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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다카는 정말 소름끼친다. 자신을 죽이려 하고 아내와 바람피운 걸 빌미로 노노구치의 소설을 자기 작품으로 발표하면서 보복한다. 살인자 노노구치보다 자기합리화로 타인의 작품을 훔쳐서 이용해먹은 히다카가 더 소름끼친다. 일본인 작가의 원한이라는 건 정말 소름끼친다. 게다가 도작한 주제에 이름값의 차이를 운운하며 뻔뻔하게 나온다. 이런 새끼들이 현실에도 존재한다는 게 더 무서운 일이다. 부디 이 작품을 읽고 정신을 조금이라도 차릴 악마 같은 문인들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기를 바란다.

히다카는 노노구치의 칼을 들고 죽이러 오는 것도 촬영했다. 그걸로 도작할 작품을 써달라며 협박한다. 이런 새끼들은 죽어도 싸다.

초반에 고양이에게 독약을 먹여 죽인 게 히다카의 인성을 암시하는 듯하다. 이 새끼, 상황을 즐기는 게 분명해 보인다. 남의 작품을 빼앗아가면서 오히려 뻔뻔하게 군다. 아아, 기억 폭행을 당한다. 어차피 지난 일이고 믿을 사람도 없을 테고 당사자들도 부정하겠지만. 참고로, 일부 문인들의 드러난 표절 사건들은 빙산의 일각이다. 그럼에도 표절한 사람이 더 유명하고 잘 썼다고 하면 당한 사람이 오히려 바보 취급을 당하는 게 현실이다. 그리고 그 내부에 있다 보면, 그런 현실에 무덤덤해진다. 뭐가 잘못됐는지 판단할 수 없게 된다.

어떻게든 고스트 라이터로 써먹을 목적으로 몰아가며 자기 아내의 죽음까지 이용해 먹다니. 이래서 문인들이 욕을 처먹는 거다. 알 만한 사람은 알 거다. 자신의 창작을 위해 주변 사람들에 대한 배려는 눈곱만큼도 없다.

다만 노노구치의 고백이 끝나고 소설 분량이 백여 페이지 가량 남아서 또 다른 반전이 있을까 기대된다.

가가는 무슨 이유로 사건이 끝나고도 노노구치의 정보를 캐며 다니는 걸까? 더 큰 반전을 기대해 본다. 가가쿤, 파이팅!

매스컴이나 대중들의 비판과 지나친 관심도 눈길을 끈다. 꼭 사람들은 사건이 터져야 관심을 가지고 귀찮게 군다. 리에가 피해자 입장이라 여기저기 시달리는 게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내 눈에는 이년도 정신을 좀 차려야 할 것 같다. 역시 히다카의 아내답다. 다들 어딘가 이기적으로 보인다.

완벽하게 보인 사건 해결에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니. 어딘가 질질 물고 늘어진다는 느낌도 든다. 노노구치와 히다카 사이엔 또 어떤 비밀이 있는 걸까?

노노구치의 어린 시절 묘사를 보니 전형적인 책덕후이자 문학도에 찐따였다. 씁쓸하다. 독갤을 일찍이 알았다면 지금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275페이지 과거 2부터는 학창시절 사람들에 대한 여럿 얘기들이 등장한다. 진행 방식이 누쿠이 도쿠로의 작품들과 비슷하다.

노노구치와 히다카의 학창시절 관계는 꽤나 복잡하다. 누가 좋은 놈이고 누가 나쁜 놈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노노구치가 자신이 전에 살았던 지역과 다녔던 학교를 욕하는 게 이해가 된다. 나도 비슷한 환경에서 성장한지라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동네 전체나 학교 전체가 좆같은 곳들이 있다.

307페이지 과거 3에서부터 가가 형사가 옛 사람들의 증언을 제대로 정리하고 추리해주길 바란다. 가가쿤, 너만 믿는다!

가가 형사가 교사를 그만 둔 이유도 등장한다. 학교폭력이 이 작품의 진짜 주제인 걸까?

노노구치가 암에 걸린 것도 일종의 복선이었다. 살인보다 동기 준비라. 일종의 역발상이다. 노노구치의 자작극 같은 증거 준비와 동기 준비라니. 결말에 다가서며 흥미진진해진다.

동기를 숨기려는 동기라. 대체 뭘까.

후지오가 성폭행하도록 도와준 이가 찍힌 사진. 그 사진 속 주인공이 노노구치라니. 게다가 고양이에게 농약을 먹여 죽인 것도 노노구치였다. 히다카를 악인으로 묘사한 것이다. 문청들과 트러블이 있을 때, 상대들은 이런 식으로 자신을 포장하고 추악한 본질을 감추며 타인을 나쁜 놈으로 몰아가는 경우를 흔하게 봤다. 이 감상문을 읽는 이들도 충분히 알고 있을 문인들 중에도 존재한다. 하지만 문학인들 내부에서는 알면서도 쉬쉬한다. 이게 문인들이나 예술인들의 실체다. 노노구치는 단지 소설 속에서나 등장할 범인이 아니다. 속내를 감춘 추악한 여러 문학인들, 예술인들, 창작인들을 자연스럽게 그려냈다. 멀쩡한 사람에게 모함을 씌워서 쓰레기로 만들고 자신을 합리화하며 동정을 얻는 수법은 질리도록 경험했다. 좋은 놈 나쁜 놈 할 것 없다. 전원악인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런 수법에 잘만 넘어간다. 아마 많은 문학인들이 이런 식으로 주변 사람들과 대중들을 자기 뜻대로 조종할 것이다.

아무튼 맘에 안 든다라는 이유 없는 악의가 이유 있는 악의보다 더 무섭다. 이유 없이 내가 하는 건 다 까고 싶다던 문학 교사가 떠오른다. 아마도 나는 그 시절부터 문학인들의 실체를 깨닫고 문청으로서의 슬럼프를 겪기 시작한 게 아닐까 싶다.

정리하자면, 일단 가독성이 좋았다. 재미도 저자의 다른 작품인 가면산장 살인사건못지않았다. 범인이 누군지 알고 봐도 큰 문제가 없는 작품이다.

그리고 한 가지 고백할 게 있다. 내가 일본 아이도루를 좋아하는 이유를 이 작품을 읽으며 깨달을 수 있었다. 일본인, 그리고 일본 여자 특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잔인하게 복수하고 지능적으로 몰아가는 성향. 그 감성이 일본 추리물을 읽을 때도 쉽게 드러난다. 난 순종적인 일본 여자의 이미지를 좋아하는 게 아니다.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웃는 얼굴로 몰래 칼을 가는 느낌이 마음에 들었다. 남들이 욕하는 일본의 음침함이 실은 내 취향이다. 미야와키 사쿠라처럼 동료들을 비난하는 비밀 계정이 털리는 아이도루를 볼 때 나는 분노하기 보단 오히려 설레고 호감을 느꼈다.

내게 웃으면서도 언제 보복할지 몰라 두려움과 설렘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그런 일본인의 이미지가 나를 사로잡은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종종 일본이란 나라 자체를 일종의 모에화를 시키거나 여성화할 때가 있다. 이건 아마 나 외에도 여러 오타쿠들이 비슷한 이유로 일본이란 나라와 문화에 사로잡히는 게 아닐까 싶다.

다시 감상을 정리하며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과거 문청 시절을 돌아보며 기억 폭행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꽤 많은 내용과 주제가 담겼고 예상보다 참신한 구성이었다. 불편하기도 해서 괜히 읽었다는 느낌도 들었다.

내 기억 속에 부정적으로 인식된 여러 문인들과 문청들의 이름이 떠오르지만 그들의 보복이 두려워 넘어가겠다. 어차피 지금 다시 말해봐야 의미 없을 뿐이다. 나뿐 아니라 알 만한 사람은 충분히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모두가 그러려니 넘어갈 뿐이다. 나는 더 이상 그들과 자존심 싸움이니 자웅이니 겨루고 싶은 마음이 없고, 무엇보다도 그때 얻은 상처로 지칠 대로 지쳤기에 이만 여기서 감상문을 마치려고 한다. 소심하게 보이겠지만, 그들이 자신들이 저지른 죄를 돌아보며 스스로 깨우치기만을 마음으로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