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희곡의 아버지이자 신 <입센>의 수염으로부터 현대 극장이 시작되었다고 말했지만,
알다시피 현대희곡은 부모가 셋이라서 롤에서 트롤링할 때도 남들보다 유리하다.
물론 입센이 선발대였고, 다른 이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친 것은 맞다.
현대희곡의 나머지 2명의 아버지들 또한 입센에서 영향을 받지만, 그와 동시에 입센에게 반기를 들었고, 또한 입센과는 다른 길을 개척하면서 영향을 끼쳤다.
체호프는 너무 메이저한 픽이므로, 오늘은 국내에서 희한하게 마이너지만,
오늘날에도 이곳저곳에서 공연되고, 연구되는 희곡의 최대의 이단아이자 혐성 사이코 모더니스트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바로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
사실 국내에서 스트린드베리에 대해 전문가가 다루는 책 말고, 쉽게 스트린드베리의 인물상을 접할 수 있는 좋은 번역서론 크베넬란의 <뭉크>가 있다.
그래픽노블이고, 뭉크의 삶을 다루지만, 스트린드베리와 뭉크는 베프이자 떼놓을 수 없는 관계였으며 대충 스트린드베리의 이미지가 어떠한지 잘 나타나므로
여기서도 자주 써먹겠다.
사진이 흐릿하지만, 스트린드베리는 나 빼고 모든 걸 증오한다는 뭉크와 달리, 자기자신까지 증오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묘사만 봐도 알겠지만, 스트린드베리는 무수히 많은 민중의 적이었던 입센보다도 더 문제적이고 기괴한 인간이었다.
1849년 스웨덴에서 태어난 스트린드베리가 어떻게 사이코가 되었는지는 사실 워낙에 의견이 분분하지만, 일단 가정환경에서부터 큰 영향이 있었다는게 학계의 중론이다.
아버지는 중산층이었으나 스트린드베리의 어머니는 하녀 일을 했었던, 말 그대로 하류층 출신이었다.
거기에 아버지는 엄격하고 가부장적이었고, 집안 배경부터 차이가 나는 바람에 어머니의 목소리가 거의 없는 집안이었다고 한다.
이러는 과정에서 어린 스트린드베리는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자신이 느끼기에 어머니의 보호를 거의 받지 못하고 자라났고, 또한 어머니는 그가 13살이 된 해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이러한 중산층과 하류층의 결합에서 나오는 계급 갈등, 그리고 어머니의 애정을 거의 받지 못하였기에 갈구하는 듯하면서도, 정반대로 펼쳐진 증오.
이미 모든 씨앗을 뿌려졌다.
말년의 니체와도 편지 교류가 있었던 일화가 자연스럽게 회자될 정도로, 이러한 비틀어진 스트린드베리가 평생을 강조한 것은 둠발놈처럼 '투쟁'이었다.
그가 자연주의 희곡 <미스 줄리>를 발표할 때 내세운 자연주의 원칙들에서 나오듯, 모든 것은 간결하되, 단순히 삶의 묘사나 장면이 아닌, 삶의 핵심이 되는, 피와 육신으로 된 인간들의 투쟁이 되어야하며, 이러한 투쟁, 정신적이든 육신적이든 충돌과 투쟁은 반드시 삶의 의미있는 변화로 이어지는 것이어야만 했다.
이러한 '투쟁'의 강조로도 얼핏 알 수 있듯, 스트린드베리는 직접적으로 정치적인 희곡이나 소설을 쓰진 않았으나 사회주의자에 가까웠고, 당시 스웨덴 왕이나 상류층, 혹은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서도 서슴치 않게 독설을 퍼붓는 걸 멈추지 않으며, 수없이 많은 이들과 투쟁하였다.
이러한 면모 덕분인지 소비에트에서도 스웨덴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높게 평가받으며 공연되고, 러시아의 연출가들이 연출했다.
심지어 이러한 이유 만으로 스트린드베리가 스스로 영향을 받았던 입센과 충돌하기도 한다.
스트린드베리는 입센이 '사실적인' 연극을 쓰지만, 그저 삶 속 일상적인 장면들에 치중하고 있다며 비판하였고, 특히 그의 <인형의 집>이 그저 상류층의 면모만을 단편적으로 보여줄 뿐이라며 싸우기까지 한다.
아무튼 그의 유년 이후의 삶을 간략하게 다루자면, 화학을 공부하러 대학을 어쩔 수 없이 갔지만, 끝내 중퇴하고 극작가의 길을 걸을 것을 결심한다.
초기에 그는 스웨덴의 역사, 스웨덴의 왕들에 관한 습작을 시작하지만, 반골기질은 이미 시작되었기에 삐딱한 시선으로 쓸 수 밖에 없었고, 자연스럽게 극장에선 게속 빠꾸를 먹는다.
스웨덴 종교개혁을 다루는 <마스터 올라프> 같이 여러 차례 빠꾸먹으며 여러 차례 바꾼 작품마저 있을 정도로.
그러다가 그는 시리 폰 에센을 만나, 끝나 결혼을 하게 된다.
이 결혼은 스트린드베리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다.
시리 폰 에센은 상류층 귀족이었고, 스트린드베리와 만날 당시 이미 유부녀였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사실 연극 배우를 꿈꾸었으나 신분 때문에 포기한 상태였다. 그러나 실패한 극작가 스트린드베리를 알게 되었다.
끝내 시리 폰 에센은 상류귀족임에도 불구하고, 배우로 데뷔를 하고, 이미 외도를 하고 있던 남편과 이혼을 하며 스트린드베리와 결혼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 자체가 당시 스웨덴에선 충격 그 자체였고, 스트린드베리는 이러한 불화를 일으킨 장본인으로 비난받으며 계속 실패한다.
마침 이 시기 재산 관련 문제로 끝내 스트린드베리는 자신의 아버지와 완전히 결별하고 나중엔 장례식도 안 간다. 말 그대로 모든 게 시궁창이었다.
그러던 중 드디어 스트린드베리는 1879년 자신의 소설 <붉은 방>이 '최초의 현대적인 스웨덴 소설'로 평가되며 북유럽에서 명성을 얻기 시작하고,
그와 동시에 자신의 작품들도 드디어 조금씩 극장에 오를 수 있게 된다.
프랑스로 이사가 계속 작품활동을 하던 도중, 1884년 또 다시 스트린드베리는 스캔들에 휘말린다.
그가 발표한 단편집 <결혼생활>이 문제가 되었다.
여러 형태의 결혼생활에 관한 이야기들은 그 자체로도 문제가 되었지만, 몇몇 표현들을 특히 문제 삼는 이들이 생겼다.
"1800년 전에 뒈진 선동꾼 나사렛 예수 촌뜨끼"
"너 신성모독"
특히 예수에 관한 모독적인 표현등이 스웨덴 상류층들에게 분노를 일으켰고, 당시 스웨덴 왕비 소피아가 뒤에서 부추긴 걸로 유력하게 추정되는 사람들의 신성모독 고발까지 당하게 된다.
이 일로 잠깐 스웨덴으로 돌아온 스트린드베리는 다시 파리로 떠나 오래도록 고향으로 안 돌아온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 속에서, 스트린드베리는 시리 폰 에센과의 결혼생활에서 영감을 얻어, 그녀를 주연으로 하는 오늘날 그의 대표작들 <아버지>나 <미스 줄리>등의 자연주의 희곡들도 발표하지만
워낙의 개성적인 두 사람의 결혼이었으므로 결혼 초기부터 다툼은 끊이질 않았고, 끝내 1891년 두 사람의 이혼으로 파국을 맞이하고 만다.
그리고 그 직후 1892년, 뭉크와 만나게 된다.
(대충 뭉크의 눈에 비친 스트린드베리)
스트린드베리는 폴 고갱과도 친분을 쌓았을 만큼, 사실 미술에도 꽤 관심이 있었고, 직접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뭉크와 스트린드베리, 두 사람 모두 아이러니하게도 후대의 표현주의에 큰 영향을 끼치는 만큼 서로에게도 영향을 주며 꽤나 친분을 쌓는 듯싶었다.
뭉크가 스트린드베리의 초상화를 그려줄 정도로.
(팩트다)
물론 이 초상화 때문에 스트린드베리가 충동적으로 뭉크를 총으로 쏴죽일 뻔한 일이 일어난다.
뭉크가 스트린드베리의 철자를 틀리게 썼고, 또한 액자에 '여자'를 그려넣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러한 일화에서도 알 수 있고, 일부러 앞부분에서 언급을 자제했지만,
스트린드베리는 진짜배기, 혼모노 '여성혐오'자였다. 후대에 재평가된 것도 아니고, 그냥 당대에 어울리던 친구들도 아 이건 좀 아니지 않나요 라며 학을 뗄 정도로.
이러한 뿌리의 근원은 앞서 말한 어머니와의 관게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고,
자신의 단편집 <결혼생활>이 스웨덴에서 비난받을 때, 그 배후엔 여권주의자들이 있을 거란 일종의 망상적 분노 또한 가지고 있었기에, 스트린드베리 본인의 정신적인 문제가 있었을 수도 있다.
(다만, 이미 자신의 결혼 생활 불화의 영향으로 단편집 <결혼생활>에서 이미 여성혐오적인 글들이 뒤섞이기 시작한 건 사실이었다)
그러면서도 초기엔 여성의 투표권 주장이나 전통적인 가정을 비판하는 등 상반된 모습을 보인 적도 있어서 대체적으로 살면서 변했을 거란 추정만이 가능할 뿐이다.
물론 이러한 원인이나 그 범위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시작되고 확장되었는지는 오늘날 연구자들도 의견이 분분하므로 확답할 순 없다.
다만 그의 실패한 결혼 생활의 영향이 아마 컸을 것이다. 특히 시리 폰 에센과의 결혼생활와 불화들을 자신의 작품들의 원동력으로 삼기도 하였으니까.
이러한 스트린드베리의 '여성증오'는 보통 에즈라 파운드 같은 문제적인 작가를 연구하는 이들이라면 은근슬쩍 두리뭉실하게 넘기려고 하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미스 줄리> 같은 오늘날에도 공연되는 그의 대표작들을 낳는 원동력이 되므로 그의 여성증오를 어떻게 해석하고 봐야하는지 끝없이 논의되고
그의 작품 해석에도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여성증오를 숨기지 않았으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또 다시 1893년 스트린드베리는 2번째 결혼을 하게 되지만 이번에도 불화 속에서 실패하게 된다.
특히, 이른바 <인페르노-지옥>의 시기의 탓이 컸다.
1894년부터 1896년까지, 거의 정신착란과 붕괴에 가까울 정도로 스트린드베리는 자신이 미치기 일보 직전까지 갔다고 썼다.
뭉크가 자신의 방에 가스관을 설치하여 암살할 거란 두려움 속에 밖에 나와 글을 쓰는 등 말 그대로 정신 나간 짓을 하게 된다.
이러한 체험을 일기로 쓴 일부를 훗날 <인페르노>란 제목으로 출간을 하게 되는데,
이러한 '정신착란' 자체가 정말로 있었는지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어느 정도 스트린드베리의 과장, 혹은 심지어 연기가 아니었을까 하는 주장도 있지만
일단 주변 증언들도 나름 없진 않으므로, 여러 정신적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은 있다. 다만, 어느 정도 관종기질로 그걸 부풀렸다는 해석이 중론이지만.
스트린드베리는 치유를 명목으로 모든 이들과 결별한 채, 스웨덴으로 돌아간다.
그의 작품 세계를 '인페르노 이전' '이후'로 나눌 정도로 이 위기는 그의 삶의 전환점 중 하나가 되었다.
스웨덴으로 돌아간 스트린드베리는 스웨덴보리 등의 신비주의에 빠지고, 연금술에도 몰두하기 시작하며 종교적이고, 조금 더 정신적인 것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시기에 그의 작품 속에서 표출되는 여성증오가 조금은 누그러졌다.
"드디어 정신 차렸구나 친구야."
"그래.....여자만 증오하면 되는 게 아니야....공평하게 전부 증오해야지...."
"ㅅㅂ"
물론 다른 증오도 나왔다는 거지, 사라졌다는 건 아니다.
투쟁적으로 모든 것에 대한 증오를 아낌없니 내뿜는 스트린드베리는 아무튼 계속 다양한 글을 써내려간다.
종교적인 3부작 <다마스커스로>나 <죽음의 춤>, 초현실주의적인 꿈들을 묘사하며 인드라의 딸에 관한 <꿈 연극>등 오늘날 그의 또다른 대표작들도 발표한다.
그러면서 오늘날까지 존재하는, 1907년 설립한 <실험극장>에서 스트린드베리 본인의 작품들만을 올리는 실험 극장을 실시한다.
이곳에서 말년의 스트린드베리는 <유령소나타> 등 오늘날 정해진 무대 없이 작은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실내극>을 사실상 창조하고 입센과 더불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수많은 후발주자들에게 영향을 주며 오늘날까지도 문제적인 현대 연극의 아버지들 중 하나로 남게 된다.
언제나 수많은 이들과 싸우는 문제 많은 인간이었지만, 말년의 스트린드베리는 스웨덴의 유명한 작가가 되었다.
"근데 왜 나한테는 노벨상 안 주냐?"
"네가 나 욕했잖아."
일단 국내 스트린드베리 전집을 번역중인 이정애 교수의 관련 설명에 따르면,
알프레드 노벨을 죽음의 상인 등으로 혹독하게 비난하고 여러 스캔들로 악명 높은 스트린드베리를 노벨 본인은 탐탁지 않았고,
'스트린드베리' 같은 작가는 제외할 것을 명했다고 한다.
아무튼 이런저런 연유로 스트린드베리는 노벨상을 받진 못한다.
다만 스웨덴 대중들에게 대표되는 작가들 중 하나로 기억된 것은 사실인 모양이었다. 그의 스웨덴 지지자들은 성금을 모아, '반-노벨상'을 말년의 스트린드베리에게 준다.
아무튼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는 기괴한 인간이었다.
기타도 나름 잧 치고, 실험적인 회화가 나름 높게 평가받고 비싸게 팔릴 정도로 그림도 대충 프로 정도로 그리고, 연금술사에 신비주의자였고,
화학자였으며 극작가였고, 무엇보다 스웨덴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이기도 했다.
그의 <미스 줄리> 같은 희곡들은 어찌되었든 자연주의의 대표적인 작품들로 평가되고, 표현주의의 아버지이자 현대 희곡의 창시자들 중 하나이며
후기의 <꿈 연극>이나 <유령 소나타> 등 초현실적인 분위기의 몽환적인 작품들 또한 많은 영향을 끼친다. 실내극의 창시는 영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20세기 초부터 이미 유진 오닐이나 고리키, 테네시 윌리엄스 등 수많은 후배들이 그의 영향을 받았음을 거리낌없이 말하였으며 입센과 더불어 북유럽 자연의 힘을 보여주었다.
그는 입센에 영향을 받으면서도 입센과는 다른 방향을 택했고, 그 덕분에 입센과 같은 위치에 오르게 되었다.
그는 삶의 단면들, 일상의 장면들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것을 거부하였고, 투쟁을 앞세우며 삶 속 여러 힘들의 정신적인 투쟁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러면서도 노골적으로 여성들을 증오하고 찌질하고 추레하게 보일 정도로 자신의 헤어진 이들이나 친구들을 비난하고 욕하기도 하며
때론 정말로 미쳤거나, 정반대로 모든 걸 연기한 관종이 아닐까 추정될 정도로 알 수 없는 문제적인 인간이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스트린드베리 전집이 현재 국내에도 나오고 있으니
얼른 사서 전집 완간까지 보태자.
모더니스트의 기묘한 모험
- 20세기 최고 시인 예이츠의 환상록과 자서전 읽으쉴?
- <율리시스>는 어떻게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책이 되었는가?
- 위대한 피츠제럴드 (1), (2)
- 토끼공듀의 삶
- 만델스탐의 노래
- 악어들의 거리
- 독일인이 오리라
모더니스트의 선조들
처음 들었을 때는 되게 마이너인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역본이 많더라고
뭉크 빌리러 갑니다
와 저시대는 북유럽의 시대네 입센 스트린드베리 함순 ㄷㄷ 가즈아
모더니스트들은 왜 이리 하나 같이 인성에 하자가 많죠? 아니 안 털리는 먼지가 없다는 해명으로는 부족할 정도네요. 진짜 그 시대에 무슨 마라도 끼었나. - dc App
노벨 그 새끼도 존나 인성 빻은 새끼였네. 졸라도 노벨이 극혐해서 제꼈다는 말이 있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