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의 뜻을 그대로 풀이하면 이름(에 주어진) 본분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명분이란 원래 신분과 직함에 따라 자신에게 주어진 일만을 할 뿐 그 외의 사사로운 감정과 맥락을 신경쓰지 않는다는 봉건적인 태도를 말한다.
어느 날 노나라의 왕이 공자를 불러놓고 물었다. 세상이 혼란한데 나라를 잘 이끄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공자는 얼핏 보기에 뻔해보일 수 있는 대답을 내놓는다.
군군신신부부자자, 즉 군주는 군주 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 다워야 하며 아버지는 아버지 다워야 하고 아들은 아들 다워야 한다. 그래야만이 나라가 바로 선다는 것이다.
이 말이 뻔하지 않은 말이었던 것인지, 대답을 들은 왕은 과연 옳으신 말씀이다 맞장구치고 후일 공자의 제자들은 이를 일컬어 '정명론','명분론'이라 불렀다.
공자는 집요하리만치 분수에 맞게 행동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논어에서는 툭하면 천자가 주관하는 제사에만 출 수 있는 팔일무를 일개 귀족들이 추게 하는 것을 비판하며, (팔일무는 8×8대형으로 서서 추는 춤이다. 제사의 격이 낮을수록 대형을 이루는 줄은 줄어들며, 현재는 한국만이 조선의 역대 왕의 제사의 예법인 종묘제례와 공자와 유학자들의 제사의 예법인 문묘제례(석전제)의 일부로서 팔일무를 추고 있다.) 또한 크게 아끼었던 제자 안회가 죽었을 때도 대부로서의 격을 유지해야한다는 이유로 자신의 수레를 내어주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듯 분수에 맞게 살라는 소박한 의미를 가진 '명분'은 흔히 '대의명분'이라는 식으로 거창하게 쓰이며, 그럼에도 '허울 좋은 구실'이란 뉘앙스가 강하다. 이렇게 된 이유는 어느정도 훗날 혁명의 어원이 되는 맹자의 역성혁명론에 있다.
혁명의 명은 이름 명이 아닌 운명이니 명줄이니 할 때 쓰는 목숨 명자다. 앞서서도 천자가 주관하는 제사를 언급했는데, 중국 오랑캐 놈들은 원래 왕, 혹은 황제란 천명을 받들어 그 지위를 인정받는다고 생각했으며, 쿠데타가 일어나 왕조가 바뀌는 일 또한 천명이 바뀌었다는 뜻에서 혁명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춘추전국시대에는 천명이건 혁명이건 간에 황제뿐 아니라 수 많은 제후국의 왕과 그 가신들까지도 윗사람을 죽이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그래서 제나라의 왕은 맹자에게 역사에 이름난 탕왕과 무왕도 제 임금을 시해하고 왕의 자리에 올랐는데, 신하된 도리로 이래도 되는 것인지를 물었고, 맹자의 답은 다음과 같았다.
'인의를 해치는 잔적한 자는 왕이 아닌 한낱 필부일 뿐이니, 무왕이 왕을 죽이고 자리에 올랐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이 말 또한 뻔하지 않았던 것인지 후일 유학자들은 이를 역성혁명에 대한 맹자의 주장이란 뜻에서 역성혁명론이라 불렀고, 수 많은 반역과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쓰였다. 물론 맹자에게 혁명이란 천명을 바꾸는 혁명이라기 보단 왕의 이름에 걸맞는 본분, 즉 명분을 다하지 못한 자를 끌어내린다는 의미로 쓰는 게 어울릴 테다.
이렇듯 맹자의 입장에서 대의명분, 정확히는 군신간의 의리라는 말은 신하는 재물과 명예, 혈연 같은 사사로운 감정이 아닌 주군이 따르는 대의가 무엇인지를 보고 그를 받들어 모신다는 말이다. 물론 여기서 신하는 스스로 대의를 행할 수가 없다. 대의에 맞는 명분을 받들어 일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대의를 행하는 것은 군자의 일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맹자는 대의를 중요하게 여겼지만 명분의 봉건적인 면까지 부정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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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 쓰는 다른 독갤러들이 그러듯 저도 밑밥 좀 깔자면 아무것도 모르던 중딩때나 논어 10번 읽고 청소년을 위한 동양고전 같은 책 사 모았고, 당시에도 완역 사기같은 역사서나 펑유란같은 철학사 책은 얼마 못가서 던져버렸음. 지금은 철학책도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안 읽고, 이 글도 최근에 나무위키 보고 기억 되살려가며 썼던 글임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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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첫 번째로 틀을 잡고 기초를 만든 사람일 뿐이고 공자 이후로도 유교는 수없는 논쟁,반박, 토론을 거쳐서 발전하고 바뀌어 온 학문임. 이게 되게 당연한 건데 우리나라에서 유교 이미지가 씹창나서 그런지 진지하게 파는 사람은 거의 없더라. 그런 의미에서 이렇게 유교에 대해 고찰하는 건 좋은 자세라고 생각함.
저어는 선진유교 넘어가면 그닥 관심이 안 생기더라구요
대단하네, 난 중국에서 대학을 나왔는대도 이런거 모르는데. 추천 하나 남기고 간다.
명분론은 난세에서는 먹히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기 때문에 후기 유교가 발전하려고 용을 쓴 게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