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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집, 무진기행 -저자 김승옥

김승옥의 단편집. 대표작인 <무진기행>뿐 아니라 <건>, <염소는 힘이 세다>, <생명연습>, <서울 1964년 겨울>, <차나 한 잔> 등 다양한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김승옥은 1960년쯔음 20대를 보내는 와중에 이 작품들을 써냈다.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눈여겨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1940년대는 일제강점기였고, 1945년엔 광복이 있었으며, 그 뒤로 1950년에 들어서서는 6.25가 있다. 유년과 성장기를 그와 같이 격동의 시기로서 흘려보낸 경험이 김승옥의 작품세계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그 영향이 어떠한 것이든지 간에,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거기에 더해서, 4.19와 5.16 또한 그의 작가활동이 펼쳐지기 바로 직전에 위치하고 있기까지 하다.

단편 하나하나에 대해서 일일이 풀이해놓을 수는 없는 만큼, 김승옥이란 작가의 작품 경향과 작가 자체에 대해 얘기하지 않을 도리도 없겠다.

김승옥을 현대 한국 문학계의 먼 사조로 꼽는 이들이 있다. 그것은, 아마도 그의 작품들이 그 당시에 주류로 자리 잡고 있었던 전후 문학의 형식에서 크게 탈피해 있었던 까닭이 아니었을까 싶다. 내가 보기에, 김승옥은 전쟁과 그 아픔을 직접적으로 쓰지는 않았다. 그러는 대신 전쟁이 끝난 다음 건설되는 중인, 점차 세속화돼가며 물질적 가치가 제일로 떠오르고 있는 한국을 배경으로, 그에 따라 불안정해져서 방황할 수밖에 없게 되어버린 인물들에 관해 써낸 것이다. 단순한 해석이지만 그만큼 마음에 와닿기도 한다.

<무진기행>을 비롯한 그의 단편선들이 무엇인가 음울한 감정을, 개개인의 좌절과 후회, 혹은 타인에 대한 무관심 등을 주제 삼고 있는 경우가 많은 듯한 이유는 곧 거기에 있다고, 나는 읽으면서 그러한 느낌을 받았다. 김승옥의 글에서 보여진 그것들은 당시 사회의 근본적인 구조로 인해서 생겨난 문제가 아니었던지 하고 나는 생각한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단편을 꼽자면 무엇보다도 <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가 있을 것이다. 상궤를 벗어난 구성방식 덕분에 내 머릿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는 작품이다. 도시로 상경했다 시골 고향으로 돌아오자 이전의 활기를 잃어버린 누이, 제목대로 그녀를 이해하기 위해 주인공은 누이처럼 도시 생활을 시작해본다. 그리고 그곳에서 누이가 느꼈던 도시적인 분위기의 고독함을 절감하고는, 영혼에 상처를 입어 망가지는데, 이는 도시 사회로부터 퍼져나오기 시작한 개인주의를 비판한 것일 테다. 그러면서도 시골로 돌아온 누이가 다시 행복을 찾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줘, 어쩌면 향상심이 거세된 삶에 대한 지적도 함께하는 것 같기도 했다. 작중 시골을 묘사했던 해풍과 황혼이라는 표현은, 내게는 어쩐지 꾸덕꾸덕하다는 감상을 주었다.

둘째로는 <염소는 힘이 세다>다. 화자가 반복해서 말하는 '염소는 힘이 세다.' 라는 절대적 원리 같은 문장은 작중에서 십여 차례씩이나 튀어나온다. 그런데 화자는 우리 집 안의 것들은 힘이 약하고 우리 집 밖의 것들은 세다고 얘기하며, 다만 우리 집에서 키우는 염소만은 집 밖의 것들처럼 힘이 세다고 한다. 억지일까? 화자가 서민층으로, 판잣집에서 하루살이를 이어가는 어린아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꼭 그렇지도 않다. 염소는 아이에게 있어 억지를 부려서라도 붙잡고 싶은 희망인 것이다. 자꾸만 염소는 힘이 세다고 독백하는 아이의 모습은 가엾기만 하다.

그러나 그 염소는 사실 새끼일 뿐이라 죽기가 쉽고, 죽는다. 이후 판잣집에서 염소탕 가게를 차리면서, 처음에는 역하게 느껴졌던 염소 고기의 냄새가 조금 지나자 아이에게 아무런 느낌도 주지 못하게 되었다는 부분은, 또한 아이가 <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에서도 주제로 쓰였던 그 도시적 분위기, 약하면 죽어야만 한다는 점을 깨닫고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듯싶다. 1960년대에는 뭐든지 열심히 노력하면 달성할 수 있다는 양상이 널리 자리 잡고 있었다고들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은 동시에 경쟁의 과열화가 일어남을 시사하기도 할 것이다. 과경쟁은 최근, 완전한 선진국화가 완료된 현대에 들어서는 우리 대한민국에서 더욱 심해진 문제이기도 하니 의미하는 바가 커진다고 생각한다.

김승옥의 단편집을 대표하는 <무진기행>이 정작 나에게는 특별한 인상을 남겨두지 못했다는 것은 그다지 이상한 일도 아니리라. <무진기행>이란 어떤 사내가 현실의 실패로부터 도피해 과거를 장식했던 추억의 장솔 찾아가는 내용이지만, 특별히 커다란 실패를 보았던 일도 없고, 무슨 실패를 봤다 해도 나중에 돌이켜보면 별것 아닌 일이었을 뿐인 경우가 전부였던, 게다가 추억을 현재형으로 쌓아가고 있는 어린 학생 신분인 나로서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여지가 적었던 때문일 테다. 그럼에도 그저 아름다운 문장과 구성에 취해서 훌훌 읽어나갔던 기억이 난다.

훗날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지내다가 언젠가 <무진기행>을 다시 읽게 되면, 그때에는 다른 감상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도 있는데, 아마 수어 년쯤 뒤에는 풀릴 것이다.

좋다. 이것으로 끝이다. 작가를 지망하는 한 학생으로서, <무진기행>은 정말 존경하는 마음이 들게 하는 작품이다. 울적한 감수성 속에서도 빛나는 필력은 물론이요, 사회적 통찰을 빼먹지 않는 점도 모범이 되어준다고 할 수 있겠다. 처음으로 한차례 완독하고 난 그 직후에는, 김승옥 씨에게 어떻게 물개박수라도 쳐드리고 싶은 심정이었으니 이보다 더 덧붙여서 뭣할까. 끝이다.








학생 식견이라 보는 눈이 좁을 순 있어요