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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갤에서 인싸감성에 대해 비판이 자주 나오는데, 언어의 온도에 대한 비판도 대략 "깊이가 얕다" "시시하다" "공감 그 이상의 정서가 없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이 말이 진짜 맞는 것인지를 검증하기 위해 짠짜잔 라노벨을 데리고 왔습니다.


A : 버스에 탔다. 할머니와 손자가 있었는데, 할머니가 손자를 보더니 아픈걸 딱 알아차리고 손자의 손을 잡았다. 손자가 할머니는 내가 아픈 걸 어떻게 아느냐고 물어봤는데, 할머니가 "더 아픈 사람은 아픈 사람을 알아본단다" 라고 대답했다. 사람은 아파 보면 자신과 같은 흉터를 알아보는 눈이 생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아프지 않게 할 수도 있다.


B :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몰개성해지는 것에 공포를 느낀다. 하지만 나는 평범해지는 것이 좋다. 평범하다는 건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걸 말한다. 그리고 상처를 내면 자신도 상처를 입는다. 죽을 때까지 상처를 내고 받는 것의 반복, 그것이 개성이라는 것이다. 평범하지 않기 위해 하는 행동의 대부분은 마이너스 효과를 낸다. 차라리 모두가 평범하다면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올 지도 모른다.


'상처'를 주제로 한 두 개의 생각이다. A와 B 중 어느 쪽이 라노벨일까? 당연히 B다. 참고로 B의 제목은 니시오 이신의 <제로자키 소시키의 인간시험>이다.


여기서 우리가 볼 수 있는 핵심은 <언어의 온도>가 말하는 생각은 라노벨의 그것에서 조금도 진일보하지 않았다 는 것이다.


라노벨을 읽다 보면 수백년 산 흡혈귀가 '훗...인간은 먹고 먹히는 존재. 당연히 강한 것을 빼고 살아남을 가치는 없다.' 그런다. 중2병 돋는다.우리가 라노벨을 읽고 등장인물의 사상이나 말이 중2병 돋는다고 말하는 이유는 세계를 지배한다거나, 수백 년 동안 살아온 인물의 사상이 너무 수준이 낮기 때문이다. 수준이 낮은 것을 보고 수준이 대단한 것처럼 말하니 중2병이 돋는다고 느끼는 것이다.


<언어의 온도>는 반대로 중2병이 돋는다. 작가라는 사람이 고작 저 정도의 사상밖에 말하지 못하기 때문에 중2병이 돋는다. 저런 말은 작가가 할 게 아니라 우리 엄마나 할머니가 말해주는 말이다. 작가란 사람이 고작 "나도 힘들었어. 그런데 내가 살아보니 이렇더라" 이상의 글을 못 쓰는 것이다.


내가 작가에 대해 너무 높은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작가란 한 사회의 폐부를 집어 내거나, 한 시대의 면모를 대표하는 모습을 그려내거나, 한 나라의 정서를 이끌어내는 무언가를 써야 한다고 본다. 아니 적어도 그걸 따라하거나 시도하려는 수준은 되어야 한다고 본다. 인스타에 돌아다니는 '나도 힘들었어 ㅠㅠ 하지만 내일도 화이팅!'이 아니라. <언어의 온도>가 호평을 받는 한국 문단의 모습을 보면 사회의 폐부도 못 짚어내고, 시대의 흐름을 읽지도 못하고, 인간의 정서를 이끌어낼줄도 모르는 병신같은 한국 문단의 속내가 뻔히 들여다 보인다. 사회의 폐부를 짚어내면 503의 블랙리스트에 올라가고, 시대의 흐름을 읽으려 하면 윗선의 꼰대 작가들이 뭐라고 궁시렁대고, 인간의 정서를 이끌어낸다고 하는 짓이 페미니즘인 한국 문단. 이대로 미래가 있긴 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