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학에 철학적 깊이가 있고없고를 떠나서 이거 하나만 짚고 넘어가자. 문학에 철학적 깊이라는 말이 적용 가능한가? 만일 여기서 얘기하는 철학이

"작가가 결론에 이른 특정 담론을 소설 속에서(문학 전반보다는 소설에 집중해서 얘기하겠음. 난 소설충이니까 ㅎ.) 풀어내는 개념"
이라면 동의가 되는데, 이 철학이

"특정 철학자의 학문적 성과"

를 얘기하는 거라면 난 그 철학적 깊이라는 말에 동의하지 못하겠음.

소설은 학문이 아님. 그 자체로 예술이고 예술적인 시각에서 바라본 모습이 드러나야 함. 다시 말해 철학적 깊이의 기준이 니체나 들뢰즈 등의 철학적 담론을 어떻게 소설 속에서 녹여냈는가가 된다면 그런 철학적 깊이는 작가의 지식 자랑에 불과하고 소설적으로 불필요한 장치임.

그렇다면 토마스 만은 어떻게 되는건가요? 라는 얘기가 나올 수 있는데 토마스 만은 학문적 얘기를 소설에서 그대로 하는 작가거든. 하지만 중요한건 토마스 만의 목적은 그런 학문적 얘기들을 통해 독자들을 상대로 강의를 하는게 아니라 19세기 소설 방법론에 따라 독자들이 납득 할 수 있는 설명과 묘사를 곁들이는거지. 토마스 만 소설들의 본질은 존재의 뿌리를 파헤친다에서 벗어나지 않음. 그 뿌리를 학문으로서 규정한 《마의 산》에서는 학문 얘기가 많이 나올 수 밖에 없는거고. 이건 토마스 만의 독자적인 방식인거고 이 방법 자체만으로 토마스 만이 현학적이다 또는 깊고 철학적이다 라고 결론 내려서는 안됨. 최종적으로 소설에서 어떤 위치를 점하고 구성하는가가 중요한거지.

그러므로 최초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영문학은 철학적 깊이가, 작가가 결론내린 담론의 깊이 부족한가? 난 절대 아니라고 봄.

인간의 표현에 내면 심리를 끌어들인 새뮤얼 리처드슨은 영문학 작가고 소설 방법론에 대한 결론을 소설 속에서 나타낸 필딩도 영문학 작가임. 무엇보다 모더니스트 뺨칠 정도로 다양한 문학적 실험 기법으로 형식의 자율성을 부과한 로렌스 스턴 또한 영문학 작가고. 내면 심리의 극단까지 밀고나간 제임스 조이스나 집단 속 개인의 모습을 발견한 포크너는 어떻고.

이런 것들이 어떻게 철학적 깊이가 되냐는 말에는 소설은 결론을 작가의 입으로 말하는 방식이 아닌 각종 기법들을 통해 그 결론을 드러내는 방식으로서 존재한다고 말하고 싶음. 문장 몇 개의 결론(인간은 어떻다, 행복은 어떻다 등)으로 이르는건 학문적 분야임. 소설은 언제나 그 중심 생각으로부터 각종 가능성을 표현하면 뻗어나가야 하는 예술이고.

결론은 영문학이 철학적 깊이가 부족하지도, 다른 나라의 문학이 특별히 현학적이지도 않다는거. 애초에 어떻게 조이스가 떡하니 존재하는데 영문학이 얕다는 소리가 나옴? 아 아일랜드 문학이라고? 그렇다면 ㅇㅈ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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