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주의 내용을 확인하시려면 스크롤 해주세요.

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만두이미지

우아하고 감상적인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이 책의 장점은 술술 넘어간다는 점이다. 이 책의 단점은 알맹이를 잡을 수 없다는 점이다. 무슨 의미에서 쓰인 이름인지 잘 알 수 없는 단어들이 휙휙 넘어가며 이야기를 해나가다가 예상치도 못한 방식으로 사건이 흘러가고, 그 사건과 뚝 떨어진 다른 사건 이야기가 나오다가 언젠가 전에 나온 사건을 품거나 연결하는 방식으로 큰 틀을 이룬다. 첫 이야기에서 야구에 대한 문장을 옮겨 적는 일을 하고 있는 주인공이 실제로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알 수 있게 되는 건 그 틀이 어느 정도 잡히고 난 뒤, 그러니까 백 페이지 가량 이후다.



하지만 사실 그게 중요하진 않다. 이 글에서 "일본 야구"라는 소재를 사용하는 방식이 글과 비슷하니까. <우아하고>에 나오는 인물들은 우리가 모호하게 일본 야구가 무엇이다, 라고 느끼는 것들로부터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일본 야구를 찾아나선다. 카프카의 문장으로부터 일본 야구의 편린을 보거나, 최고의 성적을 올리고 있는 투수가 자신이 참여하고 있는 것에서 야구를 보지 못하는 슬럼프에 빠진다거나, 일련의 이야기를 통하여 일본 야구라는 말을 다양하게 활용한다거나. 아마 이렇게 말을 해도 잘 이해는 안 갈 것이다.



아마도 이 글은 글쓰기에 대한 글로 보인다. 일본 야구를 일본 야구에서 보지 못하고 일본 야구를 찾아나서는 과정은, 말하자면 문학으로부터 문학을 보지 못하고 문학을 찾아나서는 것과 같다. 문학이 문학이기 위한 어떠한 속성이 결여되었고, 문학을 하는 사람들로부터 어떤 태도가 결여되었다고 지적하는 식이다. 존 바스의 <고갈의 문학> 같은 글이 떠오르는 부분이다. 그러니까, 아마도 이 소설은 소위 '포스트모던 문학'이라고 부르는 분류에 들어간다고 생각한다. 글쓰기에 대한 글쓰기, 글쓰기의 의미 묻기, 그리고 글 속에서 자신을 인용하며 글쓰기.



<우아하게>의 일부인 <일본 야구 창세 기담>을 보면 그런 특징들이 강하게 드러난다. "감독"이라고 하는 인물이 "일본 야구"라는 것이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지에 대한 신화를 들려주는데, 그 신화라는 것이 기묘하게 일본 신화-아마도 <고사기>-를 패러디하고 특정 집단만 알법한 용어들을 이리저리 써가면서 "일본 야구"라는 말을 아무렇게나 남용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신화' 속의 네번째 자식, "일본 야구의 창시자 네케레케세맛타"가 어떤 일을 하는지 보자.




'네멘호텝'은 다른 신이 되기로 마음먹었지. (...) '강에 들어가서는 (...) 고환을 씻었어. 거기에서 태어난 것이 '네넨넴리'인데, 이놈은 '볼리비아의 화폐 가치를 일정하게 하는 신'이었어. 그 후 볼리비아의 통화는 세계에서 가장 불안정하게 되어 버렸지. 다음으로 '네멘호텝'은 손끝으로 엉덩이 구멍을 씻었지. 그러자 '넨넨네무노키'와 '넨넨코로리요'라는 2인조 신이 태어났지. 그 들은 그 후에 여러 2인조 신을 낳았어. '더 피넛', '린린란란', '히데와로잔나', '올 한신 교진', '후지코 후지오' 등이 그렇소.


pp.123-124



자,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형님들. (...) 저쪽은 대강 끝났으니, 이번에는 여기에서 '일본 야구'를 하겠습니다. 간단합니다. (...) 아버지, 당신은 취소하겠습니다. 물론,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취소해 드리겠습니다. 어느 정도 거슬러 올라가면 좋을지는 취소하면서 생각해 보죠. 그리고 맏형, 당신은 너무 복잡해. 그러니까, 말소하겠습니다. 완전한 말소입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뿐만 아니라 당신에 관한 건 거의 전부 말소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덩치 큰 형. 여동생은 "저 얼간이는 아무리 축소시켜도 곧 원상태로 돌아올 게 뻔해" 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도 같은 의견입니다. 당신은 생략해 드리겠습니다. 생략입니다, 생략. 알겠어요? 자, 그리고 막내 형. 당신은 교환 당하고 싶습니까? 만일에 교환을 원한다면 무엇과 교환되고 싶습니까? 가정 생활과는 어때요? 아니면 등장할 기회가 없는 핀치히터하고의 교환은 어때요? (...) 아무것도 슬퍼할 필요는 없어요. 당신들 얘기는 이제부터도 쭉 일기를 교환하면서 몇 번이나 취급할 테니까요.


pp.137-138


말 그대로 글은 글일 뿐이다. 그런 주장이 강하게 드러난다. 글 속에선 무엇도 가능하고, 글이 꼭 현실을 그대로 묘사할 필요도 없고, 깨달음을 줄 것도 없다. 그렇다면 거기에 무엇이 있느냐 하니 재미가 있다는 식이다. 저자 본인이 <문학이 아닐지도 모르는 증후군>, <문학이 이토록 잘 이해돼도 되는 건가> 등의 문학-큰 '문학'이라는 틀에 대한-서적을 여러 권 냈다고 하니 이해는 간다.



기묘한 점은 태도는 다르더라도, 폴 오스터의 <뉴욕 3부작>과 어느 정도 유사성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산발적이게 흩어진 다양한 사건들이 점차 글이 나아가면서 서로 연결고리가 생기고, 하나의 큰 틀 안에 전부가 포함되는 수준을 벗어나 하나의 글이 다른 글을 그 글 속에서 '쓰인 글'로서 포함해버리는 괴상한 포함관계 말이다. 아마도 이런 것도 '포스트모던 문학'의 특징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전에 누군가가 이 글을 읽고 정지돈이 쓰는 글과 똑같지 않냐며 이야기한 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산발적이고 약간은 프랙탈스럽게 느껴지기도 하는 서사 구조가 비슷하게 보였을까 싶기도 하지만, 이런 방식의 글쓰기는 매력적이면서도 꽤나 자주 보였던 것 같다. 본서와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서 나왔던 DFW의 <무한한 재미>도 그렇고, 조금 멀게는 <트리스트럼 섄디>도 그러했고, 이름이 잘 기억나지는 않는 다양한 글들에서 그러했다. 어쨌든 재밌는 글이다.



P.S. 감상과 별개로, 상당히 우스꽝스럽게 읽혔던 부분 하나를 밑에 따로 인용한다.




저는 이제부터 '일본 야구'를 창조하기 위해서 여행을 떠나야 합니다.


그래. 네 말은 하나부터 열까지 논리가 정연해. '~하기 위해서 여행을 떠난다'니 나쁘지 않아. 너희 형들하고는 천양지차구나. 여보, 이놈은 신화에 관해서는 꽤나 까다로울 것 같아 보이는데?


네, 저는 신화에 관해서는 꽤나 까다롭습니다. 그래서 부탁인데요, 여동생을 급히 만들어 주셨으면 합니다.


여동생이라고! 그거 좋군. 여행길 길동무로선 최고지. 당연히 근친상간을 할 작정이지?


아뇨, 저는 절대, 근친상간을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면 뭣 때문에 여동생을 데리고 가겠다는 거냐?


주로 일기를 교환해 보기 위해섭니다.


동글동글한 글씨로?


네, 동글동글한 글씨로, 여동생과 일기를 교환할 생각입니다.


아들아, 너는 태어난 지 얼마나 됐지?


글쎼요. 대강 7분 10초 정도라고 생각합니다만.


봐라, 네 아비와 에미는 대강 2억 년은 살아왔다. 아무리 계산해도 7분 10초의 두 배는 사고 있다. 그 말은 즉 너보다 훨씬 경험이 많다는 것이다. 알겠느냐? 경험을 우습게 여기면 안 되느니라. 나쁜 말 하지 않을게. 여동생은 금방 만들어 줄 테니, 근친상간에 쓰거라. 심심하면 죽여도 좋아. 사지를 절단해서, 업고 다니는 즐거움도 있어.


유감스럽지만, 저는 뭐라고 하셔도 여동생과 일기를 교환할 작정입니다.


pp.128-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