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image.php?id=3fb8d122ecdc3f&no=24b0d769e1d32ca73ded85fa11d028314c091b806630224048cd6cbd1256c69e57e3faf241187e631f11676d1a16b858f5c102a3d8c65f47e8f3267319441b6c923c9b


당연히 개취와 사견임을 전제함.


앞으로 

철학 = 인류 정신과 인식의 어두운 심연에서 정신의 푸른 불을 밝히고 외로운 탐사를 하고 있다는 공통점에 착안해 

'아귀'로 비유할 것이고,


또한 문학 = 철학을 포함한 인류 지성과 삶의 다양한 성취와 측면을 조합하고 가공해 비교적 쉽게 즐기게 하는 결과물이란 공통점에 착안 

'요리'로 비유하겠노라.


아귀는 좋은 식재료이다. 그러나 잡는 것은 물론 가공도 까다로우며 요리는 말할 나위도 없겠지.

아귀잡는 어부(철학도)가 아닌, 요리를 즐기길 원하는 배고픈 우리(문학 독자)들이 만나고 싶은 것은 활어가 아닌 아귀요리다.


아귀잡이의 역사가 깊은 독불프러의 작가들은 대단히 raw한 아귀 요릴 내놓곤 했다.

아귀는 물론 랍스터(영생불사를 추구한다는 공통점에서 기독교를 이에 비유하겠노라)를 포함한 온갖 심해생물들이

활어 상태 및 토막내는 정도의 최소한의 손질만 거친 채 서브되었다.


이건 소설인지 기독교 및 연옥 홍보 브로셔인지 헛갈리는 '신곡'이 그러하고, 

소설 속 화자의 입에서 온갖 사조와 사상의 개념어가 아귀의 질긴 껍질마냥 그대로 튀어나오는 토마스 만을 위시한

유독 독일에 많은 돈벌이가 아닌 손님 계몽에 목숨을 건 계몽주의 요리사들도 그러하다. 

실패한 논문에 서사 msg를 끼얹어 대중 요리라고 속여 팔아먹은 얼치기 요리사들도 존나 패고 싶다...


아무튼 그래도 아귀를 무척 좋아하거나 이 생물에 대한 경외심 혹은 페티쉬를 품은 어떤 이들은

사실 '요리'라고 부르기엔 미진한 이같은 토막친 심해어 뭉치들을 대단히 높게 평가하며 이것만이 진정한 요리라 주장한다.

하지만 감히 장담하건데, 생 아귀토막 그득한 접시를 받고 인증샷 찍어대는 그들 중 과반 이상은, 

이를 씹다 뱉어버렸거나, 억지로 삼켰더라도 재료의 맛과 영양분을 즐기고 흡수하는 데엔 실패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취향은 존중함. 나도 회와 조리하지 않은 송이,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무척 좋아하니까.

하지만 모든 요리가 날요리일 필요는 없으며, 세상엔 생물 상태의 미감이 곤란한 식재료를 탁월한 기술로 요리해 

못난 외양과 딱딱한 겉껍질 같은 것 없이, 한층 발전된 맛과 풍미로 먹게 해주는 요리와 요리사들, 

즉 문학이란 예술과 작가들이 존재한다.


이를테면 실존주의라는 아귀를 단어가 아닌, 이를 이미 체화한 한 주인공의 삶으로 보여주는 부코우스키, 

역사라는, 이름만 들어도 무서운 마귀상어를 활용해 미래적 플레이팅의 21세기 형 요릴 때이르게 내놓은 아이작 아시모프, 

아까 잠깐 이야기한 랍스터를 원재료로 기괴한 모더니즘의 분자요리 '내가 죽어 누워있을 때'를 만든 윌리엄 포크너, 

또 여기에 실러캔스처럼 전설로만 전해지던 고대 비극의 뼈대를 덧붙여 

먹다 죽어도 좋을 정도의 길고도 황홀한 요리들을 만든 허먼 멜빌이나 존 스타인벡, 

혹은 화석만 남은 미국 서부개척 시기라는 심해어의 화석에 그야말로 생명을 불어넣어 

광폭하고도 존엄한 괴물로 되살린 코맥 매카시 같은 작가들 말이다. 

게다가 아.. 비록 영문학 요리사는 아니셨지만, 

이쯤되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보르헤스 형님... 오늘 퇴근하면 택배 보관함에서 '보르헤스 비문학 전집'이 되셔서 날 기다리고 계실 그 분.. 

남미 문학사라는 저택을 홀로 점거하시고, 도서관장실에 홀로 앉으신 상태로

심해 속으로 텔레포트하시어 미친 과학자마냥 이미 멸종한 심해어들을 되살리시고 기기묘묘한 심해어들을 다시 창조해내신 형님..

그렇게 본인이 창조하신 심해어로 본인만 만들 수 있는 한입 요리들을 만드셨던 그분..

먹을 땐 한 입이지만 씹고 소화시키려면 평생 이상이 걸렸던 그 분.... 


혹은 영문학 본토의 세익스피어, c s 루이스나 톨킨, 내 이상형 매리 울스턴 크래프트, 조셉 콘래드는 또 어떠한가?

신곡을 흘러간 옛노래로 만들어버린 밀턴은 또 어떻고? 


이 영문학, 혹은 이 작가들이 쓴 작품에는 형이상학적 관념어 하나 쉽게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고 이들의 작품에 철학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 소릴 하는 애들은.. 혹시 원조 추어탕집에서 미꾸라지 대가리가 보이질 않는다며 대노하는

미각이 마비된데다 예의도 없는 미친 놈들이진 않을까??


수산물 시장에서 생선 고르는 기준으로 요리를 평가하는 우를 범하진 말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