 되어가기 시작해. 우선 정말로 헤겔이 생각한 것과 같은 근대성이 실제로, 역사적으로 정말 출현했는가, 하는 당연한 물음이 제기되고, 또 자유주의라는 굉장히 강력한 이념의 비판에도 직면하지.

  자유주의자들은 공화주의나 헤겔철학의 전통에 맞서서 절대적인 개인의 자유를 주장하기 시작해. 자유주의는 엄청 많은 사람들이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이념인 만큼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그들은 대체로 공동체 속의 개인이라는 전제를 허물고 절대적 개인의 자유를 강조했지. 지금에 와서야 로크를 자유주의의 아버지로 놓는 게 다소 시대착오적인 짓이 됐지만, 노직 같은 사람들은 로크 식의 관점을 따라서 개인의 소유권을 핵심으로 하는 소유권적 자유주의를 제시했고, 반대로 롤스는 정치적 자유에 대한 몇 가지 공리들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적 자유주의를 제시했어. 이 둘은 서로 상이하지만 결국 개인의 자유를 공동체보다 우선한다는 점에서는 서로 같다고 봐야만 할 거야.

  나는 자유주의에 다소 비판적인 편인데, 공화주의적 자유 개념을 - 그러니까 공화주의의 비지배적 자유나 흄 식의 '자발성의 자유(liberty of spontaneity)'를 - 지지하는 입장에서 자유주의적 자유 개념은 많은 측면에서 혼란스럽고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거든. 자유주의자들이 가장 흔히 듣는 비판이 그들이 '무연고의 자아'를 상정한다거나 '무차별성의 자유'를 상정한다는 비판이고, 그에 대해 정치적 자유 개념은 단지 권리상의(de jure) 자유일 뿐 자유 개념에 대한 형이상학적 논쟁은 무의미하다는 식의 재반박이 제시되고 있는데.... 궁극적으로 개인이 공동체 속에 속해 있으며 무엇보다도 구조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런 식의 자유 개념은 무의미하다는 게 내 생각이야. 이건 좀 사족이고...

  자유주의와는 정 반대로 마르크스주의자들이나 푸코주의자들은 오히려 개인의 자유 혹은 내면성이라는 개념에 의심을 품었어. 이건 너무 단순화된 설명이라 좀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그들이 개인적 자유라는 개념을 의심했던 건 사실이야. 청년 마르크스는 은근히 자유주의적인 면이 있었지만 나이 먹고는 그런 게 많이 사라졌고... 이쪽에서는 인간이란 단지 주어진 조건에 의해 결정되는 것 이상의 아무 것도 아니라는 관점이 강하고, 푸코는 아예 인간이란 개념 자체가 근대의 고안물에 불과하다고까지 말하지.

  마지막으로 정리하자면 여기서는 개인과 공동체에 대해서 대충 네 가지 정도의 관점을 제시한 거 같아. 하나는 아리스토텔레스와 고전 공화주의자들, 그리고 스키너와 페티트를 비롯한 현대적 공화주의자들로 이어지는 공화주의적 관점이지. 여기서 인간은 정치적 동물로 이해되고 시민적 활동은 중요한 것으로 간주돼. 그리고 헤겔 식의 이해가 있는데, 헤겔은 내면과 세계의 매개 혹은 대립을 중요하게 봤지. 그에 반해 자유주의자들은 공동체를 부차적인 것으로 보고 개인의 자유를 절대적인 것으로 강조했고, 사회주의자들은 인간을 그 구조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봤어. 러프한 요약이지만 그렇게까지 잘못된 요약은 아닌 거 같아.


  내 정치철학적 관심의 중심 주제가 자유주의, 공화주의, 사회주의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긴 하지만 결국 나는 공화주의와 사회주의 쪽으로 좀 더 기울어 있음. 요컨대 구조 결정론적인 입장에 가깝지만 개인이라는 개념을 포기하지는 못하는? 그런 애매한 입장이 내 입장인 거 같다.





이 긴 글을 여기까지 읽을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얘기 나오길래 써봤고

어쨌건 개인과 공동체라는 건 정치철학의 중요한 주제야

관심이 있으면 츄라이 츄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